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얼터너티브 팩트(alternative fact) 이런 표현이 횡행하는 시절이다. 영국 대처 총리가 했다는 말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 이래 얼터너티브라는 단어, 또 한번 고생이 많다.

▲ 김미영 칼럼니스트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환상의 복식조를 구가하던 마가릿 대처가 선언한 그 신자유주의-보수주의의 선언은 무슨 록스타 이름처럼 TINA라 축약되어 한 시절 잘 팔렸다. 이제 유행에 밀려 사라졌으니 ‘새 것 숭배’가 때로는 좋은 일도 하는가.

그러나 그리 좋은 일도 아닌 것이, 그래도 대처는 부정할지언정 대안을 대안으로 쓰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좌 우 자본주의 사회주의 같은 공통의 어법 안에서 사고한 것이다.

대안을 고민하는 것이 촌스런 일로 되어 20~30년을 지나다보니 갈 길 잃은 ‘대안’은 엉뚱한 것에 합체되어 개고생하고 있다.

지나고 보니 미국 대통령은 십여년 단위로 구분할 수 있는 한 시대, 한 시절의 요약판인 것 같다. 우악스레 신자유주의를 들이대던 레이건-대처, 전쟁과 안보 장사라는 전형을 구가한 조지 부시, 안착한 신자유주의가 약간의 여유 속에 문화전쟁을 벌인 빌 클린턴-버락 오바마를 지나 이제 축적 위기를 돌파할 새로운 먹이를 찾아 온갖 거짓말로 가상현실을 만들어내는 도널드 트럼프를 보고 있다.

▲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지난 1982년 6월 프랑스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AP=뉴시스 자료사진

리얼리티 쇼로 유명인이 된 인물이 세계 최대 강대국의 선출된 대통령이라는 사실 자체가 매우 상징적이다. 텔레비전 리얼리티 쇼는 리얼리티가 아니라 쇼인데, 웃고 즐기자는 쇼가 실재를 농락하여 웃지 못할 사람 양산하는 현실을 만들고 있다.

<프로듀스 X 101>이 시청자 투표를 조작해 피디 등 제작진이 구속되었다. 차고 넘치는 오디션 프로그램 중 유독 그 프로가 폭발적인 인기를 끈 것은 ‘국민 프로듀서’ 개념, 즉 시청자 투표로 데뷔조를 뽑는다는 것을 대대적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청자 투표를 조작했으니 자기 존재 기반을 허문 것이다. 쇼 제작자의 부패를 질타하지만 이래도 먹힌다는 오만, 실제로 받아들일 거라는 오만이 더 무섭다. 숫자라는 아주 객관적인 사실조차 개의치 않은 오만, 수십만 시청자의 합리적 판단력을 무시한 오만.

<뉴욕 타임스> 등 미국 유수 매체의 서평가로 비평 분야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치코 가쿠타니가 지은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라는 책을 봤다. 시각도 좋지만 풍부한 자료와 정보도 도움 주는 바 크다. 시사 상식 공부할 교과서로 훌륭하다. 대안사실이란 사실이 아닌 것, 한마디로 거짓말을 그럴듯하게 부르는 말이다.

▲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저자 미치코 가쿠타니 /역자 김영선, 정희진(해제) /돌베개 2019년 10월 4일

책의 말미에 붙은 정희진의 해제가 눈길을 끌었다. 그는 대뜸 “나는 이 책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저자가 제기한 문제를 공유하기를 절실히 바란다”고 한다. 주례사 비평이 아님은 확실하고 대체 그 동의하지 않는다는 ‘관점’은 뭔가 살펴 봤다.

나도 이 연재물에서 언젠가 썼지만 상대주의가 현대 인식론의 정설이다. 사실 자체란 없고 맥락 속의 사실, 그리고 그 해석이 중요하며 해석은 해석하는 자의 포지션(젠더, 나이, 인종, 성적 지향 등)과 그로 인한 퍼스펙티브가 좌우한다는 것이다.

그런 구성주의, 상대주의 인식론을 발전, 환호한 것은 여성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이다. 가쿠타니가 주목한 것은 후자이다. “얄궂은 건, 우파 포퓰리즘이 포스트모더니즘 논의를 전용해 객관성에 대한 철학적 부인을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41쪽)

그러니 서로 경쟁하는 현실이 있을 뿐이고 여러 대안 사실들이 있을 뿐이다. 맞고 틀리고를 가늠할 수 없는. “객관성의 죽음은 올바름의 의무를 덜어준다. 그것은 흥미로움만을 요구한다.”(스탠리 피시; 39쪽) 같은 편이 신빙성 있다고 보면 되고 재치있는 은유와 말장난으로 설득력을 배가한다.

