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범의 경제산책

[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

▲ 최성범 주필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하고 법의 심판대에 올려놓음으로써 촛불 혁명은 일단 성공에 필요한 필요조건을 갖추었다. 아마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에 큰 금자탑이 됨으로써 민주주의적 전통과 법치 수호라는 사명을 아마도 먼 훗날까지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촛불혁명이 무능과 무책임 그리고 불통으로 점철됐던 한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사법처리가 자체가 목적은 아님을 당연하다. 잘못을 바로 잡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하는 일이 국민 모두가 원하는 일이자 촛불혁명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어느 정권이든 기존 질서가 잘못됐다며 거대한 변화와 새로움을 지향한다고 소리를 높였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시절엔 신한국의 기치 아래 국가개조론이 나왔고, 외환위기 이후 등장한 국민의 정부 시절엔 개혁이 지상과제로 제시됐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사회 전분야에 대한 개혁을 시도했고 4대 개혁입법을 추진했다. 혁신도시도 이 때 시작됐으며 정치개혁은 큰 성과를 남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보수정권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혁신 중에서 공공혁신을 강조했다. 하다못해 6공화국의 노태우대통령도 5공청산을 내세웠다.

개혁에는 정치적 의미가 많이 담겨있고, 혁신에는 경제적 의미가 많이 담겨 있지만 쓰기 나름이라고 할 수 있다. 둘 다 가죽이라는 뜻의 혁(革)을 담고 있는 만큼 큰 일을 앞두고 새로운 마음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든 갑옷을 가다듬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장미대선 앞둔 후보들 모두 새로운 나라 건설 외쳐

▲ 잘못을 바로 잡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하는 일이 국민 모두가 원하는 일이자 촛불혁명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1차 범국민행동의 날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세월호 진상규명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자료사진

장미대선을 앞두고 대선주자들도 거의 예외 없이 새로운 나라 건설을 외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는 적폐청산이 브랜드다. 재조산하(再造山河)라며 대한민국 개조론을 내세우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 당 대통령 후보는 미래혁명의 기치 아래 미래 공정 자유 책임 평화의 가치를 내세우고 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용감한 개혁’을 제시했다.

후보마다 중점을 두는 분야와 개혁의 강도가 좀 다르기는 하지만 대한민국이 더 나아지기 위해선 뭔가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는 방향에 대해선 차이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개혁이라고 하든, 혁신이라고 하든, 적폐청산이라고 부르든 새로운 대한민국으로의 변화에 성공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정치 분야에선 뚜렷하게 확립된 절차가 없는 것 같다. 어느 정부나 취임초 국정 목표를 정확히 제시하고 힘 있게 추진해야 한다는 원론적 얘기 말고는 별거 없었던 것 같다. 아마도 협치나 연정 등의 정치적 상황이나 지도자의 개성과 관련된 리더십이 더 중요하게 작용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조직 분야의 전문가들은 명확한 변화관리의 원칙을 제시한다. 수 많은 조직의 사례에서 정립된 이론이 있다. 물론 정치와는 그 규모나 목적 등에서 다르긴 해도 진정한 국가개혁을 이루려면 귀담아 들을 얘기가 많다. 국가에 비해 규모는 작아도 살아남기 위해선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실함은 더 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변화 전문가들은 변화에 성공하기 위해선 그 원칙을 기계적으로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세계적인 변화관리 전문가인 존 코터(Kotter) 하버드대 교수는 조직이 혁신에 실패한 사례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변화를 성공으로 이끌려면 위기감조성, 강력한 팀 구성, 비전과 전략 개발, 새로운 비전 전파, 권한위양,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 얻기, 과제 본격 추진, 새로운 제도 정착 등 8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나라도 소홀히 하거나 건너뛰면 혁신은 실패한다는 것이다. 분위기도 반전시켜야 하고, 주체세력이 있어야 하며, 누구나 공감할 비전을 개발해 제대로 알리고, 힘을 실어주며 변화추진의 힘을 얻기 위해 단기성과를 보여줘야 하며, 비전을 실천한 뒤 제도로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코터교수의 8단계는 평범한 얘기 같지만 변화에 성공하려면 강력한 저항을 극복하는 동시에 조직 전체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일시적인 변화가 아닌 항구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오랜 고민과 경험의 흔적이 담겨 있다. 이 때문에 변화관리에선 공식이나 마찬가지다.

치밀하고도 끈기 있게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개혁 추진해야

이 원칙을 앞으로 추진될 대한민국 개혁 작업에 적용해 보면 성공 가능성을 미리 점칠 수 있지 않을까?

1단계 위기감 조성과 관련해서 전국민적인 공감대가 있어 문제가 없는 것 같다. 민주주의와 경제 위기를 동시에 겪었으니 말이다.

2단계 강력한 팀 구성에서부터는 상황이 만만치 않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신뢰를 얻는 일이 최우선이다. 국가개혁에 공감하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응원하고 있긴 해도 여소야대의 상황을 감안하면 국민 모두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개혁추진팀을 구성하지 못한다면 강한 신뢰를 얻기 힘들어지고 저항세력의 힘이 강해지기 마련이다. 민주당의 소수세력이던 노무현 대통령의 개혁이 시작부터 힘들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3단계 비전제시에서부턴 더욱 어려워진다. 여기서 비전이란 ‘미래에 대한 그림’으로 정의된다. 모두가 원하는 것이어야 하며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에 개혁을 남의 일로 여기게 되거나 너무 막연하게 느끼면 지지를 받기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 남의 일이 되고 말며 저항세력은 더욱더 강고해진다. 미래지향적인 비전일수록 성공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비전 제시에서 힘을 얻지 못하면 4단계(비전 전파)와 5단계(권한위양과 실행)를 열심히 하더라도 개혁이 큰 힘을 받기 어려워진다.

3단계에서 공감을 얻는 비전을 제시하고 4,5 단계를 통과한 뒤 방심해 단기성과를 제시하지 못할 경우 그동안 숨죽여 있던 저항세력이 일제히 목소리를 내게 된다. 또한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더라도 법과 제도 그리고 관행으로 자리 잡지 못할 경우 시간이 지나면 모든 성과는 수포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모든 단계가 다 중요하고 건너 뛸 수 없다는 게 개혁의 어려움이다. 다만 핵심을 정리하자면 개혁 저항세력이 등장할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누구나 공감하는 비전을 리더십을 가지고 추진하는 길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제 대선 레이스는 시작됐다. 대부분의 대선 주자가 새로운 대한민국을 외치지만 개혁이나 국가개조에 성공하기는 정말로 어렵다. 개혁은 의지만으로 힘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국민의 지지를 과신해서도 안 된다. 개혁은 정밀과학이나 마찬가지여서 치밀하고도 끈기 있게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게 수많은 조직의 변화 사례에서 정립된 변화관리의 원칙이다. 새로운 대통령이 대한민국 개조에 꼭 성공하기 바란다.

※ 최성범 주필은 서울경제 금융부장과 법률방송 부사장, 신한금융지주 홍보팀장,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를 지내는 등 언론계 및 학계, 산업 현장에서 실무 능력과 이론을 쌓은 경제전문가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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