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홍국 편집위원]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렸던 마스시타전기 창업주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1894-1989)는 위기관리에 능숙했다.

1920년대 일본경제는 불황에 빠졌지만 마쓰시타의 사업은 밑바닥에서 익힌 상술을 버팀목 삼아 번창해 나갔다. 전구 소켓으로 시작해 램프, 다리미, 건전지, 라디오로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 김홍국 편집위원

역시 미국의 대공황 여파로 경영 상황이 좋지 않았던 1932년 5월 5일 마쓰시타는 '좋은 물건을 싸게 공급하여 가난을 몰아내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라는 使命(사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날을 창립기념일로 정했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그는 군부에 협조한 ‘재벌’로 간주됐고, 그 결과 미 군정으로부터 1년간의 ‘공직 추방’을 명령을 받았다.

‘군부 협조’와 관련, 마쓰시타는 “비행기의 ‘비’자도 모르는 내게 구 일본군이 비행기 부품 조달을 강요하는 걸 보고 ‘아, 일본이 지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듬해인 46년 마쓰시타는 '번영을 통한 평화와 행복(Peace and Happiness Through Prosperity)'이라는 뜻을 가진 PHP연구소를 창립했다.

그는 일본의 재건과 번영을 위한 사회 계몽운동을 주도했으며, 월간 'PHP를 창간해 자신의 다양한 경영철학을 제시했다.

특히 매달 이 잡지에 글을 기고하면서 민주주의와 노사관계, 교육 등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알렸다.

이후 일본의 전후 고도성장기에 파나소닉(내셔널) 브랜드가 가전제품 분야에서 세계를 휩쓴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마쓰시타가 주창한 게 ‘수도철학’이다. 수돗물이 무궁무진하고 값싼 것처럼 가전제품도 싸게 많이 보급해 사람들에게 행복을 줘야 한다는 뜻이다.

마쓰시타는 이미 28년 전인 1989년 사망했는데. 그의 책은 지금도 매년 10만부 이상 팔리고, 일본 각지에서 자발적인 마쓰시타 연구회가 조직되는 등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 마쓰시타 고노스케/네이버 이미지 캡처

마쓰시타는 어릴 때 집이 가난해 초등학교를 중퇴했다. 몸도 허약했던 그는 아홉 살 때 대도시 오사카에 홀로 나가 화로 가게, 자전거 가게에서 먹여주고 재워주는 조건으로 6년 간 일했습니다. 이후 전력회사에서 일한 뒤 그 경험을 바탕으로 1917년 마쓰시타 전기기구제작소라는 상점을 차렸다.

그는 가난하고 허약하고 못 배운 것을 불행이 아닌 은혜라고 말했다. 가난했기 때문에 부지런 할 수 있었고 허약했기 때문에 몸을 아끼고 건강관리에 힘썼으며 배움이 모자랐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사람을 스승으로 받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꿀 수 있었기 때문에 ‘경영의 신’이 될 수 있었다.

▲ 마쓰시타, 1962년 2월 <타임>지 표지 장식

그는 특히 ‘생각의 발전’에 많은 공을 들였다. 생각이 없으면 회사건 사람의 인생이건 잘 될 리가 없다고 믿었다.

마쓰시타 그룹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이끈 그의 경영철학은 무엇일까.

그는 직원들에게 고객이 “무엇을 만드는 회사인가?”라고 물으면 “마쓰시타전기는 인간을 만드는 회사입니다만, 전기제품도 만듭니다”라고 답변하도록 권유하곤 했다.

그는 기업철학을 묻는 언론에 대해 “물건을 만들기 전에 사람을 만든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계열사)사장들은 10년 앞을 보고 경영을 하시오. 나는 100년, 200년 앞을 내다보는 일을 하겠소”라고 말하곤 했다.

위기상황을 맞아 당면한 위기를 모면하려는 잔꾀를 부리기보다는 내부의 직원들을 아끼고 독려하면서 동시에 소비자와 국가경제를 위해 헌신하는 열정과 진정성 가득한 리더십, 이는 마쓰시타를 영원한 ‘경영의 신’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위기의 한국기업들이 배워야 할 리더십의 모델인 셈이다.

※ 김홍국 편집위원은 문화일보 경제부 정치부 기자, 교통방송(TBS) 보도국장을 지냈으며, 경기대 겸임교수로 YTN 등에서 전문 패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MBA(기업경영)를 취득했고, 리더십과 협상에 관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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