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이동준 기타큐슈대 국제관계학과 부교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아키에 스캔들’로 집권 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아키에 스캔들은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가 자신이 명예교장으로 있던 오사카(大阪)의 사학재단 모리토모(森友)학원의 국유지 헐값 매각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말한다.

▲ 이동준 교수

특히 아키에가 모리토모학원에 거액의 기부금을 주었다는 증언이 나오고 외부 활동을 할 때 공무원들을 대동했다는 사실이 잇따라 드러나면서 여론은 악화되고 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모리토모학원의 가고이케 야스노리(籠池泰典) 이사장은 원래 아베의 열렬한 지지자이자 극우성향을 지닌 인사다.

그는 지난해 새로운 초등학교를 건립하는데 사용할 부지로 국유지를 매입했다. 그런데 이 국유지를 지방정부와의 수의계약을 통해 평가액의 14%에 불과한 1억3400만엔(약 13억7500만원)이라는 헐값에 사들였다. 누가 봐도 특혜 의혹을 제기할 만한 상황이다.

더욱이 새로 건립될 초등학교 이름이 ‘아베 신조 기념 소학교’이고 아키에 여사는 이 학교의 명예교장으로 이름이 올라 있다.

때문에 가고이케 이사장과 아베 부부 사이의 비리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이 ‘아키에 스캔들’로 비화하고 있다.

이 와중에 가고이케 이사장이 23일 폭탄발언을 터뜨리면서 아베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었다. 그는 이날 일본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아키에 부인은 (기부금 전달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지만, 우리들은 매우 명예로운 것이어서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키에가 2015년 9월 100만엔을 기부한 정황을 6하 원칙에 따라 진술했다. 오후에 열린 중의원 증인 심문에서도 “틀림없다. 아키에 부인이 전화로 입밖에 내지 말라고 요구했다”고 쐐기를 박았다.

앞서 가고이케는 지난 16일에도 관련 사실을 공개했지만, 아베 내각은 이를 전면 부인했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23일에도 회견에서 거듭 기부 사실을 부인했고, 아베 총리역시 “관방장관이 설명한 대로”라고 말했다.

▲ 일명 '아키에 스캔들'의 핵심 인물인 가고이케 야스노리(籠池泰典) 모리토모(森友)학원 이사장이 23일 일본 도쿄 국회 청문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그는 "국유지 헐값 매입에 정치권이 개입했다" "아베 총리로부터 기부금을 받았다"라고 밝혔다.【도쿄=AP/뉴시스】

가고이케가 유치원 원장실에서 단 둘이 있을 때 기부금을 받았다고 진술한 만큼 진실 공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증언이 거짓이면 가고이케는 처벌받고, 아베 내각의 반박이 허위면 정권이 치명상을 받는 상황이 돼버렸다.

그는 기부금 문제를 공개한 이유에 대해 “나 혼자 나쁜 사람인 양 하는 정부와 오사카부의 태도를 보고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고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원래 아키에와 가고이케 부부는 가까운 사이였다. 가고이케는 아베의 최대 장외 지원세력인 우익단체 일본회의 회원이다. 모리토모 운영 유치원은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君が代)를 제창하고 운동회 때 원생들에게 “아베 총리 힘내라”는 구호를 시키기도 했다.

아키에는 2014년 4월 모리토모학원이 운영하는 츠카모토(塚本) 유치원을 방문했다가 원생에게 “아베 총리는 일본을 지켜주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감동해 해당 초등학교에 명예교장으로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

아키에 여사가 국유지 매입에 직접 관여한 정황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가고이케도 초등학교 건립과정에서 “아베 총리에게 직접 부탁을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아베는 국회 답변에서 “나와 아내가 관계했다면 총리도, 국회의원도 그만두겠다”고 배수진을 친 상태다.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왼쪽)와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가 지난해 11월 17일 도쿄(東京) 하네다(羽田)공항에서 미국 뉴욕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도쿄=AP/뉴시스 자료사진】

아베 총리 측은 “기부한 적 없다. 영수증 등 기록도 없다”며 부인하고 있지만, 야권에서는 사실이 맞는다면 아베 총리가 사퇴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아키에는 지난해 여름 참의원 선거 기간 공무원들의 수행을 받으며 선거 지원에 나선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크게 떨어졌다. 이달 들어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5~8%포인트나 하락했다.

NHK 여론조사(3월 8~10일)에서는 내각 지지율이 전달보다 8%포인트나 낮은 51%였으며 아사히신문의 여론조사(3월 11~12일)에서는 지지율이 3%포인트 떨어지며 40%대인 49%로 내려앉았다. 그의 지지율이 줄곧 60% 전후에서 굳건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최근의 하락세는 심상치 않다.

아키에가 권력형 비리 의혹의 중심에 있는 것은 ‘알아서 기는’ 일본 특유의 ‘손타쿠’(忖度) 문화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아키에 뒤의 아베를 의식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선출된 권력이 아닌 ‘영부인 스캔들’은 사안의 민감성과 폭발성 때문에 정권에 엄청난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이 점에선 별로 다른 점이 없어 보인다.

 

저작권자 © 이코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