[이코노뉴스=이동준 기타큐슈대 국제관계학과 부교수] 세계가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를 전혀 견제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이 ‘미국 없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추진을 강행하겠다고 나서 주목된다.

당초 “미국 없이는 안 된다”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읍소 작전’까지 불사했던 일본이 돌연 태도를 180도 바꿔 TPP 체결에 속도를 높이는 이유는 뭘까.

▲ 이동준 교수

최근 일본 정부는 오는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미국을 제외한 TPP 출범이 공식 선언되는 것을 목표로 이달부터 본격적인 설득에 들어갔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미국을 제외한 11개국은 지난 2~3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TPP 협상 회의를 열어 향후 추진방안을 논의했다.

다만, 일본 측은 이 회의에서 호주와 뉴질랜드로부터는 ‘미국 없는’ 11개국 협상안의 지지를 얻어냈지만, 베트남 등 다른 국가로부터는 충분한 이해를 얻지 못해 조정에 난항을 겪었다고 전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이달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APEC 무역장관 회의에 맞춰 열리는 TPP 각료회의에서 정치적 결단을 강하게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TPP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의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으로 무역장벽 철폐와 시장개방을 통한 무역자유화를 목적으로 한다.

2015년 10월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각료회의에서 협상이 타결되었으며, 세부내용 관련 실무합의와 각국 의회 비준 등의 절차를 남겨둔 상황이다. 현재 참여국은 12개국(뉴질랜드, 브루나이, 싱가포르, 칠레, 미국, 호주, 페루, 베트남, 말레이시아, 멕시코, 캐나다, 일본)이다.

이에 대해 TPP에 반대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태도는 여전히 요지부동인 듯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1월 23일 TPP를 ‘잠재적 참사’로 규정하면서 탈퇴 행정명령에 서명한 바 있다.

트럼프는 대선기간 중에도 미국 경제에 마이너스라면서 TPP에서 “탈퇴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무역협정 탈퇴 행정명령은 의회 표결이 필요 없는 대통령 고유 권한 중 하나다. 이에 대해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은 4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TPP를 협상하는데 8~10년이 걸렸다. 그 기간은 생산적이지 못했고 간헐적인 협상의 틈새는 대부분 공백이었다”고 밝혀 협상무용론을 재확인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물론이고 북미자유협정(NAFTA) 등 다자협정 등 미국이 맺은 모든 무역협정에 대해 전면적인 재점검 명령을 내린 상태이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10일(현지시간) 백악관을 방문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환영 인사를 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당시 2박3일간의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워싱턴=AP/뉴시스 자료사진】

이렇게 공중분해 위기에 빠진 TPP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일본이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왜일까. 우선 최종적으로 미국이 참여하지 않더라도 TPP 체제가 일본에 이익이 된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대두된다.

전자상거래와 지적재산권 보호 등 TPP 협상에서 합의된 규칙이 일본과 역내 전체 성장으로 이어지고 자국 기업의 해외 진출에도 용이할 것이라는 인식 하에 TPP의 틀을 최대한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일본의 경우 관세 감면으로 추정되는 이익은 대부분 미국에서 나오지만 비관세 장벽 철폐로 얻는 이익은 주로 아시아 교역국들과 관련이 있다.

장기집권을 노리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미국을 빼고도 TPP 발효를 이끌어내어 외교리더십을 과시할 수도 있다. 일본 정부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0%를 차지하는 거대 공동경제권인 TPP를 성장전략 핵심 수단으로서 ‘아베노믹스’의 사활적 과제로 간주해 왔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안전보장 측면이나 지정학적 관점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TPP는 적어도 아시아 국가들에 중국 주도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이외의 대안을 제공할 뿐더러, TPP 발효를 통해 일본이 중국을 따돌리고 통상규칙의 주도권을 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빠진 모양새가 되더라도 TPP 카드는 일본에겐 여전히 매력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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