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의 시사서평-‘푸른 수염’과 ‘고수머리 리케’의 대결

[이코노뉴스=김선태 편집위원]

▲ 김선태 편집위원

“제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포기하지 말라.”

벤저민 프랭클린, 『인생의 발견』에서

프랑스 아동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샤를 페로(Charles Perrault)는 그림 형제에 비해 우리에게 훨씬 덜 알려져 있고 안데르센과 비교하면 아주 적은 수의 작품만을 남긴 작가다. 하지만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장화 신은 고양이’, ‘신데렐라’와 같은 작품 목록을 보면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아동문학에 끼친 그의 영향력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가 남긴 많은 동화들이 나라와 시대와 장르를 뛰어넘어 탐독되고 변형되고 재구성되어 왔다.

최근 몇 년 사이 프랑스 문단의 총아로 떠오른 앙투안 로랭은 자신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 대통령의 모자’에서 페로의 ‘푸른 수염’을 스토리 전개상 중요한 장치로 삼기도 했다. 이는 페로의 작품과 거기 담긴 교훈들이 독자들의 사고에 오랜 세월에 걸쳐 각인되고 있음을 반증한다. ‘푸른 수염’은 페로의 작품들이 동화의 영역을 뛰어넘는 교훈을 남기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한 권력자의 연쇄 살인과 그를 죽인 부인의 모방 살인이라는 끔찍한 소재만으로 보면 동화적 형식만 빌렸을 뿐 일종의 잔혹소설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 ‘푸른 수염’ 영어판 책자 표지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 인간성이란 한 번 허물어지면 복구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라는 점, 부와 권력 앞에 사람들은 한없이 왜소한 존재라는 점을 살인이라는 명백하고도 절대적인 범죄 행위를 통해 드러낸다. “파란 수염이 여자를 증오했듯 부인도 남자를 증오하게 되었다”는 설명처럼, 원초적 욕망의 포로가 되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의 순수함을 비웃듯 내던져 버리고 그와 더불어 일말의 죄의식도 남지 않을 때까지 스스로를 몰아간다. 그 결과 “지하실에는 시체가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갔다”는 소설의 결론처럼 그들의 내면에는 누적된 범죄 행위가 낳은 치유 불가능한 증오심과 자기 합리화로 똘똘 뭉친 기괴한 허상이 갈수록 늘어만 간다.

▲ ‘고수머리 리케’ = 엄진숙 지음, 장준영 그림. 책고래.

샤를 페로는 이처럼 끔찍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푸른 수염’이 실린 같은 동화집에 전혀 다른 의미의 교훈을 담은 ‘고수머리 리케’를 실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 리케 왕자는 신데렐라나 잠자는 숲 속의 공주처럼 아이들의 영원한 우상으로 남지는 못했지만 그 인상의 강렬함이라는 측면에서 푸른 수염과 그 부인을 능가하는 인물이다. 이 작품 역시 한 편 유아적인 발상에 빠져들게 만들면서 다른 한 편 인간의 근원적인 본성을 묻게 만들기도 하는, 전형적인 성인 동화의 맥락을 취한다.

옛날 어느 왕국에 왕자가 태어났는데 외모가 못생긴 데다 머리카락이 엉킨 실타래 같아 기괴한 느낌을 주었다. 아기를 본 사람들은 저마다 탄식을 내뱉었고 소문이 퍼지면서 세상 사람들도 한 마디씩 거들어 결국 왕자에게는 ‘고수머리 리케’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그렇지만 왕자에게는 지혜의 요정이 늘 함께 하고 있었으니 그 덕에 왕자 리케는 자라면서 점점 더 지혜로워졌다. 어느 날 창고지기가 도둑을 끌고 와 리케 앞에 무릎을 꿇렸다. 알아본 즉 도둑은 며칠 째 굶는 아이들 때문에 궁궐 창고를 털려 했던 것이다. 이를 본 리케는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도둑질은 잘못이니 벌을 주되, 굶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쌀을 넉넉히 보내 주어라.”

