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조기양 언론인] 1970년대 초. 벌써 40년이 훨씬 지난 일이다.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는 8월 충북 증평의 군부대에서 나는 훈련병으로 동료들과 연병장에 줄을 서 있었다.

▲ 조기양 언론인

저녁 일과의 하나로 총기 수입(닦고 조이고 기름 치고)을 마치고 훈련 구대장에게 총기 수입(청소)을 확인받는 자리였다.

구대장이 내 앞줄 훈병의 M1소총을 낚아채 대충 훑어보더니 나지막이 물었다. “총기 수입했어?” 군기가 바짝 든 동료가 목청껏 대답했다. “넷. 훈병 000, 총기수입 실시했습니다!”.

구대장의 표정은 그대로였지만 그가 내뱉은 말은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충분히 예고했다. “이 새X... 이게 총기 수입한거야?” 주먹이 훈병 가슴에 꽂히고 훈병은 나동그라졌다.

자리를 옮긴 구대장이 또 물었다. “총기 수입했어?” 질문을 받은 훈병은 앞의 훈병보다 더욱 큰 소리로 대답했다. “넷, 훈병 000. 총기 수입 안했습니다!.” 구대장의 표정은 역시 달라지지 않았다. 말이 달라졌다. “이 새X, 총기 수입 안하고 뭐했어?” 역시 주먹이 날아가고 또 한 명의 훈병이 나동그라졌다.

4월 19일 KBS 대통령 선거 후보 토론에서 “북한이 주적입니까?”라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묻는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의 질문에 왜 증평 연병장의 일이 떠올랐을까?

유 후보는 문 후보가 어떻게 대답하든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는 질문을 고른 것이다.

“북한을 주적이다, 아니다라는 건 간단히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요...”, “아니, 그냥 간단하게 예, 아니오라고만 답하세요. 북한이 주적입니까, 아닙니까?” 구 여권에서 그나마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는 유승민 후보의 어법이 우리 정치 수준을 말해주고 있다.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가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본관에서 열린 KBS 주최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토론 준비를 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뉴시스

어쨌든 언론에서는 북한을 주적이라고 단호하게 규정하기를 거부하는 문재인 후보에 대해 사상이니 안보니 하는 익숙한 단어의 고리를 던지고 있다. 유승민 후보는 일단 성공한 것이다.

장미? 빨간 장미도 있고 하얀 장미도 있다. 고래? 큰 고래도 있고 작은 고래도 있다. 북한이 주적인가.

북한 지도부나 군 지휘부, 군대는 적으로 간주해야 하겠지만 북한 주민들은 우리가 통일 후 포용해야 할 대상 아닌가.

사안의 복합성이나 복잡성을 무시하고 그저 내가 가진 사고의 틀에 맞는지 안 맞는지가 중요한 사고방식처럼 어리석고 위험한 것이 있을까? 내 생각과 맞지 않으면 반역자요 마녀요, 빨갱이요, 종북이요하고 몰아부치는 구태를 이제는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자유 대한민국, 그것도 21세기에 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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