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최아람 기자]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의 ‘배터리 전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LG화학과 전기차 배터리 특허 소송중인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이 10년 동안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했던 합의를 깨뜨렸다"고 강조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28일 2014년 양사가 맺은 합의서를 공개하면서 "LG화학이 침해당했다고 제기한 미국 특허는 2014년 합의서에 나오는 한국에 등록된 특허와 같은 특허이기 때문에 부제소(不提訴) 합의를 어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 지난 25일 SK이노베이션이 자사 홍보 홈페이지에 공개한 LG화학의 리튬이온전지 분리막 관련 특허 원문. SK이노베이션은 제목, 요약, 발명자, 우선권 주장 등의 내용에 빨간 박스로 표시를 통해 비교했다. 이를 통해 한국에서 취득한 특허와 미국에서 취득한 LG화학의 특허가 동일한 내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합의서에는 두 회사가 2011년부터 배터리 소재인 '분리막 특허'를 두고 4년 소송전 끝에 '분리막 한국 특허'에 대해 국내·국외에서 10년 동안 어떤 소송도 제기하지 않기로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반면 LG화학은 "양사가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합의한 특허는 한국 특허이고, LG가 ITC(미국 국제무역위원회)에 제기한 소송은 미국 특허인데 SK이노베이션이 공개한 합의서에도 미국 특허를 포함한다는 문구는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했다.

LG화학은 "한국 특허와 미국 특허는 등록 국가가 다르고 권리범위가 다른 별개 특허이고, SK는 합의서 내용을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기 위해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개발자, 출원인, 특허 제목, 특허 도면 등 일치” vs “등 “미국 특허는 부제소 대상 해당 안 돼”

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지난 9월 일본 도레이와 함께 ITC와 델라웨어 연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이 2차전지 관련, 5개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SK이노베이션은 이중 1개의 특허가 두 회사가 소송을 하지 않기로 2014년에 합의했던 특허와 사실상 같은 특허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부제소 합의를 깼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2일 LG화학을 상대로 배터리 특허 소송 취하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했다.

SK이노베이션에 따르면 LG화학과 도레이가 제기한 특허소송 중 미국 특허번호 7,662,517은 한국 특허청에 등록된 특허 KR100775310에 해당한다고 한다.

미국 특허청과 한국 특허청에 등록된 특허 내용을 살펴보면 두 특허가 동일한 특허임을 알 수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개발자, 출원인, 특허제목, 특허 도면 등이 일치한다고 한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물론 특허는 속지주의를 따르기 때문에, 같은 특허라도 미국과 한국에서 적용되는 권리범위가 다를 수 있다”면서도 “이는 각국의 특허청에서 인정하는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특허의 본질이 다른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판매되는 쏘나타와 미국에서 판매되는 쏘나타가 각국의 규제나 도로교통법을 따르기 위해 특정 기능이 다르고 적용된 부품이 다르더라도 본질적으로는 같은 차량인 것과 같은 이치라는 설명이다.

동일한 발명에 대한 특허인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통상 발명에 대한 ‘설명’과 ‘도면’이 같은지에 따라 판단하는 게 일반적이다.

▲ 서울 서초구 법원 청사/뉴시스 자료사진

LG화학은 지난 2011년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국내에서 처음 ‘특허권침해금지’와 ‘특허무효주장’ 소송을 제기했다. LG화학이 2005년 획득한 ‘안전성 강화 분리막(SRS, 한국 특허 775310)’ 관련 특허가 핵심이다.

분리막은 양극재·음극재·전해액과 함께 전기차 배터리 ‘4대 핵심 소재’로 꼽힌다. 전기차 배터리 내부에서 양극재와 음극재가 섞이면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 이를 분리해 주는 역할을 하며 안전하게 배터리가 작동하도록 돕는 것이 바로 분리막이다.

당시 SK이노베이션 측은 법정에서 LG화학이 갖고 있는 특허와 다른 기술을 사용했다고 반박했다. 분리막과 보호재를 접합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게 골자다.

