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이민주 버핏연구소 대표] 4차산업 혁명으로 대변되는 신기술은 우리의 일자리를 어느 정도까지 대체할 수 있을까.

우리는 직업을 통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한다. 밤늦게 퇴근해 곤히 잠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사람들은 일자리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 이민주 버핏연구소 대표

업(業)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단계를 넘어서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명함에 찍힌 직함은 사회가 나를 평가하는 잣대이기도 하다. 실업이 더 고통스러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업은 먹고 사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뿐 아니라 사회적 지위까지 잃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읽은 책이 뇌리에 남는다. 차두원 한국과학기술평가원 연구위원과 김서현 ‘기술과 가치’ 연구원이 함께 쓴 <잡 킬러(Job Killer·한스미디어)>는 신기술이 우리의 소중한 직업을 어느 정도까지 잠식할 수 있는가를 통계와 수치를 통해 보여준다.

또 이 책은 신기술에 의한 일자리 파괴에 속수무책으로 지내고 있는 우리에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느 지점에 관심을 둬야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서 내가 특히 흥미를 느낀 건 파산 관련 법률 자문이 가능한 인공지능(AI)인 로스(ROSS)다. 지난해 미국 뉴욕의 대형 로펌 베이커앤호스테틀러가 운영하기 시작한 로스는 IBM과 스타트업 벤처인 로스인텔리전스가 함께 개발했다. 로스는 법률 자문을 위해 문서 수십억건을 검토하는데, 초당 연산 조회수가 80조회에 달해 순식간에 검토를 끝낸다고 한다.

로스의 성공적인 업무 수행을 바탕으로 IBM과 로스인텔리전스는 법률 자문 분야를 행정과 인사, 이혼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바로 고소득 전문직으로 부러움의 대상이 돼온 변호사의 실직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IBM의 인공지능 왓슨도 금융 분야의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왓슨은 미국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IB)과 투자자문사, 펀드업계에 책택돼 고객 정보를 분석한 뒤 투자자에게 적합한 종목을 제안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고도의 분석 능력을 필요로 하는 만큼 신기술이 대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여겨지던 투자 분석가와 펀드매니저같은 일자리도 인공지능과 신기술에 의해 사라질 판이다.

미국 스타트업 켄쇼가 개발한 ‘워렌’은 정보 수집은 물론 자연어로 질문하면 관련 분석 결과 및 유망 종목을 제시해준다.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의 이름을 본 딴 워렌은 월간 고용 동향을 비롯한 경제 지표가 나오면 증시가 어떻게 반응할지를 분석하고 있다.

전문직만이 아니다. 단순 노무직과 반복 업무를 수행하는 사무직은 이미 신기술에 의해 일자리 파괴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 지난달 16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몰 대장금에서 인공지능 서비스 로봇 ‘장금이’가 메뉴를 소개하고 있다. 장금이는 다양한 음악에 맞춰 댄스공연을 펼치기도 하고, 카메라 기능을 활용한 사진 촬영 서비스도 할 수 있다./롯데자산개발 제공

특히 비서라는 직업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미국 과학 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는 2020년이 되면 비서 직종이 컴퓨터와 음성 인식 소프트웨어로 완전 대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2001년 이후 영국 내 19만5000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애플의 인공 지능 비서 시리(Siri)와 같은 가상 비서 서비스에 인간이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해법은 있는 걸까. 이 책에도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신기술이 미래의 일자리의 개념을 바꿀 것이라는 점은 보여준다.

특히 인간의 직업은 앞으로 신기술 개발자와 관리자, 신기술과 함께 일하는 사람, 신기술의 지시에 따라 일하는 사람의 세 가지로 나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동안 복잡하게 분류돼온 직업의 유형이 이들 세 가지로 명쾌하게 분류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부분에 나는 공감했다.

이중 가장 비참한 직업은 ‘신기술의 지시에 따라 일하는 사람’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의 지시를 받기보다는 자신이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창의성을 갖고 수행할 때 행복을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신기술과 조화를 이루며 일하는 사람이 미래 직업의 대다수가 될 수도 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곰곰 생각해봐야 한다.

※ 이민주 대표는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퍼듀대에서 MBA(경영학 석사)를 받았습니다. I.H.S버핏연구소를 설립해 투자교육 및 기업교육 전문회사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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