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전국제 전 한국일보 기자] 버락 오바마 미국 전대통령은 1996년 상원에 첫발을 내딛고 민주당과 공화당 고참 의원들의 소통정치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 전국제 전 한국일보 기자

은퇴를 앞둔 공화당 존 워너(John Warner)의원과 최다선 최고령의 민주당 로버트 버드(Robert Byrd)의원은 끊임없는 대화와 토론 등 다양한 형태의 만남을 통해 협치에 힘썼고, 공화당의 테드 스티븐스(Ted Stevens)의원과 민주당의 대니얼 이누에(Daniel Inouye) 의원 사이에도 진정으로 상대를 인정하는 유대감을 엿볼 수 있었다.

미국도 보수와 진보 정치인들 사이의 갈등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워싱턴 정치의 황금기라 불리는 이시기에 상원은 어느 정당이 집권하든 상관없이 양당이 서로 존중하며 행정부가 잘 굴러 가도록 가교 역할을 하였다. 오바마는 소통과 협치의 정치 현장을 목도하고, 이를 그의 유명한 저서 ‘담대한 희망’에 담아냈다.

그의 최대 치적으로 불리는 ‘오바마 케어’가 난관에 부딪쳤을 때도 소통으로 풀어냈다. 의료 소외계층의 건강보험 혜택을 대폭 확대한다는 대의명분에도 불구하고 흑인 대통령인 그의 추진 과정은 매우 험난했다. 서민층은 적극 지지했지만 일부 백인들과 노년층의 반대로 대립과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하지만 오바마는 포기하지 않고 몸에 체득한 유연한 소통과 끈질긴 설득력으로 반대의 물길을 우호적인 방향으로 돌릴 수 있었다.

오바마 소통의 원동력은 열정과 포용력에 있다. 공적자금 집행을 반대하는 의원 개개인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협조를 당부하고 전국을 돌며 국민의 소리를 경청하는데 온힘을 쏟았다. 대통령 취임식 전날에는 대선 때 자웅을 대결했던 존메케인 공화당 후보를 호텔만찬에 초대하여 “평생 미국을 위해 봉사했던 분”이라며 칭송을 아끼지 않는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준 일화는 유명하다.

이러한 소통의 리더십은 침체에 빠졌던 미국 경제를 신속히 회복시키는 엔진으로 작용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취임 첫해 마이너스 2.8%까지 추락했던 경제성장률은 2%대 중반의 성장세를 이어갔다. 2009년 7.8%였던 실업률은 2016년 4.7%로 떨어져 사실상 완전고용이 실현됐고, 1천50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었다.

▲ 지난해 3월 21일(현지시간) 쿠바 아바나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독립영웅 호세 마르티 기념상 앞에서 열린 기념식에 참석해 미국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가슴위에 손을 얹고 있다. 그 뒤로 쿠바 및 중남미 혁명 영웅 체 게바라의 얼굴 벽화가 보인다./[아바나=AP/뉴시스 자료사진]

우리나라의 현 상황은 역사상 최악이라 할 만큼 갈가리 찢겨 비참하다. 태극기와 촛불로 대변되는 보수와 진보, 노동자와 사용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세대간의 갈등, 자영업자의 비명, 깊은 수렁에 빠진 청년실업 등 국가 시스템이 붕괴되었다는 말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분열과 갈등을 치유할 포용과 통합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한국의 오바마’로 불리는 안희정 충남지사 민주당 예비후보가 소통과 협치를 내세우며 대연정을 외치고 있다. 안후보는 “87년 민주화 체제 이후 양쪽으로 갈라져 5년마다 되풀이 되는 현재의 정치 구조를 청산하고 진보와 보수의 두 날개로 한 차원 발전된 민주주의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안후보는 도지사로 7년간 일하면서 소통과 협치를 이미 검증 받았다. 상대 당이 다수인 도의회 구성임에도 불구하고 소통과 협치를 통해 전국 17개 시도지사 직무수행평가에서 10개월 연속 1위를 차지했다. 매니페스토 운동본부의 공약 이행 평가에서도 공동으로 최우수 등급을 받기도 했다. 안후보는 도민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불원천리 한달음에 달려가고, 몇 시간이 걸리든 끝장 토론을 한다.

안후보에게 소통은 체화되어 있는 것 같다. 충남도청이 하천을 막아 재해를 입었다고 도지사실까지 몰려와 책상을 쾅쾅 두드리는 농민을 와락 껴안아 감정을 누그러뜨린 후 대화를 이어나가는 화면이 TV를 통해 방영되어 ‘소통의 달인’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선거 유세 중 젓갈시장 좌판에서 장사를 하시는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기위해 쪼그려 앉은 자세로 눈높이를 낮추고 할머니의 두 손을 맞잡은 뭉클한 장면은 도민들의 심금을 울리며 재선의 손을 들어주었다.

안후보는 “나의 생각과 상대방의 이해 차이로 소통이 쉽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정신을 갖고 끊임없는 노력을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5월 9일 19대 대통령에 누가 당선되더라도 여소야대의 정치상황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자칫 대립과 갈등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부단한 소통의 길을 만들 리더십이 필요하다. 20년 전 워싱턴에서 오바마가 목도했던 소통과 통합의 정치가 2017년 대한민국에서도 피어나길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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