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이민주 버핏연구소 대표] 글쓰기는 고도로 창의적인 행위라고 여겼다. 인공지능(AI)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인간만큼 글쓰기를 잘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머리에 떠오르는 다양하고 복잡한 생각의 파편들을 하나의 논리 구조로 연결하는 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량화나 규격화하고는 어울리지 않다고 치부해왔다.

▲ 이민주 버핏연구소 대표

그런데 알파고니 4차산업 혁명이니 하는 말들이 일상화하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인간과의 대결에서 바둑도 이기는 판인데 글쓰기라고 못할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 미국의 스토리텔링 벤처 기업인 내러티브사이언스가 만들어내는 기사를 보면서 예전의 생각을 접어버렸다.

이 벤처 기업이 생산하는 기사는 컴퓨터가 쓴 글이라고는 감히 생각지도 못할 만큼 자연스럽다.

이 회사가 작성한 과거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의 실적 분석기사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12월 21일 마이크론 테크놀러지의 1분기 실적 전망이 악화됐다. 이 회사에 대한 애널리스트들의 실적 컨센서스는 주당 4센트 손실에서 주당 6센트 손실로 바뀌었다”

인간이 쓴 기사와 뭐가 다른가. 스포츠의 경우도 단순하게 게임의 승부를 전해주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 야구 경기의 역전 우승 장면을 상세하고 드라마틱하게 설명하거나, 팀에 크게 기여한 선수를 부각시키는 기사도 생산해내고 있다.

이 벤처기업은 지난해에만 5억건의 기사를 포브스와 야후, LA타임스 등에 공급했다고 한다.

우리가 포브스에서 읽는 경제 기사 상당수가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 회사는 조만간 영화 대본이나 소설 쓰는 것도 가능하다고 장담한다.

금융권도 자산 운용 등을 로봇(알고리즘)이 해 주는 시대가 왔다. 이미 미국의 자산운용사들은 AI를 기반으로 한 로봇 투자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BlackRock)이 최근 일부 펀드매니저들의 형편없는 수익률에 실망해 이들이 맡아온 고객들의 돈을 로봇에 맡기기로 했다는 뉴스도 나왔다. 이런 물결이 언제 우리나라를 파고들 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 시기는 생각보다 빨라질 수 있다.

세계 최대 회사라는 말은 지구촌에서 가장 유능한 펀드매니저들이 일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회사에서 스타 펀드매니저 7명을 포함해 40명이 한꺼번에 짤렸다고 하니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뒷골이 송연해질 노릇이다.

이처럼 인간지능을 필두로 하는 신기술의 발전 속도는 우리의 예상을 배반하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을 절대로 뛰어넘을 수 없는 그런 영역은 과연 어디에 존재할까.

▲ 코스피 지수가 전 거래일 대비 17.08포인트(0.80%) 오른 2150.08으로 장을 마감하며 23개월 만에 2150선을 넘어선 16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KEB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뉴시스

문득 ‘감정’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인공지능이다 뭐다 하지만 이들의 실체는 다름 아닌 기계일 뿐이다. 기계가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최근 <인간은 과소평가되었다>는 번역서를 보면서 무릎을 치게 됐다. 저자인 제프 콜빈 포춘 편집장은 “인간은 고유의 강점 덕분에 인공지능을 절대적으로, 그리고 영원히 앞서는 영역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전의 인공지능 관련 서적들이 대부분 인공지능의 위력을 강조하면서 공포감을 조성하거나 기본소득의 도입같은 사후적인 대책을 논의한 것에 비해 한걸음 더 나아간 느낌이다.

인간고유의 강점은 다름 아닌 공감하는 능력(The Power of Sympathy)이다. 공감이란 타인의 감정이나 의견에 대해 나도 그렇다고 공조하는 걸 말한다. 두 사람 이상이 있어야 가능하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 신체의 한계를 가진 사람이 불굴의 의지로 장애를 딛고 무엇가를 성취하면 우리는 눈물을 흘리는데, 이런 공감은 2인 이상의 사회 구성원을 전제로 한다.

다행히 이렇게 중요한 공감을 인공지능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컴퓨터나 인공지능은 기본적으로 ‘혼자 과업을 해내는 기계’이다. 본질적으로 혼자 작업하기 때문에 공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주식투자나 자산운용은 어떤가. 공감이 필요할까. 답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 이민주 대표는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퍼듀대에서 MBA(경영학 석사)를 받았습니다. I.H.S버핏연구소를 설립해 투자교육 및 기업교육 전문회사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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