LG화학도 이 부분은 인정했지만 이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거의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특허권침해금지 소송 1심에서 SK이노베이션의 손을 들어줬고, LG화학은 고등법원에 항소했지만 곧 소송을 취하했다.

특허 무효 소송도 1심에서 SK이노베이션의 주장이 받아들여졌지만 LG화학은 특허를 정정한 뒤 해당 안건을 상고심에 올렸고,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을 받아 다시 심리가 이뤄지게 됐다.

분쟁이 길어질 조짐을 보이자 2014년 양 사는 “대상 특허(안전성 강화 분리막)와 관련해 직접 또는 계열사를 통해 국내·국외에서 상호간 특허침해금지나 손해배상의 청구 또는 특허 무효를 주장하는 쟁송을 하지 않기로 한다’는데 합의했다.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의 미국특허와 한국특허의 뿌리가 같다고 주장한다. LG화학이 한국 특허청에 2004년 12월 22일 등록한 2개의 특허 우선권 KR 2004-0110400과 KR 2004-0110402가 그것이다.

우선권이란 발명자가 여러 국가에서 특허출원을 하는 과정에서 물리적 거리, 시차 등으로 인해 특허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제도다.

세계 주요 국가 중 어느 한 나라에 우선권을 등록하고 나면, 다른 나라에서도 해당 출원일을 인정해주는 방식이다.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의 미국 특허가 ‘특허협력조약(PCT) 국제 출원 제도’를 통해 등록한 만큼 ‘한국과 동일한 특허’라는 입장이다. PCT는 한 국가의 특허 출원인이 특허협력조약에 가입한 다른 나라에서 쉽게 특허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LG화학은 위 두 가지 우선권 특허를 하나로 합쳐 2005년 12월 21일 한국에 출원했다. 이 특허번호가 KR100775310, 즉 KR31이다. 2014년 SK이노베이션과의 합의문에 등장하는 특허번호와 같다.

LG화학은 다음날인 2005년 12월 22일 이 특허를 국제특허로도 출원하는데, 미국에 해당하는 특허가 US 517이다. 이번에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소송한 문제의 특허다.

▲ 지난 25일 SK이노베이션이 자사 홍보 홈페이지에 공개한 LG화학의 리튬이온전지 분리막 관련 특허 주요 도면 비교 예시 (도면 1, 4, 7, 8). 왼쪽이 미국특허, 오른쪽이 한국특허.

기본적으로 동일한 특허인 만큼 KR 310과 US 517은 발명자, 발명의 상세한 설명, 도면이 모두 동일하다는 게 SK이노베이션의 주장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다른 점이 있다면 미국 특허 청구범위가 20개고, 한국 특허는 16개라는 점”이라면서 “하지만 이는 설명에 대한 차이일 뿐, 크게 다른 내용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종 차량에 옵션기능이 포함되었느냐 아니냐 정도의 차이일 뿐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특허라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특허 명세서를 살펴보면 US 517과 KR 310은 완전히 동일한 도면을 기반으로 한다”면서 “물론 법리적 판단은 ITC와 연방법원이 할 일이지만, 두 특허가 ‘전혀’ 다르다고 주장하기에는 유사성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명분 없는 보복성 소송”…미국 ITC와 연방법원의 판단은

양사의 이번 분리막 소송은 명분도 찾기 힘들다. LG화학은 분리막 사업을 하고 있지 않다. LG화학은 승소한다 해도 사업 측면에서는 직접적인 이득이 없다.

▲ LG화학은 지난 2014년 1월 22일 유럽 및 일본 특허청에 배터리 핵심 소재인 분리막의 안전성을 강화하는 자사의 SRS®(배터리 안전성강화분리막) 기술을 특허 등록했다고 밝혔다. 당시 LG화학 기술연구원에서 연구원들이 SRS®(배터리 안전성강화분리막)을 살펴보고 있다./LG화학 제공

특허료를 챙길 수 있을 따름이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한국 산업 측면에서 볼 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게 문제다.

