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범의 경제산책

[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이 대거 연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재벌개혁을 주창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탄핵정국이 대선정국으로 이어지면서 일부 대선 주자들은 재벌 개혁을 넘어서 재벌 해체를 주장하고 나서고 있는 양상이다.

▲ 최성범 주필

그렇다면 과연 재벌해체는 가능할까? 이들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미국의 경우 사실 한국식의 재벌이 존재하지 않는다. 복합기업(conglomerate)으로 알려진 대기업이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지만 한국처럼 가족 중심의 소수 주주가 회사를 지배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에도 카르텔(cartel)이나 트러스트(trust)의 폐해를 일찍이 경험한 탓에 반시장적 독점기업에 대해선 대기업 해체라는 강력한 조치를 내린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

탄핵정국과 맞물려 대선주자들 재벌 해체 목소리 커져

1982년 1월 8일 미국 법무부는 전화회사인 AT&T의 해산을 결정했다. 독점 사업자라는 게 해산명령의 사유였다.

이로써 전화를 발명한 그레이엄 벨(Bell)이 1885년 설립했던 회사인 AT&T는 미국 전역의 7개의 지역 전화회사(일명 베이비 벨)와 연구소로 분리되었고, AT&T는 장거리 전화 사업만을 영위하는 회사로 변신했다.

AT&T로선 결과적으로 성장성이 높은 장거리 전화와 이동전화, 인터넷 통신망 등으로 사업을 전환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지만 미국 최대의 전화회사이자 상징이나 마찬가지였던 기업의 해체라는 점에서 충격이 적지 않았다.

이에 앞서 1911년 미국 연방 대법원은 석유왕 록 펠러가 1870년 설립한 스탠다드오일(Standard Oil)의 해산을 명령했다. 1890년에 제정된 독점금지법인 셔먼법(Sherman Act)을 위반했다는 게 이유였다.

당시 스탠다드 오일회사는 석유 생산, 정제, 수송망을 모두 장악하는 이른바 수직적 통합을 통해 차별적 운송 요금을 적용하는 방법으로 경쟁 업체들을 무너뜨렸다.

19세기 말엔 미국 석유시장의 90%를 장악했으며 가격 횡포로 소비자와 중소업체들의 원성이 높았다. 이 판결로 미국의 석유산업을 한 손 안에 쥐고 있었던 스탠다드 오일회사는 34개의 지역 회사로 분리되었다.

오늘날 세계적인 석유회사들도 모두 이 때 출발했다. 뉴저지주 스탠다드 오일은 엑슨(Exxon)으로, 뉴욕 스탠다드 오일은 모빌(Mobil)로, 캘리포니아 스탠다드 오일은 쉐브론(Chevron)으로, 인디애나주 스탠다드오일은 아모코(Amoco)가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1948년 미국 연방 대법원은 헐리우드의 대형 영화사들이 제작에서부터 상영관까지 장악해 경쟁을 제한함으로써 독점금지법을 위반했다며 이른바 스튜디오시스템의 해체를 명령했다.

이 판결로 폭스, MGM, 파라마운트, 워너브라더스 등 5개의 대형 영화사들은 상영관 체인을 매각해야 했다. 영화 제작만으로 사업 범위가 줄어든 영화사들은 당시 새로 등장한 텔레비전과 정면 승부를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텔레비전 방송국들이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대형 블록버스터(blockbuster) 영화에 승부를 거는 방식으로 변신하게 되었다.

▲ 지난해 12월 6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1차 청문회에 출석한 허창수 전경련 회장(오른쪽부터),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일본의 경우 상황이 다르다. 2차 대전 이전에 일본은 한국의 경우와 똑 같은 형태의 재벌이 존재했지만 종전 이후 외부의 힘으로 재벌 해체가 이뤄졌다.

1945년 태평양 전쟁 종전 이후 일본에 진주한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부가 가장 먼저 그리고 중점적으로 착수한 일은 재벌(자이바쓰:財閥) 해체였다.

