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집에서 열다섯살인 시추 수컷을 키우고 있다. 내가 한창 일을 할 때 큰딸이 친구 집에서 갓 난 강아지를 데리고 와 현직에서 은퇴한 지금까지 키우고 있다.

▲ 남영진 논설고문

처음 데려올 땐 눈은 크지만 코도 밋밋하고 허리만 길어 우스꽝스런 모습이었는데 털이 자라면서 나름 ‘못난 매력’이 있었다. 얼굴 모습이 작은 사자(獅子)처럼 보여 중국인들이 ‘쉬츠’(사자)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게 됐다. 원산지는 티베트 고원의 추운 지방 집에서 애완용으로 기른다고 한다.

긴 세월 우리 집의 귀여움을 독차지한 이 놈(거세를 했으니 놈의 정확한 호칭은 아니다)이 나이가 들면서 여러 가지 노화현상이 나타났다. 털갈이를 거의하지 않아 피부병인 멜라세치아는 달고 있어 수시로 발바닥과 복부를 핥는다.

게다가 심장이 약해져 조금만 뛰어도 헥헥거려 아침 저녁 식사 때마다 심장약을 부수어 사료에 얹어준다. 요도에 요석이 괴어 피오줌을 싸면 단골 동물병원에 데려가 의료보험도 안 되는 엑스레이를 찍고 약을 처방해온다.

버릇이 잘못 들어 대소변을 밖에서만 싸니 아무리 추워도 하루에 두 번은 아파트 바깥에 데리고 나가는 게 큰일이다.

개들은 집안 서열을 잘 안다고 한다. 처음에는 밥 주는 집사람을 더 따르는 것 같더니 어느 샌가 가장인 나를 더 따른다. 그러니 해외여행이나 지방을 갈 때도 먼저 이놈의 처리를 딸들에게 부탁해야 한다. 집식구들이 각자 저녁 약속이 있으면 누가 먼저 들어가 ‘시추를 하는가’(대소변 누이기)를 카톡으로 상의해야한다.

탄핵정국 중인 지난 2일 임시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 등이 발의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표 의원은 지난해 8월 동물학대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소유자 여부와 관계없이 학대받는 동물에 대한 긴급구조를 허용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개정안이 통과돼 지난해 한창 논란이 됐던 ‘강아지 공장’ 은 기존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뀌고 ‘학대 행위’에 대한 형량과 벌금이 각각 2배로 올랐다.

다만 학대 동물의 긴급격리조치 및 소유권 등의 제한, 사육·관리 기준 강화 등은 정부의 반대로 개정안에 담기지 못했다.

그렇지만 개정안 통과에 맞추어 ‘개시장’으로 유명한 경기도 성남의 모란시장 개도살장이 철거됐다고 한다. 물론 도살은 시장 안쪽에서 하겠지만 사람이 보는 앞에서 살견행위는 안보이게 됐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이재명 성남시장이 법개정 분위기와 동물보호단체의 시위를 의식해 강력히 시행한 것으로 보인다.

반려동물 사육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 5명 중 1명이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다. 바야흐로 ‘반려동물 전성시대’다.

▲ 동물 보호 활동가들이 지난해 7월 23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 앞에서 개·고양이 식용 반대 집회를 열고 개·고양이 식용 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반려동물 보유 가구 비율은 2012년 17.9%에서 2015년 21.8%로, 3년 전보다 3.9%포인트 늘었다. 반려동물 사육 인구는 457만 가구, 약 1000만명으로 추정된다. 다섯 집 가운데 한 집, 5명 가운데 1명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관련 시장 규모도 급격히 증가했다. 2012년 9000억원에서 2015년 1조8000억원으로 3년 만에 2배로 늘었다.

농협경제연구소는 2020년에는 현재의 3배가 넘는 5조8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전통적인 개, 고양이, 새, 물고기에다 외국에서 비싸게 수입한 뱀 이구아나 악어 파충류와 원숭이 등 희귀동물들도 있다.

개 고양이 등 동물을 단순 애완용이 아닌 ‘반려자’로 여기는 사람들이 늘면서 이들을 가족처럼 대하거나 때로는 ‘상전’처럼 대접하는 ‘꼴불견’(?)도 지적되고 있다.

홍삼 영양제에 쇠고기 현미 영양죽, 반려동물 전용 우유까지 등장했다. 반려동물을 위한 고가의 미용 서비스와 건강을 위한 다이어트 학교도 있다. 사람 먹을 것도 부족한데 ‘너무 심하다’는 핀잔을 받을 정도다.

하지만 이렇게 대접받는 동물들이 있는가 하면 해마다 8만 마리의 반려동물이 버려진다. 유기동물이다.

특히 명절 연휴나 이사철, 휴가철에 동물을 버리는 사례가 많다. 프랑스 파리의 바캉스 시즌때 버려진 개들이 시내를 배회하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우리도 휴가철에 강원도 강릉, 속초 등 휴가지 펜션 등에 그냥 두고 간다고 한다. 서울 시내에서 차에 치여 죽은 ‘로드킬’동물이 하루 평균 약 15.3마리에 달한다.(2012~2015년).

동물 학대 사건도 끊이지 않는다. 동물 학대 혐의로 고발되는 사례는 2013년 160건에서 2015년 287건까지 급증했다. 처벌은 약하다. 외국에선 동물 학대 방지를 위한 보호법도 강하다.

독일의 경우 2002년 세계 최초로 ‘국가는 미래 세대의 관점에서 생명의 자연적 기반과 동물을 보호할 책임을 가진다’는 내용의 ‘동물권’을 헌법에 명시했다. 동물을 물건이 아닌 생명으로 여겨 마땅히 법으로 보호돼야 함을 나타낸 것이다. 법에서의 ‘동물’이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신경체계가 발달한 척추동물 일체를 말한다

▲ 지난해 11월 25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 센터에서 열린 '2016 코리아펫쇼'에서 시민들이 애완견과 함께 전시용품을 둘러보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B동물보호단체에서는 동물을 구매(분양)한다는 개념에서 벗어나 ‘입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분양은 판매업자들이 쓰는 용어이고 ‘반려’할 동물이라면 더 좋은 뜻인 입양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집안에서 동고동락하며 20년 정도 같이 지내면 당연히 가족으로 대접받게 된다. 그래서 요즘은 애완동물에게 자기를 표현할 때 ‘엄마, 아빠, 형, 누나’라는 가족에게 쓰는 호칭을 쓰기도 한다.

한편에서는 이렇게 ‘호들갑’을 떨면서 한편에선 동물을 산채로 때려잡아 판다. 지난 겨울 공장형 축사에선 조류인플루엔자(AI)로 닭 1,500만 마리가 살처분 당했다. 몇 년간 구제역으로 소, 돼지가 산채로 비닐구덩이에 묻혔다.

같은 동물인데도 식육용, 실험실용으로 ‘개죽음’을 당한다. 성경 창세기에 하느님이 인간에게 모든 지구의 생물들을 지배할 권한을 주었지만 이렇게 마구 죽이라고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동물에 대한 애정은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어져 우리 사회의 안권감수성까지 높일 수 있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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