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단 모임은 친목수준…조직·예산 40% 축소

[이코노뉴스=이종수 기자]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4일 50년 동안 사용해온 '전국경제인연합회' 명칭을 '한국기업연합회'로 바꾸고 재계 관련 연구에 집중하는 '싱크탱크'로 거듭나겠다는 혁신안을 내놨다. 그러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뒷돈 창구로 지목된 전경련의 혁신안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들의 비판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대국민사과와 함께 최근 한 달여 간 혁신위원회를 통해 논의한 전경련 혁신안을 발표했다.

허창수 회장은 "지난해 불미스러운 일로 국민들께 실망을 안겨드린 것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며 "전경련은 앞으로 초심으로 돌아가 경제단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조직으로 거듭나겠다고"고 말했다.

허 회장이 회원사에 보내는 서신 등을 통해 사과에 나선 적은 있지만 직접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혁신안의 핵심은 ▲ 정경유착 근절 ▲ 투명성 강화 ▲ 싱크탱크 강화 등이다.

▲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에서 허창수(왼쪽 세번째) 전경련 회장 등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뉴시스

정경유착 근절을 위해 기존 전경련의 관련 조직·예산을 없애고 싱크탱크 기능을 중심으로 재편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그동안 문제로 제기되어온 운영의 불투명성을 해소하겠다고 선언했다.

◇ '싱크탱크' 기능 강화…‘재계 목소리 낸다’

전경련 사무국은 회원사 관리 및 경제외교 등 최소한의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다만 당분간은 현 체제대로 전경련과 한국경제연구원을 별도 법인으로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전경련이 밝힌 '싱크탱크' 기능은 한국경제연구원이 담당하게 된다.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이 원장을 맡고 있는 한국경제연구원은 주로 기업과 관련된 연구를 진행해왔다. 전경련은 한국경제연구원의 연구 기능을 기반으로 재계의 목소리를 내는 기관으로서 새로운 역할을 찾겠다는 계획인 셈이다. 지금까지 전경련 혁신과 관련해 많이 논의된 것은 미국의 헤리티지재단과 같은 스타일로의 변신이었다.

그러나 전경련 관계자는 "헤리티지재단과 같은 형태로의 전환에 대해서는 기업들 반대가 컸다"고 밝혔다. 개인과 기관 기부금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헤리티지재단은 국가 차원의 정책에 대한 제언을 주로 하고 있다.

전경련이 혁신안을 통해 '싱크탱크' 기능을 전면에 내건 것은 "재계를 위한 연구에 집중하겠다"는 점을 부각시켜 회원사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포석이다. 지금까지 전경련은 사무국 중심의 사회공헌 활동 등이 과도해지면서 회원사들과 소통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미 지난달 연례총회 때부터 올해 예산에서는 사회협력회계 항목을 모두 없애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전경련의 예산은 크게 사무국 운영과 관련된 일반회계와 사회공헌 활동 등과 관련된 사회협력회계, 여의도 사옥 관련 특별회계로 나뉜다.

◇ 4대 그룹 탈퇴…임직원 임금 줄 돈도 부족

전경련 기능을 줄이고 한국경제연구원에 집중하기로 한 데는 예산 부족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연간 예산의 70%가량을 담당해온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 4대 그룹이 떠나면서 전경련은 현재 임직원들의 임금을 줄 돈도 부족한 상황이다.

또 올해 말에는 가장 많은 공간을 사용해온 LG CNS와의 임대 계약도 끝나면서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대출금 상환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전경련 사업 규모 유지 혹은 신규 사업 확대 등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셈이다.

▲ 서울 여의도에 있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건물/뉴시스 자료사진

전경련은 사무국 인력 구조조정 등과 관련해서는 "혁신안에 대한 회원사들의 반응 등을 봐가며 인력 재편 등을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경련이 혁신안을 내놨지만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해체 요구를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경련이 사회공헌 활동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능을 유지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날 성명을 내 "이번 혁신안은 그간 반복해온 쇄신 약속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해체라는 근본적 쇄신 방향을 외면하고 조직 유지를 선택한 전경련의 진정성이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 회장단 모임은 친목 수준…‘실세 회장 절실’

또 마땅한 후보를 찾지 못해 회장직 연임을 결정한 허 회장의 후임을 찾는 것도 과제다. 재계에서는 19대 대선이 끝난 후에 후임 회장 등을 찾는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추진력을 지닌 차기 회장이 취임한 후에 진짜 혁신이 시작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와 함께 탈퇴한 주요 그룹들을 다시 회원사로 끌어들이는 것 역시 전경련 앞에 놓인 과제다.

주요 그룹들이 빠진 상황에서 경제단체로서 역할을 하기에는 명분과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달 연례총회후 구성된 혁신위원회는 허 회장과 함께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이웅열 코오롱 회장 등 내부 인사와 윤증현·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 김기영 전 광운대 총장이 참여했다.

전경련 회장단 모임도 친목단체 수준으로 위상이 대폭 하향 조정된다. 회장단이 의사결정에 개입하지 않도록 기능을 조정했기 때문이다. 혁신안에 따르면 앞으로 출범하게 될 한기련은 1961년부터 중요 의사결정기구 역할을 해왔던 회장단회의를 폐지하고 경영이사회를 중심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지게 된다.

권태신 부회장도 이날 "회장단 모임은 더 이상 의사결정에 관여하지 않고, 친목단체로 모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기련의 경영이사회는 총 20여명의 회원사 전문경영인으로 구성, 운영될 최고의사결정 기구다. 기존 전경련에서 벌어졌던 사무국의 독단을 방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마련된 것이다.

전경련 측은 이날 쇄신안을 통해 조직과 예산을 40% 이상 축소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조직 축소는 당장 다음 주부터 실행되지만, 단체 명칭 변경 등 법적 절차가 필요한 부분은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란 게 전경련 측 예상이다.

권 부회장은 "조직 축소는 정관에 명시돼 있는 것이 아니라 회장단에서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음 주 중에 새로운 조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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