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범의 경제산책

[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

▲ 최성범 주필

지난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MBC 정문. 더불어민주당 선거인단 모집 마감일을 앞두고 이날 밤에 방영될 '100분 토론' 녹화를 위해 정문을 들어서는 더민주 경선 후보 4인들의 앞에는 MBC노조가 내건 피켓이 들려 있었다.

피켓에는 "주권자의 명령 공정방송 되살리자!", "공영방송 독립 보장 국민에게 필요한 약속!"등의 문구가 쓰여 있었다. 다음날인 22일 MBC뉴스데스크는 더불어민주당의 유력 후보를 비판하는 보도를 여러 건이나 내보냈다. 전날 100분 토론에서 이 후보가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공영방송을 장악해서 국민의 방송이 아닌 정권의 방송으로 만들었고 MBC도 무너졌다”며 강하게 질타한 데 따른 보복성 보도였다.

일과성 해프닝이 아니라 오늘날 공영방송의 적나라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MBC의 경우 촛불집회에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곤욕을 치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촛불혁명의 와중에서도 공영방송들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앞으로의 장미 대선에서 출범할 새로운 정부가 바로 잡아야 할 일은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공영방송의 신뢰성을 회복하는 일은 서둘러야 할 과제다.

방송의 경우 공공성은 중요하다. 신문에 비해 라디오나 TV등의 방송은 선택성(selectivity)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 공공성이 강조되지 않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달률(reach)이 높아 그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전파라는 제한된 공공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국영방송제도를 갖고 있는 사회주의국가와, 민영방송 중심인 미국을 제외하면 대부분 공-민영방송 혼합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이유다.

한국의 경우 물론 법적으론 방송의 공정성과 공공성을 보장하고 있다. 방송법 6조는 ‘방송에 의한 보도는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며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을 강조하고 있고, 제44조(공사의 공적 책임)가 ‘공사(KBS)는 방송의 목적과 공적 책임,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을 실현하여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방송사 이사회를 정치권이 장악하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어 이러한 방송법은 선언적 의미밖에는 없다. 방송정책을 담당하는 주무부처인 방통위는 대통령 직속 합의제 행정기구로 위원장을 포함한 상임위원 2인을 대통령이 임명한다. 나머지 3명은 야당에서 2명, 여당에서 1명이 추천한다. 한마디로 방통위는 정부여당 소유물이다.

▲ 장미대선이후 출범할 새로운 정권이 해야할 일 중 하나는 방송을 정치권에서 해방시켜 국민들의 손에 돌려주는 일이다. 특히 공영방송의 정당성 확보는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에서 출발한다. 사진은 경기도 과천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리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 정기회의 모습. /뉴시스 자료사진

KBS이사회의 경우 여당몫 7명, 야당몫 4명으로 배정돼 있다. 게다가 방통위의 추전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 있으니 이사회 자체가 여야의 나눠먹기로 구성돼 있는 셈이다. MBC의 이사회나 마찬가지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이사진 구성도 다를 바가 없다. 여당 추천 6명, 야당 추천 3명으로 방통위가 임명한다.

한마디로 방송은 구조적으로 정치권에 예속되도록 돼 있다. 이처럼 이사 추천권을 정치권이 사실상 독점하는 상황에서 방송의 정치적 독립이란 설 땅이 없다. 당연히 정치논리, 진영논리만이 지배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방송의 공정성 위기를 초대한 원인이 아닐 수 없다. 결국 구성원만의 잘못, 경영진만의 잘못이라고 보긴 어렵다. 사장만 교체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로 새로 들어서는 정권마다 한국의 공영방송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하는 게 이미 관행으로 굳어져 있다. 일종의 전리품이자 장기집권을 위한 구도였다. 이러한 관행은 정도 차이는 있지만 민주화 세력이든 보수진영이든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싹쓸이와 보복이 되풀이되는 가운데 공영방송의 정당성은 상실됐다. 공영방송의 위기다. 이는 35년째 동결돼 있는 KBS시청료, 정권때마다 CEO 리스크가 생기는 MBC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종편에 대한 파격적인 특혜도 결국 정치권의 방송 쟁탈전에서 생긴 부산물이다.

이제 방송이 제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선 방송을 정치권에서 해방시켜 국민들의 손에 돌려주는 일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인물들을 다 교체한다고 해도 그 또한 정치적 독립 내지는 공정보도라고 보기 어렵다. 이미 김대중, 노무현 정부시절에 익히 경험했던 바가 아닌가?

특히 현재처럼 정치권이 방송사의 이사회를 장악하는 구조하에선 방송의 정치적 독립이란 요원한 일이다. 야당 몫을 늘린다고 해 봐야 결국 마찬가지다.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여당 2대 야당 1의 구조를 반반 내지 7대6으로 바꾼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결국 정치권의 나눠먹기에서 벗어날 수 없고 결국은 정략적 판단이 앞설 수밖에 없다. 정치권의 나눠먹기를 없애고 그 자리를 다시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게 시작이다. 정치권의 추천 몫을 없애든지 최소화하고 시민단체, 지자체, 전문가 집단 등으로 구성해야만 공영방송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여기서 공영방송의 모범인 영국 BBC에서 해답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BBC 트러스트(The BBC Trust)는 BBC의 전략과 연간 예산 등을 승인하며, 집행이사회의 성과 등을 평가하는 역할을 한다. 12인의 위원으로 구성된 BBC트러스트에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의 지역별 대표를 포함한다. BBC의 트러스트(이사회)는 정치권력의 이익을 반영하는 한국의 공영방송 이사회와는 달리 BBC가 정치권력이나 자본의 간섭에 노출될 때 최일선에서 저항하는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있다. BBC에 대한 세계의 신뢰가 생긴 원동력이다.

새로운 정권이 해야 할 일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공영 방송의 정당성 확보는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이며 이는 정치권으로부터의 독립에서 출발해야 한다.

 

 

※ 최성범 주필은 서울경제 금융부장과 법률방송 부사장, 신한금융지주 홍보팀장,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를 지내는 등 언론계 및 학계, 산업 현장에서 실무 능력과 이론을 쌓은 경제전문가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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