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응백의 우리가사 이야기

[이코노뉴스=하응백 서도소리진흥회 이사장]

▲ 하응백 서도소리진흥회 이사장

경기 휘모리잡가에 ‘육칠월 흐린날’이라는 노래가 있다. 가사는 사설시조에서 나왔는데, 약간 변형했다. 앞부분 ‘육칠월 흐린날에’가 원래의 시조에서 추가되었고, 약간의 변형이 있다. 경기잡가가 사설시조를 대본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경기잡가의 형성과정의 한 형태를 알려주는 것이어서 대단히 흥미로운 것이다. 그 내용 또한 흥미롭다.

먼저 앞부분 가사 내용을 보자.

육칠월 흐린 날 삿갓 쓰고 도롱이 입고 곰뱅이 물고 잠뱅이 입고

낫 갈아 차고 큰 가래 메고 호미 들고 채쭉 들고 수수땅잎 뚝 제쳐

머리를 질끈 동이고 검은 암소 고삐를 툭 제쳐

이랴 어디야 낄낄 소 몰아가는 노랑 대가리 더벅머리 아희 놈 게 좀 섰거라 말 물어 보자

이 부분은 머슴의 차림새다. 흐린 날이기 때문에 우장(雨裝)인 도롱이를 입고 반바지인 잠뱅이를 입고 있다. 여기에서 일을 해야 하므로 호미에 가래 등의 농기구를 가지고 있고 또 소를 몰고 간다. 아마도 논이나 밭에 가는 길일 것이다. 상당히 바쁜 이 머슴에게 아마도 양반인듯한 한가한 사람이 말을 건넨다. “내 말들어라”하고. 이 양반이 머슴에게 하는 말의 내용은 무엇일까? 그 다음 가사가 이어진다.

저접대 오뉴월 장마에 저기 저 웅뎅이 너개지고 숲을 져서

고기가 숩북 많이 모였으니 네 종기 종다래끼

자나 굵으나 굵으니 자나 함부로 주엄주섬 얼른 냉큼 수이 빨리 잡아 내어

네 다래끼에 가득이 수북이 많이 눌러 담아 짚을 추려 마개하고

양끝 잘끈 동여 네 쇠등에 얹어 줄게

지날 영로에 우리 임 집 갖다 주고 전갈하되

마참 때를 맞춰 청파 애호박에 후추 생 곁들여서 매움삼삼 달콤하게 지져 달라고 전(傳)하여 주렴

양반이 머슴에게 말하는 내용인즉슨 오뉴월 장마 때 웅덩이가 새로 생겼는데 그 웅덩이에 고기가 많이 있으니, 그 고기가 크거나 작거나 간에 잔뜩 잡아다가 바구니에 담아다가 잘 간수해서 쇠등에 얹어 줄 것이니 가는 길에 우리 집에 들러 전해주고, 또 청파 애호박 곁들여 매콤달싹하게 지져달라고 말하라고 주문한다. 참 기가 막힌 주문이다. 자신은 가만히 있으면서 일하러 가는 남의 머슴을 불러다가 웅덩이에서 고기 잡아다가 자기 집에 가져다주고, 지져 놓아라고 말하라니. 요즘 같으면 거의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 중기까지의 신분이 철저했던 양반 중심 사회에서는 이런 주문이 통했을 지도 모른다. 마을에서 양반 또는 토호의 말은 그대로 법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내려오면 이런 상황은 이 노래처럼 풍자의 대상으로 변해버렸다. 자신은 건드렁 놀면서 머슴을 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그 다음 머슴의 대담이 더 재미있다. 심부름을 못하는 핑계를 대는 것이다.

우리도 사주팔자 기박하여 남의 집 멈 사는고로

새벽이면 쇠물을 하고 아침이면 먼산 나무 두세 번하고

낮이면 농사하고 초저녁이면 새끼를 꼬고

정밤중이면 국문자(國文字)나 뜯어보고

한 달에 술 담배 곁들여 수백 번 먹는 몸뚱이라

▲ 서서 빠른 속도로 부르는 휘모리잡가는 조선말기에서 20세기 초에 특히 성행하였던 노래의 하나다. 인천시 무형문화재들이 남의 집 머슴살이하는 총각의 모습과 생활을 익살스럽게 묘사하는 내용을 담은 ‘육칠월 흐린날’이라는 휘모리잡가를 부르는 모습.

머슴은 이렇게 항변한다. 나도 사주팔자가 기박하여 남의 집 머슴을 사는데, 새벽에는 쇠죽을 끓이고, 아침에는 먼 산까지 나무하러 가야하고, 낮에는 농사일해야 하고, 초저녁이면 농사일을 하고, 또 밤에는 소설 따위를 읽고, 게다가 한 달에 술 담배도 여러 번 하니 바쁘기 그지없다. 머슴이 얼마나 바쁘게 사는가. 그런데 할 일 없는 양반네가 고기 잡아서 심부름까지 하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 “전(傳)할지 말지.”이다.

이 머슴이 양반의 심부름을 하겠는가? 당연히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딱 부러지게 못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전할 수도 있고, 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애매모호하게 답을 한다. 여기서 양반은 상당히 약이 오르게 되어 있고 이 부분에서 듣는 사람은 한바탕 웃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눙치는 곳에서 해학이 발생한다.

이러한 ‘육칠월 흐린날에’는 조선 신분 사회가 무너져가는 와중에 발생한 나름대로 양반을 조롱하고 머슴의 기지를 찬양하는 내용인 것이다.

또 흥미로운 점은 1907년 3월 19일자로 콜롬비아 레코드에서 한국 최초의 상업음반을 발매하였을 때 이 노래를 음반에 수록하였다는 점이다. 이 음반에는 당시 사계축이라는 전문소리집단에서 활동하던 가객인 한인오와 관기 출신인 최홍매가 부른 총 8곡의 소리가 들어 있는데 바로 거기에 ‘육칠월 흐린날’이 ‘흰머리’란 제목으로 포함되어 있다.

8가지 소리는 유산가, 적벽가, 흰머리, 산염불, 양산도, 시조, 황계사 등인데, 이 곡들을 살펴보면 당시에는 시조와 가곡 가사, 경서도 소리를 함께 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육칠월 흐린날’과 같은 해학적인 소리도 담겨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인기 가요 중의 하나였다는 말이 된다. ‘육칠월 흐린날’은 사설시조의 경기잡가로의 수용, 개화기의 때의 대중성 등을 연구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자료라 할 것이다.

 

※ 하응백 서도소리 진흥회 이사장은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에 당선돼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옥봉의 몽혼’(2009)등 20여 권의 편저서가 있으며 ‘창악집성’(2011)이라는 국악사설을 총망라한 국악사설 해설집을 펴내기도 했다.

2002년 ‘휴먼앤북스’라는 출판사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는 하 이사장은 경희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문학박사를 취득했으며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국민대학교 문창대학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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