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담뱃값 인하하겠다는 후보 찍을 거다.”

경찰관 출신 50대의 후배는 각 당 대선 주자들이 안보 외교 경제 복지 등 대선의 공약을 발표하면서 왜 담뱃값에 대해선 언급이 없냐고 푸념한다.

▲ 남영진 논설고문

그는 경찰 출신답게 20대 이후 보수권 여당 후보만을 찍었고 지난 대선에서도 예외 없이 박근혜 후보에 표를 던졌다. 그러나 그는 2년 전 담뱃값을 2배 가까이 올리자 박근혜를 욕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부터 국회의 탄핵소추로 시작돼 헌법재판소가 전원일치로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파면을 결정했다. 물론 아무 공식 직함도 없는 강남아줌마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빌미가 됐고 박 대통령은 13가지 혐의로 고발된 것이다.

헌재는 박, 최가 특히 삼성에서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 때 미르, K스포츠재단에 340여억 원의 뇌물을 받고 국민연금을 이용해 이를 성사시켜줬다는 혐의로 박근혜가 ‘공범’임을 적시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이미 2005년 초 국민 절반이 애용하는 담뱃값을 ‘금연’을 이유로 2,500원에서 80%인상한 4,500원으로 큰 폭으로 기습인상한 때부터 지지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박근혜 캠프는 4년 전 겨울 대선전에서 문재인과 박빙의 대결이 이어질 때 ‘노인층에 20만원 지급’이라는 파격적 포퓰리즘 정책을 내놓았다. 자세히 보면 차등 지급이었지만 각 경로당에는 “모두 20만원씩 준다”라는 말이 돌아 60대 이상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금방 아닌 게 탄로났다. 노인들의 경제능력에 따라 차등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아이만 낳으면 무상 육아, 보육을 시켜주겠다”던 공약은 무상급식논란, 각 교육청과의 보육비 지원문제 등과 같이 ‘도로’가 됐다. 박근혜의 일관된 정책이 ‘증세 없는 복지’였다. 국민들은 의아해했지만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고 세원을 발굴해 서민들의 주머니를 빼앗지 않고 복지혜택을 확대한다는 ‘묘안’이 있나보다 생각했다.

결국 대국민 ‘사기’였다. 국민건강을 위해 금연을 유도한다는 명분은 거짓이었다. 정부는 몇 번의 시뮬레이션 조사를 거쳐 담배소비가 34%까지 줄 거라고 떠들었다. 그러나 담뱃값 인상폭이 너무 커 처음 3~4개월간 흡연인구가 조금 줄다가 공기업인 KT&G가 계속 질 좋은 담배를 생산해내자 다시 ‘도루묵’이 됐다. 2016년 담배 판매량은 729억 개비로 전년도 667억 개비보다 오히려 9.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흡연자 커뮤니티 단체인 아이러브 스모킹 회원들이 대박근혜 통령 퇴진과 담뱃세 인하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뉴시스

더욱 놀라운 것은 흡연 인구가 조금 줄었지만 담배세금은 오히려 급증한 것이다. 담뱃세는 2014년 7조원에서 가격을 인상한 15년에는 10조5,000억원으로, 그리고 16년에는 12조4,000억원으로 급증했다. 담배 1갑 4,500원 중에 세금이 70%가 넘는 3,318원이니 ‘흡연자가 애국자’라고 자조섞인 농담을 했지만 세금으로 진짜 애국한 셈이 됐다. 하루 1갑 피면 1년에 세금을 121만원을 내는 꼴이니 매달 10만원씩 더 세금을 낸 것이다.

여기에 박 정권 4년 내내 ‘증세없다’고 떠들었으나 월급쟁이의 세금은 대폭 늘었다. 근로소득세가 2012년 19조2,000억원에서 지난해인 2016년에는 31조원으로 무려 55%나 증가했다.

그러나 법인세 증여상속세 간접세 등 국세 전체는 19.5%가 늘어 월급쟁이의 근로소득세 증가율이 3배나 됐다. 이러니 서민들의 생활이 나아질 리 있겠는가. 서민들이 즐기는 소주값, AI(조류 인플루엔자)로 인한 달걀, 치킨값 상승을 계기로 물가도 올라 “속았다”는 원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지난 해 국회에서 담뱃값을 다시 인하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6년 담뱃값 인상 효과는 2005년의 담뱃값 인상효과와 비교할 때 오히려 부정적 반등작용이 훨씬 높았다”며 “서민가계에 부담만 주는 증세만 초래했다”고 담뱃값 인하를 주장했다. 10년전인 지난 2005년에 담뱃값 500원을 인상했을 때도 조금 줄다가 3년만인 2008년에 2003년 판매 수준을 회복한 바 있다.

이번 2015년 2000원 담뱃값 인상으로 첫해는 흡연자가 약 24% 감소했지만 2016년에는 판매량이 무려 11%가 증가돼 10년 전 500원 인상 때보다 흡연 회복률이 훨씬 빨라졌다. 그만치 서민들의 빡빡한 살림에 기호품인 담배와 소주 판매량은 더 늘어났다. 박 의원은 “담뱃값 인상이 판매량 감소로 이어진다고 볼 수 없다”며, “건강증진 효과는 없고, 서민 증세 효과만 있어 담뱃값을 다시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서울 시내의 한 편의점에서 흡연 경고 그림이 부착된 담배가 판매되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국민의당 이용호 의원은 정부의 이같은 정책이 오히려 양담배 판매량만 늘었다고 꼬집었다. 실제 양담배의 시장 점유율은 2012년 39.1%, 2013년 39.3%, 2014년 38.8%로 40% 미만이었으나 담뱃값 인상후인 2015년 43.2%, 2016년 8월까지 42.4%로 증가했다. 2016년 담배 수입액은 4억1,020만4,000달러로 1996년(4억2,401만4,000달러) 이후 최고액을 기록했다.

이 의원은 “정부의 담뱃값 인상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논란이 많았다”며 “서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정부의 배를 불리는 증세 정책에 불과했다”고 비판했다.

서민들의 주머니를 쥐어짠 담뱃값이 정부에겐 ‘황금 거위’가 된 것이다. 국민의 건강을 내세웠지만 결국 담뱃값 인상으로는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정부가 국민에게 ‘사기’를 치면서 정책의 정당성을 보장받기는 힘들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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