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이동준 기타큐슈대 국제관계학과 부교수] 일본이 미국과의 ‘경제대화’에서 소나기는 일단 피한 것 같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은 18일 도쿄에서 마이크 펜스 미 국 부통령과 첫 경제회담을 열고 무역·투자 등 양국 경제의 상호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논의를 계속 이어간다는 내용의 공동문서를 채택했다.

▲ 이동준 교수

NHK에 따르면 펜스 부통령은 이날 한국 방문을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회담한 후 아소 부총리와 경제대화를 열었다.

아소 부총리는 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미일이 윈윈(Win-Win)이 가능한 경제관계를 더욱 심화시킨다는 관점에서 펜스 부통령과 차분히 검토했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경제대화는 무역 및 투자 규칙과 과제에 대한 공통의 전략, 재정 및 금융 정책 분야에서의 협력, 인프라, 에너지 협력이라는 3개의 중심축에서 논의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대화에서는 무역·투자와 관련해 ▲높은 기준에 따라 2국 간 틀을 짜고 ▲지역 또는 세계 무역을 주도적으로 이끌며 ▲'제3국에 관한 우려'에 공동 대처하기로 합의했다는 내용이 발표문에 포함됐다.

아소 부총리는 이를 통해 "미일 경제관계를 더욱 높게 도약시키고 양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세계 경제 성장을 힘차게 이끌어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중국을 겨냥한 듯 "지역의 불공정 무역 관행 시정을 위해 미일 공조를 진행하기로 했다"며 이를 위해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해결절차의 활용 등을 포함한 연대를 심화해 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 ‘엔화 약세, 무역 불균형 등 민감한 문제는 피하자’

이번 경제대화는 지난 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정상회담에서 정례화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성사됐으며, 무역과 환율 문제가 최대 이슈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일본은 이들 민감한 문제를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그리고 아베 총리로서는 다행스럽게도 양국 2인자인 펜스 부통령과 아소 부총리의 공식 대화에서 엔화 약세나 무역 불균형과 같은 문제를 구체적으로 논의하지는 않은 걸로 알려졌다.

▲ 마이크 펜스(왼쪽) 미국 부통령과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이 18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미일 경제대화를 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걸어가고 있다. 【도쿄=AP/뉴시스】

양국은 이번 경제대화에선 트럼프 정권의 해당 분야 담당 정부 라인 구성이 최종 완료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체적인 분야별 논의는 연내 2차 경제대화에서 다루기로 했다.

때문에 미국이 압박할 것으로 예상됐던 환율 문제는 기자회견에선 별도로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일본으로서는 당장의 소나기는 피한 셈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만만하게 물러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펜스 부통령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과거의 것으로, 무역협상은 2국 간에서 행하는 것이라는 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이라며 일본이 선호한 다자간무역협정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일본을 포함해 무역 상대국에 대해 더욱 균형 있는 관계를 바란다"면서 일본 등에 대미 무역흑자를 줄이라는 우회적 압력을 가했다.

펜스 부통령은 특히 "오늘 시작한 경제대화가 장래에 미일 자유무역협정(FTA) 공식협상을 시작하는 길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아예 양자 간 FTA 체결을 바란다는 입장을 에둘러 표명했다

아소 다로 부총리가 "아태 지역의 평화와 번영의 초석인 미일동맹은 군사적인 면뿐만 아니라 경제에 의해서도 유지된다"며 "마찰이라는 말로 상징됐던 미일 경제 관계는 먼 과거로, 지금은 협력의 시대"라고 강조한 데 대한 ‘화답’치고는 까칠했다.

▲ 마이크 펜스(왼쪽) 미국 부통령이 18일 일본 도쿄에서 아베 신조 총리와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도쿄=AP/뉴시스】

이번 경제대화에선 일본이 ‘제사보다 젯밥’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다는 해석도 나왔다. 일본 정부가 정작 무역 등에 관해 주무 장관인 윌버 로스 상무장관과의 심층적인 논쟁은 피하는 대신 일본 기업에 우호적인 펜스 부통령과 주로 대화를 나눈 게 단적인 예로 거론된다.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보호무역주의 강경파인 로스 장관과 엔화 약세나 무역 불균형과 같은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스 장관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해결사’ 역할을 하고 있다. ‘경제’ 만큼 ‘군사’ 동맹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베 정권이 올해 말 열릴 예정인 제2차 경제대화에서도 미국의 ‘예봉’을 피해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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