SK이노베이션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분리막 사업을 하는 회사다. 만약 이번 소송으로 가격경쟁력을 잃게 된다면 외국 업체들이 고스란히 그 반사이익을 얻게 된다.

현재 분리막 산업에서 세계 1위 업체는 일본의 아사이카세이다. SK이노베이션은 2위 자리를 놓고 도레이와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하필 둘 다 일본 기업이다. 일본 정부가 소재를 무기로 한국 산업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어 범정부 차원에서 ‘소재 극일’을 외치는 마당에 배터리의 핵심원료인 분리막 산업까지 흔들리면 국가적으로는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LG화학과 손잡고 소송을 진행하는 도레이는 전범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LG화학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소송을 진행하는 동안 분리막을 공급받을 대체 업체들을 물색했다. 그 중 한 곳이 바로 도레이다.

LG화학은 2015년 도레이에게 분리막 특허까지 양도했다. 이번 소송의 원고가 LG화학 및 도레이로 되어있는 이유다.  

LG화학 입장에서는 도레이와 협업으로 양질의 분리막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동시에 SK이노베이션 사업을 견제할 수 있는 비책인 셈이다. LG화학과 도레이는 2017년에 중국의 배터리 업체 ATL에 특허소송을 공동으로 제기해 승소하는 등 협업을 공고히 해왔다.

일본은 한국 기업 옥죄고, 중국은 자국 기업 키우는데 우리는 볼썽 사나운 집안싸움

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2011년만 해도 분리막 필요 물량의 약 70%를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구매했다.

그러다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사업에 진출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돌연 SK이노베이션에 특허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LG화학이 패소한 뒤 2014년 양사간 합의로 일단락 됐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두 회사는 해당 특허인 775310호 특허와 관련된 모든 소송 및 분쟁을 종결하기로 합의했다. 더불어 대상 특허와 관련해 향후 직접 또는 계열회사를 통해 국내/국외에서 상호간에 특허침해금지나 손해배상의 청구 또는 특허무효를 주장하는 쟁송을 하지 않겠다고 명시했다”고 설명했다.

두 회사는 이 합의가 체결일로부터 10년간 유효하다는 항목도 포함했다. 이 합의서에는 당시 양사 대표였던 LG화학 권영수 사장(현 LG그룹 부회장)과 SK이노베이션 NBD총괄 김홍대 사장(현 퇴사)의 대표이사 날인이 찍혀 있다.

LG화학 측의 주장은 이와 정반대다. 과거 합의한 한국 특허와 이번에 소를 제기한 미국 특허는 별개라는 설명이다.

LG화학은 “특허 독립(속지주의)의 원칙상 각국의 특허는 서로 독립적으로 권리를 취득하고 유지한다. 또 각국의 특허 권리 범위도 서로 다르다”며 “한국에서 특허를 받았어도 특허 권리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전혀 다른 특허”라고 강조했다.

▲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이노베이션 본사/뉴시스 자료사진

합의서에 포함된 ‘국외’라는 문구에 대해서는 “한국 특허(775310)에 대해 외국에서 청구 또는 쟁송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당시 합의서는 특허 번호를 특정하는 방법에 의해 대상 범위가 정해진 것이다. 특정 특허 번호, 즉 ‘775310’ 외에는 효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 말대로 한국 특허와 미국 특허가 다른 특허라면 ‘국내외’에서 소송하지 않겠다는 특허는 한국 특허 KR310으로만 한정된다”며 “그런데 한국 특허를 가지고는 해외에서는 소송을 할 일도, 할 수도 없다. 국내’외’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그는 “그렇다면 SK이노베이션이 합의해준 ‘국내외’라는 의미가 한국 특허를 가지고 해외에서 쟁송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는지 반문해볼 일”이라고 덧붙였다.

기업이 이윤을 창출하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업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당연한 생리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직접 나서서 한국 기업들을 옥죄고, 중국 정부 또한 자국 기업을 키우기 위해 폐쇄적인 배터리 보조금 정책을 이어가는 마당에 국내 기업들은 볼썽 사나운 집안싸움을 벌이는 게 곱게 보일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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