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무언가 불안하다. ‘세기의 담판’으로 주목받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첫 정상회담후 분위기다.

▲ 남영진 논설고문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에 이어 지난 6~7일 미국 플로리다주의 팜비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초청외교 결과가 불분명하다. 우리의 관심사인 북핵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시스템·THAAD) 배치문제에선 합의내용이 전혀 발표되지 않았다. 무언가 이면합의가 있지 않겠가 하는 의문만 더한다.

중국의 한국에 대한 사드보복 중단에 대해 논의했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북핵 문제해법에서는 중국의 역할론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 같다.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총론 공감, 각론 이견’이라는 기존 입장에서 한 발짝도 못나간 것 같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회담 후 “6일 시리아 공습을 통해 미국이 필요하면 행동을 취한다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충분히 보여줬다”고 말했다. 회담 중 시리아에 토마호크 미사일 공습이라는 카드로 북한과 중국에 미국의 북핵 해결 의지를 전달했다는 추측기사만 나왔다.

한반도 위에서 북한의 미사일이 날아다니고 태평양 하늘 넘어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오고갔지만 우리는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신세다.

사드 문제를 공론화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구치소에 있고 황교안 권한대행은 굵직한 외교는 손을 놓고 있다. 대선에 정신이 팔려있는 각 당 지도부는 머리위 ‘성층권’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애써 무관심하다. 괜히 복잡한 사드 문제를 건드렸다가 표 떨어질까 어정쩡한 입장이다.

어쩌면 미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평화문제보다 그들의 먹고사는 문제가 더 초점이 되었던 거 같다. 외신들은 미국의 트럼프가 중국과의 무역 불균형을 강력히 시정해 줄 것을 요구해 중국으로부터 ‘100일 계획’이라는 일정표를 얻어냈다며 ‘트럼프의 판정승’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회담 후 “양국 관계에 엄청난 진전” 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한국에도 무역흑자를 시정하라는 ‘압박’이 가중될 전망이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7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플로리다 팜비치=신화/뉴시스]

미국은 이번 정상회담 의제를 무역불균형 해소, 북핵 해결, 남중국해 갈등해소 등의 순으로 잡았다. 우선 순위였던 무역 문제에선 확실한 답변을 들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 “중국이 미국을 강간하고 있다” “피를 빨아먹고 있다” 등 자극적인 용어를 써가며 미중간 무역불균형 해소 등을 위한 공약들을 쏟아냈다. 이번 회담에서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일정에 합의함으로써 일단 성공적이다.

두 번째 의제였던 북핵과 사드 문제는 오리무중이다. 회담전인 지난 2일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 인터뷰에서 “중국이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가 나서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혔다.

미 백악관 고위 관료도 정상회담에 앞서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말하는 독자행동이 지금까지의 6자회담인지 북미대화를 통한 담판인지, 아니면 직접 공격을 포함한 시리아식 해법인지는 모른다.

금한령(禁韓令), 한한령(限韓令)에 롯데마트 영업정지 등 사드 배치를 두고 강력히 대한 제제를 하고 있는 중국도 회담 후에 어떠한 변화 기미가 없다.

시진핑 주석은 박근혜 대통령을 2015년 9월 3일 전승절 행사에 초청해 천안문위의 중요한 자리를 배정하는 등 공을 들이면서 사드 배치에 반대의사를 전했다. 시진핑은 또한 한미 양국이 사드 배치를 발표한 지난해 7월 8일 직전에 황교안 총리를 만났을 때도 직접 반대의사를 전했는데 다음날 바로 발표됐다. 시진핑으로선 두 번이나 무시당한 셈이다.

이젠 사드가 사실상 미국이 북한을 핑계로 배치하려는 대(對)중국 견제용 무기라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즉 사드의 본질은 미국과 중국 간의 안보 외교 문제다.

박 전 대통령이 ‘통일대박'을 이야기하다 북한이 미사일을 쏴대자 느닷없이 사드 문제를 거론해 우리 정부가 떠안은 셈이 됐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과 중국의 은밀한 거래가 있었다면 한국은 큰소리만 내고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는 ‘왕따’가 됐다.

▲ 8일(현지시간) 주 요르단 시리아 대사관 앞에서 열린 미국의 시리아 공군기지 공습 비난 집회에서 한 남성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규탄하는 문구를 들고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 [암만(요르단)=뉴시스]

미국의 ‘모든 옵션’에는 북한에 대한 직접공격과 김정은 참수작전이 들어있다. 미국이 공격하면 북한은 남한을 공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사정거리가 아직 미국본토까지는 도달하기 어렵다. 북한의 중단거리 미사일은 오키나와 미군 기지나 일본을 겨냥한 정도다.

100여년 전 구한말 때처럼 한반도의 운명이 또다시 강대국간 세력 다툼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힘이 없어 당하는 것도 억울한데 지도자의 무지와 무능으로 국민이 희생되는 건 더욱 억울하다. 한 달 남은 대선 기간에 각 후보 캠프에서 북핵, 사드 문제에 좀 더 진지한 접근과 평화적인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는 이 정책만 보고 투표해도 옳은 선택이 될 수 있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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