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더불어민주당 안희정 충남지사의 상승세가 거침없다.

지난해 가을쯤 처음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해 지난 연말만 해도 지지율이 2~3%대에서 맴돌았다.

▲ 남영진 논설고문

그런데 새해부터 기지개를 켜더니 지난 주에는 드디어 20%를 넘어서 당내 경선에 ‘양강구도’가 형성됐다. 11월 박근혜 탄핵 정국이 시작되면서 문재인 전 대표의 대세론이 워낙 강해 1강에다 이재명 성남시장, 안희정의 2중과 박원순 서울시장, 김부겸 의원의 2약 등으로 나타났었다.

그러나 안 지사의 공식 대선후보 발표 후 지지율이 19%에 올라서더니 민주당 국민참여 경선이 본격화되면서 지난 17일 갤럽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이 20% 벽을 넘어 22%를 기록했다.

이 22%는, 2주 전보다 12%p나 오른 수치로 민주당은 문재인-안희정 양강구도에 고무돼 있다. 안 지사의 중도보수 외연 확대로 당내 경선 흥행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1차 선거인단 규모가 모집 이틀 만에 30만 명에 육박했다.

문재인 전 대표를 추격하며 민주당 경선의 흥행 가능성도 커지자 ‘역(逆)선택’ 문제가 ‘돌발변수’로 제기됐다. 추미애 대표가 지난 2월 17일 “박사모가 문재인 전 대표의 당선을 막으려고, 민주당 경선에 참여해 조직적으로 다른 후보를 찍으려 한다”고 주장하면서 불거졌다. 추 대표는 “대선 후보 경선 선거인단 모집이 나날이 국민 관심을 끌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 역선택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후보가 되는 건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내용과 함께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선거인단 참여를 독려하는 박사모의 공지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확산하고 있다면서 박사모에 대해 법적 조치 등 강력 대처하겠다고 경고했다. 역선택 우려를 차단, 표심 왜곡과 교란을 막겠다는 뜻이다.

문 전 대표도 이에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경쟁하는 정당에서 의도적, 조직적으로 역선택을 독려하는 움직임이 있다면 대단히 비열한 행위이고 이는 처벌받아야 할 범죄"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상호 원내대표는 지도부가 ‘역선택’ 가능성을 언급하는 데 반발했다. 우 원내대표는 박사모 등이 민주당 경선에 개입,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가능성에 대해서 "역선택 주장은 과거 조직력이 센 사람이 민주적 경선을 막기 위해 한 말”이라며 다른 해석을 하면서 "역선택을 우려하는 쪽은 자기 측에 불리한 걸 안 하게 하려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라며 친문계를 정면 겨냥했다.

학술적으로 ‘역선택 이론’(adverse selection)은 중고차와 보험시장 등 정보비대칭 상황에서의 소비자의 선택이론이다.

▲ 18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제16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안희정(왼쪽) 충남지사와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가 손을 맞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뉴시스

예를 들면, 중고차의 판매자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질 좋은 차보다 질이 안 좋은 차를 많이 내놓을 때 구매자는 품질이 좋은 상품보다 역으로 품질이 낮은 상품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것이 '역선택 이론'이며 이러한 시장을 '개살구(Lemon) 시장'이라고 한다.

1970년 역선택 이론을 처음 제시한 조지 애컬로프(George A. Akerlof)의 논문 <레몬시장 이론(Market for Lemons)>에서 쓰인 용어로, 여기서 '레몬'이란 우리나라의 '빛 좋은 개살구'처럼 겉만 멀쩡한 물건을 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개살구 시장’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안희정과 같이 철학 비전 정책이 공개된 후보를 두고 ‘역선택’이니 ‘개살구’니 하는 용어선택은 잘못된 것이다.

지금 민주당내 논란이 된 것은 역선택이 아니다. 투표 때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선택하지 않고 지지 후보의 당선가능성 또는 싫은 후보의 낙선가능성 등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선호에 어긋나게 투표하는 것을 정치학에서는 ‘전략적 투표행위’(strategic voting)라 한다. 이것은 정보비대칭 상황 하의 논의가 아니므로 역선택과는 좀 다르다.

지금의 상황은 중도 보수층에서 안희정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 논의 존중, 대연정 불가피론 등 파격적인 발언에 대해 호감을 보여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실제 여론조사에서는 50,60대에서 안 후보 지지가 높은 반면 20,30대에게는 아직 인지도에서 문 전 대표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져 지지율이 낮다.

그러나 문재인, 안희정이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과 각각 붙는 3자 대결에서는 안희정의 승리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안의 ‘본선 경쟁력’이 더 세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보면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등 보수층 지지자가 민주당 경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아닌 본선 경쟁력이 더 높은 안희정을 후보로 선택하려고 조직적으로 등록할 리는 없을 것이다. 더 강한 적을 상대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50.60대의 중도보수층에서 국민경선에 많이 참여하는 것은 자신의 지금까지의 여당지지 성향을 버리고 민주당으로 갈아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번 국민경선 등록은 역선택이나 전략적 투표가 아닌 그냥 지지후보를 선택한 것일 수 있다.

탄핵 심판 최종 변론일(24일) 일주일전에 민주당 지도부의 역선택 신경전이 벌어졌다. 안희정을 보수층의 민주당내 ‘트로이의 목마’라고까지 말하는 댓글도 보인다.

일단 봉합됐지만 경선 일정이 다가올수록 이 문제가 '국민 의사의 반영'이냐에 대해 당내 갈등이 격화될 가능성이 있다. 아직 당내 표심은 문재인에게 쏠려 있다. 그러나 점점 산토끼의 울음소리에 집토끼의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 남영진 상임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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