리케가 이처럼 대소사를 현명하게 처리하니 온 나라에 리케를 칭찬하는 노래가 울려 퍼졌다. 그렇지만 리케는 못생긴 외모 때문에 장성해서도 청혼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고민이 깊어질 때면 리케는 산책을 하곤 했는데 어느 날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아가씨를 만났다. 리케는 그 아름다운 아가씨가 이웃나라 공주임을 단번에 알아챘고, 허둥대는 공주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기억을 살려내도록 도왔다. 공주는 탄식하며 사람들이 자신을 얼굴만 예쁜 멍청이라 놀린다고 털어놓았다. 다시 리케가 공주를 위로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조금 전에도 길을 혼자 찾아내지 않았습니까.”

그 말에 감동하여 용기를 얻은 공주에게 리케는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자신의 지혜를 나눠줄 테니 깊이 생각하여 일년 뒤에도 자신이 마음에 들면 이 자리에 나와 달라고. 궁궐로 돌아간 공주는 몰라보게 달라져 무슨 일이든 실수 없이 척척 처리하는 통에 왕이 나랏일을 모두 공주와 상의할 정도가 되었다.

▲  ‘고수머리 리케’의 삽화

과연 공주는 일년 뒤 리케를 만나러 올 것인가. 진짜 이야기는 이 의문에서 시작된다. 작품의 줄거리와 무관하게 잠시 논리적인 문제를 생각해보자. 공주가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다면 왕자의 외모 따위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의 눈이라는 게 있어서 또는 왕국의 체면이 걸려 있어서 공주로 하여금 왕자를 선뜻 선택하기 어렵게 만든다면, 지혜는 결정의 유일한 동기가 되기 어렵다. 페로가 공주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하는 대목에서 이 딜레마의 중요성이 상기된다.

“저는 왕자님을 만나러 오면서 지혜로운 사람도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 있다는 걸 깨달았답니다.”

이 때 지혜는 인간의 선한 본성으로 대체해 이해할 수 있다. ‘푸른 수염’에서 마치 유리천장처럼 쉽게 부서진 바로 그 본성이, ‘고수머리 리케’에서는 인간을 인간되게 만드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제시된 것이다. 그렇다면 공주가 말한 ‘지혜로운 사람도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란 어떤 것일까. 우리는 위인들의 삶에서 이런 경우를 자주 만난다. 인류사의 한 획을 그은 성인들이 도처에서 출몰하여 역사가들이 ‘축의 시대’라 부른 기원전 5~6 세기경, 싯다르타는 수행의 길로 나아갈 지 여부를 두고 고민했고, 공자는 정계에 뛰어들 지 여부를 두고 고민했으며, 소크라테스는 죽음의 독배를 피할 지 여부를 놓고 고민했다. 그리고 그들은 기존의 지혜와 더불어 불굴의 자기 확신에서 우러나온 용기에 근거하여 각자의 길을 선택했고 그리하여 후세에 길이 남는 위인의 반열에 들어섰다.

3월로 예고된 박 대통령 탄핵 선고를 앞두고 새해 들어 일련의 반동 국면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중이다. 얼마간의 단순화를 감안한다면 이 현실에서 독자들은 ‘푸른 수염’의 인간상들과 ‘고수머리 리케’의 인간상을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 헌법과 법률을 무시한 채 국가 권력을 사유화한 집단의 범죄 행각이 만천하에 드러나 있다.

이를 둘러싸고 한 편에는 기왕 저지른 자신의 죄악을 감추기 위해 새로운 죄악을 서슴없이 쌓아가는 집단들이 있다. 다른 한 편에는 그들이 저지르는 범죄의 연쇄고리를 끊고자 매주 촛불을 밝히며 모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 대결은 기만과 그에 맞선 지혜의 싸움이자, 야만과 그에 맞선 용기의 싸움이다. 상대의 마음 속을 일일이 들여다 보며 대응할 지혜를 갖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비록 소박하지만 진실과 양심에 기초한 용기를 잃지 않는다면 마침내 어떠한 지혜보다 강력한 위력으로 탐욕에 찌든 무리를 단죄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 역사는 ‘고수머리 리케’의 역사이지 ‘푸른 수염’의 역사가 될 수 없는 이유다.

 

※ 김선태 편집위원은 서울대 독어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북토피아 이사, 전 내일이비즈 대표를 역임하는 등 오랫동안 출판업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현재 휴먼앤북스 출판사 주간과 (사)지역인문자원연구소 선임연구원을 맡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저작권자 © 이코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