재벌들이 군수산업을 통해 자신들의 성장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촉진시켜 침략전쟁을 유발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로써 당시 대표적인 미쓰이(三井), 미쓰비시(三菱), 스미토모(住友)를 포함해 10대 재벌이 해체되었다.

10대 재벌의 가족 56명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은 지주회사 정리 위원회에 양도하게 하고 재벌 관계회사의 임직원으로부터 추방되었다. 특히 3대 재벌의 계열회사 711개사에 대해선 미쓰이, 미쓰비시, 스미토모 등의 상표와 상호 사용을 금지하였다.

이렇게 해체 과정을 거친 재벌계 기업들은 각기 독립 기업으로 활동하다가 1950년대 중반 다시 계열화나 횡적결합을 통해 기업결합을 시도한다. 이후 후요, 다이이치강교, 미와 등 금융업 계열의 집단이 생겨나면서 미쓰이, 미쓰비시, 스미토모 등 전전 3대 재벌 계열의 집단과 더불어 오늘날 일본의 6대 기업집단이 된다.

그러나 이들을 더 이상 재벌(자이바쓰)라고 부르지 않고 기업집단이라고 부른다. 재벌 해체 전 일본 재벌들은 소수 가족이 본사 주식의 50% 이상을 소유하고 본사가 산하기업의 주식을 가지는 피라미드 구조를 갖고 있었지만 전후 등장한 기업집단들은 주식을 상호 보유하기는 하지만 소유주가 따로 없으며 사실상 대기업 간의 전략적 제휴에 가깝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룹은 있지만 오너는 없는 형태다. 일본이 경제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던 건 당시 재벌 해체를 단행한 결과라는 평가가 많다.

재벌해체가 아니라 재벌개혁이 돼야-기업때리기는 혼란만 초래할 뿐

▲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지난해 12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재벌총수 구속 및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 해체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재벌 해체의 논거를 살펴보면 동반성장 또는 공정성장으로 표현되는 재벌기업으로 인한 불공정거래 관행 개선과, 편법상속 등 지배구조 개선 등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공정거래법을 강화함으로써 풀 수 있는 문제다. 후자는 상속세 강화와 동시에 순환출자 조기해소 등 복잡한 문제가 남아 있지만 사실 알고 보면 이미 국회에 이미 법안들이 상정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재벌 해체를 주장하는 이재명 성남시장이나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주장도 알고 보면 상속세를 강화함으로써 경영승계를 막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이 점에서 미국의 대기업 집단의 강제 해산이나 일본의 재벌 해체와는 상당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실제 내용과는 달리 재벌해체라는 명칭으로 과장된 측면도 없지 않다. 사실 재벌 개혁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봐야 한다.

현 시점에서 재벌 해체는 어떤 면에서 가능하지도 않으며 자칫 혼란만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은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대기업들이 구시대적인 지배구조를 가져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글로벌 대기업으로 도약한다고 하면서 1인이 지배하는 회사가 되어야만 경영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회사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논리는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모든 면에서 글로벌 대기업들을 따라하면서 지배구조만 한국식으로 남아선 곤란하다. 선진화된 글로벌한 지배구조가 되어야 진정한 글로벌 초우량 기업이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따라서 불공정 거래에 대해선 엄격한 법의 잣대를 적용해야 하며, 변칙적인 상속이나 편법을 통한 경영승계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도록 제도를 고쳐 나가는 게 한국경제의 과제다. 그래야만 한국경제가 진정한 선진화를 이룰 수 있다.

이를 위해 상속세법이나 공정거래법 개정은 필수적이다. 다만 재벌 개혁과 기업 때리기(bashing)는 구분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최성범 주필은 서울경제 금융부장과 법률방송 부사장, 신한금융지주 홍보팀장,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를 지내는 등 언론계 및 학계, 산업 현장에서 실무 능력과 이론을 쌓은 경제전문가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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