그러나, 객관성, 사실, 진실은 있다, 이게 가쿠타니의 입장이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는 것이지, 저마다의 사실을 가질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을 지낸 사회학자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핸; 15쪽) 그리고 냉정하게 따져 보고 감정에 동하지 않는 이성이 필요하다는 링컨을 인용한다.

사람도, 철학사조도 자신의 시대, 전성기가 있다. 그것을 넘어 오래 살아 있으면 시대착오가 된다. 군인권센터장을 삼청교육대에 보내야 한다고 호언하는 전직 군인은 1980년대 전두환 시절에 정신이 고착되어 있는 것이다.

▲ '프로듀스 X 101' 1회/엠넷 제공

그 때가 한창 때겠지, 그 때가 좋았겠지, 이후는 너무 긴 연명. 30~40년의 시대 변화도 그동안 갱신된 사실과 정보도 하등 입력되지 않고 연명한. (자면서 잠꼬대를 할 수는 있는데 거기다 마이크를 대주는 자는 뭔가.)

똑같이, 거대 서사, 주인 서사의 몰락과 여러 목소리와 소수자 담론의 대두를 견인한 포스트모더니즘이 우파 포퓰리즘의 로고송이 된 지금,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세력이 생기고 강제징용을 부정하는 ‘연구’가 등장하는 지금,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 있고 사실과 데이터의 신중한 축적과 전문가 상호 검증을 통해 진실에 접근해가자는 태도는 다시금 강조되어야 한다. post-post truth는 처음의 (공격당한, 모노로그의)truth와 같지 않을 것이다.

데이터의 신중한 축적이라 함은 모든 사실을 다 평등하게 취급하는 수집가의 헛소동, 의도적인 중립성을 정확성인 양 포장하는 것, 그리하여 사실과 도덕의 거짓 등가성을 만드는 것 등을 경계한다는 의미에서이다.

가령 이준웅 언론정보학 교수가 ‘사실 충분성이라는 언론의 도그마’라고 본 것 “조각난 사실들을 단편적으로 보도하면서, 당사자의 행동이니까 사실이고, 검찰에서 나온 정보니까 사실이고, 관계자가 어쨌든 말한 것이니 사실이고, 다른 언론이 이미 썼으니까 사실이라고” 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경향신문, 11월 4일 31면)

차고 넘치는 사실 중에 무엇을 보도할 것인가,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 무엇을 주목할 것인가의 전문가 책무가 중요하다. (나는 전문가 책무라는 회피적 용어로 결국 중요한 것은 입장과 관점이라는 옳은 입장을 설득력 없게 부정하고 있는 건가?)

▲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저자 프리모 레비 /역자 이소영 /돌베개 2014년 5월 12일

증거와 증인과 증언의 소중함을 되새기며 나는 가쿠타니의 참고문헌에도 있는 프레모 레비를 다시 읽었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처음 나왔을 때 사놓고 가슴이 아파 제대로 읽지 못하고 사회과학 이론 요약하듯 해치운 그 책. 책 내고 일 년 후 자살한 레비의 절망/인간적 행위를 의식하는 독서 행위는 많은 에너지를 요구했다.

내친 김에 <멍키 스패너>까지 읽게 되었는데, 거기서 글 쓰는 자들을 섬뜩하게 할 만한 이야기를 만났다. 다리를 잘못 세우면 성수대교처럼 끊어지고 건물을 잘못 지으면 삼풍백화점처럼 무너진다.

그런데 글을 잘못 쓰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무책임하고, 그래서 어느 작가의 구조물이 무너졌다고 해서 그가 기소당하거나 감옥에 가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77쪽)

“어설프거나 불필요한 것을 쓰고도(그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그걸 깨닫지 못하거나, 아니면 깨달으려고 하지 않는다. .. 종이는 너무나 관용적인 재료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종이에다 아주 어리석은 것을 쓸 수 있지만, 종이는 절대 항의하지 않는다. 광산의 보강목재처럼 하중이 너무 많아 무너지려고 할 때처럼 삐걱거리지 않는다. 글쓰기 작업에서 경종의 신호와 체계는 조잡하고, 삼각자나 추선처럼 믿을만한 것이 전혀 없다.”(71쪽)

공적인 언사 또한 그렇다. 두렵지 않은가.

※ 김미영 칼럼니스트는 고려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고려대, 홍익대 등에서 강사로 일했고 학술연구교수를 역임했다.

전공은 현대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로 관련 책과 논문을 여럿 발표했으며 섹슈얼리티 문제도 연구했다. 광우병 사태 즈음에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연재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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