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응백의 국악가사 이야기

[이코노뉴스=하응백 서도소리진흥회 이사장] 권주가는 말 그대로 술을 권하는 노래이다. 그렇다고 아무 때나 권주가를 부르지는 않는다. 권주가는 잔치라든가, 큰 행사가 있을 때 부른다. 요즘 시대로 치면 건배사에 해당할 것이다. 부모의 회갑이나 진갑 잔치 같은 곳에서 부르는 권주가는 주로 장수를 비는 내용이다. ‘노랫가락’에 다음과 같은 권주가가 있다.

▲ 하응백 서도소리진흥회 이사장

한 잔 잡으시오 이 술 한 잔을 잡으시오

꽃으로 수를 놓며 무궁무진 잡으시오

진실로 이 잔 잡으면 만수무강

잡으시오 들으시오 이 술 한 잔을 들으시오

이 술은 술이 아니라 잡숫고 놀자는 경배주(敬拜酒)라

이 술을 드시고 나면 천년만년을 사오리다

금은금잔을 앵무배에 술을 부어

첫잔 부어 불로주요 두잔 부으니 장생주라

석잔을 다시 부어서 만수무강을 비나이다

 

 

평시조에도 비슷한 가사가 있다.

만수산 만수봉에 만수정이 있더이다

그 물로 빚은 술을 만수주라 하더이다

진실로 이 잔 잡으시면 만수무강하오리다

만수산은 개성 북쪽에 있는 산인데 이 시조에서 만수산은 실제 만수산이 아니라 만년을 살아라는 뜻의 만수산이다. 이 만수산 만수봉에 만수정이란 우물이니까 모두 오래 살기를 축원하는 내용이다.

또 다른 권주가도 있다. 송강 정철의 ‘장진주사’는 권주가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문학성을 지니고 있다.

한 잔(盞) 먹새그려 또 한잔 먹새그려.

꽃 꺾어 산(算) 놓고 무진무진(無盡無盡) 먹새그려.

이 몸 주근 후면 지게 우희 거적 더퍼 주리혀 매여 가나 유소보장(流蘇寶帳)에 만인(萬人)이 울어 예나,

어욱새 속새 덥가나무 백양(白楊) 숲에 가기곳 가면,

누른 해, 흰 달, 굴근 눈, 소소리 바람 불 제, 뉘 한잔 먹자할고.

하물며 무덤 우에 잔나비 휘파람 불제, 뉘우친들 어떠리.

 

▲ 꽃피는 5월 남산국악당에서 열린 금요 상설공연에서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인 김영기 명창의 제자들이 권주가를 부르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꽃을 꺾어서 꽃잎으로 술잔을 세면서 무진무진 마시자는 이야기다. 인간이란 것이 죽으면 거적을 덮어 묶어서 지게 위에 실려 무덤으로 가나, 화려한 장식의 상여에 수많은 사람이 울어서 그 죽음을 슬퍼하나 다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죽고 나면 쓸쓸한 숲에 해가 뜨고 달이 뜨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분들 누가 있어 한 잔 하자고 하겠는가. 죽은 다음에 뉘우치지 말고 살아 있을 때 한 잔이라도 더 하라는 말씀이다.

술을 적게 마시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좋은가. 죽으면 다 같으니 한 잔 이라도 더 즐겁게 마시고 사는 것이 좋은 것인가.

판소리 ‘흥보가’에서 놀부가, 동생이 부자가 되었다고 찾아가니 흥부가 산해진미의 상을 차려 술을 권할 때, “이 놈아, 내가 초상집에 가도 권주가 없으면 술 안 마시니, 곱게 차린 네 계집 권주가나 한 꼭대기 하게 해라”고 하는 것처럼 억지로라도 권주가라도 들으며 한 잔이라도 더 마시고 사는 것이 좋은가. 모를 일이다.

※ 하응백 서도소리 진흥회 이사장은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에 당선돼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옥봉의 몽혼’(2009)등 20여 권의 편저서가 있으며 ‘창악집성’(2011)이라는 국악사설을 총망라한 국악사설 해설집을 펴내기도 했다.

2002년 ‘휴먼앤북스’라는 출판사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는 하 이사장은 경희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문학박사를 취득했으며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국민대 문창대학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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