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樂而不流 哀而不悲’(낙이불류 애이불비)

“즐겁지만 넘치지 아니하고 애절하지만 슬프지 않다” 즐기되 지나치게 휩쓸리지 않고 슬퍼하되 비탄에 빠지지 않는다는 음악의 최고의 경지를 뜻한다.

▲ 남영진 논설고문

고려시대인 1145년(인종 23) 김부식 등이 편찬한 <삼국사기> ‘가야편’에 나온다. 신라 진흥왕 시절 우륵이 제자의 음악을 듣고 말한 것이라 한다.

또한 애이불비 이전에 애이불상(哀而不傷)이라는 말도 있다. 공자가 간추린 시경(詩經)에서 문왕(文王)과 후비(后妃)의 덕을 노래한 ‘관저’(關雎)라는 곡(曲에 대해 ‘樂而不淫 哀而不傷’ ·낙이불음 애이불상)이 대표적이다.

“즐겁지만 방탕하지 아니하고 슬프지만 마음을 상하지 않는다”고 평한 것이다. 즐거울 때 너무 질탕거리지 말고, 슬퍼도 너무 아파하지 말라는 뜻일 거다.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를 8대 0 전원일치로 인용했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처음이라 하지만 사실은 헌정사상 두번째다.

1919년 3.1운동 후 결성된 상해임시 정부는 1925년 3월 초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탄핵, 면직결정을 내렸다. 미국에 있으면서 제대로 대통령직을 수행하지 않고 독립자금을 함부로 사용한 직무유기와 직권남용에 대한 심판이었다.

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엔 처음이다. TV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파면되자 곧바로 ‘전 대통령’이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그녀는 이틀을 청와대에서 더 버티다 12일 아무런 대국민 메시지 없이 삼성동 사저로 돌아갔다.

청와대에서 버티자 주말까지 이틀간 촛불집회를 이어가던 일부에서는 ‘탄핵에 대한 불복이 아닌가’하며 “빨리 빵빼!” “집아닌 감옥으로” 등 비난이 비등했다.

그녀는 취임 때 헌법수호 선언을 했지만 그 정신을 이미 위반했다. 48년 8월 15일 정부수립일을 ‘건국절’로 만들려고 했다. 많은 역사교수들과 교사들의 반대했음에도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를 동원해 밀실에서 이미 없어진 ‘국정교과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독재의 잘못을 희석하기 위한 경제개발 공적을 부각시키려 했다. 결국 전국 학교에서 한 학교만 교과서로 채택한 ‘불통’의 대표적 사례가 됐다.

▲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16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안희정(왼쪽) 충남지사와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가 촛불을 들고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이제 지난 3개월간 추운 겨울의 광화문 촛불집회와 대한문 앞에서의 태극기집회의 갈등은 꽃샘추위와 함께 보내야 한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12월초 78%로 탄핵결의를 한 것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거부하는 민의를 이미 대변한 것이다.

그래도 사과하지 않는 박근혜를 향해 전국에서 세 달간 20회에 걸쳐 1,600만 명이 매주말 거리로 나와 ‘촛불’을 횃불로 만들었다.

한달이 지나자 나이든 ‘샤이 박근혜’ 부대가 전투복을 입고 태극기를 들고 대한문 앞에 결집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친구 최순실을 믿고 잘못 쓴 ‘박근혜의 단순 실수’라고 주장했다.

점차 이 정도의 국정개입은 어느 정권에도 있던 것이라며 “대통령이 직접 한푼도 받지 않았는데 왜 탄핵이냐”며 핏발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 지경으로 몰고간 책임이 있는 친박 인사들인 윤창중 김진태 윤상현 김문수 김경재씨 등이 집회를 선동했다. 급기야 법을 지켜야할 대통령 변호인단인 김평우 서석구 변호사는 헌재를 무시하는 발언까지 했다.

▲ 박근혜 전 대통령이 1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로 들어서며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뉴시스

이 갈등은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 탄핵 결정 후 정국은 곧바로 5월 9일로 예상되는 대선으로 집중되고 있다.

현재론 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가 거의 확실해 보인다. 자유한국당이나 여당에서 튀쳐 나온 탈박의 바른정당도 박근혜 국정농단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안철수의 국민의당도 손학규, 천정배와의 후보 결정전을 치루어야 하지만 국민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

결국 민심은 대세론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함께 노무현의 적자임을 자임하는 안희정 충남지사의 당내 경선에 집중돼있다.

탄핵 후 적폐청산을 주장해온 문재인은 탄핵직후 세월호 사건의 현장인 전남 진도 팽목항을 찾았다. 안희정은 탄핵기각을 바랐던 27%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려 황금같은 주말 3일간 선거캠페인을 중단했다. ‘사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광화문 촛불과 함께 했다.

탄핵 이틀 후 KBS 여론조사에서 2강구도가 형성됐다. 문재인 후보가 29.9%로 30%선을 넘지 못한 채 주춤거리자 ‘선의’ 발언으로 12%까지 추락했던 안희정의 지지율이 17%까지 회복했다.

황교안 이재명 안철수 등이 8~9%로 추격그룹을 형성했다. 안희정이 ‘다름을 받아들이고 같음을 이야기하자’며 이미 화합과 대연정을 제시한 것이 어느 정도 먹혀 들어간 것 같다.

그러나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문재인이 안희정의 3배 가까운 지지를 얻고 있다. 이미 시작된 10일간의 2차 선거인단 등록에서 결판이 날 것이다.

전문가들은 200만명이 넘으면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들의 표심이 희석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1차 163만 명이 등록했으므로 앞으로 2차에서 40만 명이 넘으면 산토끼가 집토끼를 이기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벚꽃 대선’이 탄핵으로 갈라진 국민들의 ‘애락’을 함께하는 화합과 축제의 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저작권자 © 이코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