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이동준 기타큐슈대 국제관계학과 부교수] “달러가 너무 세졌다. 나는 솔직히 저금리 정책을 좋아한다.”

4월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 한마디로 일본 경제가 요동쳤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의 전격적인 시리아 공격과 북한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증폭되면서 ‘안전 자산’으로 통하는 엔화 매수세가 확대되어 엔화 가치가 5개월래 최고가인 달러당 108엔대까지 뛰어올랐고 닛케이지수도 덩달아 곤두박질을 쳤다.

▲ 이동준 교수

엔화 강세가 지속되면 일본 수출기업들의 가격 경쟁력과 채산성이 악화되어 ‘아베노믹스’도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일본의 사정이 이런데도 트럼프 행정부는 오는 18일 열리는 미일 경제대화에서 환태평양경제공동체(TPP)를 대체하는 미일 양국간 무역협상을 일본 측에 거세게 요구할 태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불가측한’ 환율·무역 공세에 일본이 골머리를 앓는 배경이다.

◇ 앞뒤 안 맞는 트럼프의 달러 약세 유도

주지하다시피 요즘 미국은 대규모 양적완화와 경기부양으로부터의 출구전략을 모색 중이지만 여전히 달러는 역사적인 상승 국면에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달러화의 종합적인 실력을 나타내는 실질실효환율(2010년=100)은 지난 2월에 126을 기록했다. 달러화 강세가 시작된 3년 전과 비교하면 거의 20%가 오른 것이다. 이는 당연히 미국의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세계 투자자금이 달러화 구매에 집중된 결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강한 달러’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며 개입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중국에 대해서는 대북 정책에 대한 협력을 조건으로 중국의 ‘환율조작국’ 판정을 연기할 의사를 시사했다. 통화정책을 외교문제와 거래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트럼프 정권의 ‘예측불가측성’이 세계 외환시장을 뒤흔들었고, 특히 리스크 회피를 지향하는 투자심리로 인한 엔화 상승 기조로 이어졌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 달러당 108엔대가 일본 기업의 수익 분수령

좌충우돌 트럼프의 ‘엇갈린’ 발언으로 도쿄의 닛케이지수가 4일 연속 속락해 지난해 12월 이후 최저가를 기록한데다, 엔화가 갑자기 달러당 108엔대로 내려않았지만 일본 당국은 침묵을 지켰다.

이는 무엇보다 트럼프 행정부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반박에 나설 경우 자칫 ‘역린’을 건드려 역효과를 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일본경제신문>은 14일 분석했다.

▲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에서 관계자가 달러, 엔화 등 외화를 다루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지난 2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환율정책의 경우 양국 재무장관의 논의에 일임한다고 합의한 마당에 이번 트럼프의 발언에 반론을 가할 경우 오히려 미국에 ‘역습’을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만들어내는 예측불가측성으로 일본 경제, 특히 ‘아베노믹스’ 경제는 살얼음을 걷는 형국이다. 세계경제의 리스크가 부상하면 가장 먼저 매도세로 돌아서는 것이 일본주식이기 때문이다. 저금리의 엔화로 충당된 세계의 투자금이 역류해 엔화 강세와 주가 약세로 이어지는 것이다.

특히 달러당 108엔대라는 환율이 일본 경제에 미치는 의미는 매우 큰 것 같다. 왜냐하면 대체로 일본 기업들은 1달러=108엔을 기업업적의 분수령으로 간주해왔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1달러=110~115엔을 전제로 10% 이상의 경상수지 증가를 예상해왔는데 그 전제가 무너져 버리는 것이다. 실제 엔화 강세에 수출기업의 채산성 악화 우려가 커지면서 도쿄 주식시장에서는 자동차와 전자업체 등 수출주가 눈에 띄게 약세로 돌아섰다.

이처럼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전략 자체가 매우 불투명한 상황에서 4월 18일 미국과 일본은 도쿄에서 경제대화를 갖는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대화의 최대 초점은 무역이다. 트럼프 정권 등장이후 ‘찰떡궁합’을 과시하는 듯했던 미일 간에 본격적인 경제 전쟁이 시작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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