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의 시사서평

[김선태=편집위원]

▲ 김선태 편집위원

내일은 또다시 해가 떠오르지, 허풍선이.

새벽이 오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라네, 패배자.

터널 끝에 가야 빛을 보는 자, 돌대가리.

구름 뒤에는 태양이 빛나고 있지, 낙오자.

비가 와야 무지개가 뜬다네, 일벌레.

- 「구슬도 꿰어야 보배」, 마크 폴락

박한철 헌법재판소 소장의 “이정미 재판관 임기 만료 내 선고” 발언에 따라 조기 대선이 현실화될 것으로 점쳐진다. 이 발언 직후 최순실이 특검에 끌려 나온 자리에서 ‘민주 투사’로 변신을 꾀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유튜브 방송으로 항간의 루머에 답한 것은 그만큼 탄핵 인용 가능성이 높음을 방증한다. 안타깝게도 대통령의 처신이 마치 백화점 초갑질 쇼핑녀가 장바닥에서 시래기 줍는 꼴을 보여 준 듯하지만.

특검 무력화와 선고 지연, 재앙 초래할 것

문제가 될 변수가 없지는 않다. 박 대통령이 특검 조사를 거부하고, 대통령 측 변호인들이 일괄 사퇴하여 선고를 늦추는 일인데, 그것이 현 대통령 측에 오히려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는 예상이 충분히 가능하다. 미국 역사상 탄핵에 직면한 대통령이 특검과 대결한 경우가 있는데 닉슨의 사례가 그것이다. 1972년 6월 17일 미국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가 있는 워싱턴 D.C. 워터게이트 사무실에 닉슨 대통령의 사람들이 도청기를 설치하고 기밀 문서를 빼내려다 발각되었다. 이 일로 특검에 임명된 콕스 검사는 대통령에게 백악관 집무실의 녹음 테이프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닉슨이 콕스를 해임하겠다고 발표하자 당시 미국 법무부에 근무하던 고위 공무원들이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일명 ‘토요일 밤의 학살’이 연출되었다. 결국 미국 연방대법원까지 가세하여 테이프를 수거한 결과 대통령의 도청이 사실로 드러났고 상원이 탄핵 가결을 확실시하면서 닉슨은 자진 사퇴했다. 우리의 경우 두 달을 넘어 계속되는 촛불의 분노가 어떤 상황을 만들어낼 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어쨌든 조기 대선이 현실적인 관심사가 되었음을 더 부인하기 어렵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이어지는 가운데 여권이 분열되어 있고 선거 운동 기간이 60일 이내로 짧은 점을 감안하면 이번 선거를 ‘야권에 유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치르는 선거’라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지만 이런 조건이 야권의 낙승을 보장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 가까운 경험을 보아도 그렇다. 2015년 총선 당시 야권 분열로 낙승을 자신한 새누리당이 공천 학살을 감행하여 국민적 분노를 야기했고, 진보 진영 유권자들이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가한 결과 여소야대 국회가 탄생했다. 이번 대선의 흐름은 그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어 보수 유권자들이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가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야권, 특히 더불어민주당이 진보-보수 프레임(대결 구도)을 극복할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하며 낙관론을 잠재우지 않는다면 승부는 예측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당별로 유의미한 대선 후보의 면면을 예측해 보면 이 점이 더욱 뚜렷하다. 먼저 조기 대선은 불가피하게 여야 모두 복수 후보를 낸 가운데 치러질 전망이다. 새누리당의 경우 당의 존립을 위해 무조건 후보를 내야 하는데 기대했던 반기문 전 총장이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거절 의사를 분명히 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황교안 총리로 기울고 있다. 비록 구악의 상징이자 국정농단의 공범자로 지목받고 있지만 그 힘을 얕보기는 어렵다. 풍부한 자금력과 편법적인 선거 운영, 국정 장악력을 기반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구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종북 대 반북 프레임을 내세운 선거 전략은 우려할 만하다.

바른정당은 반기문 전 총장을 영입하여 당내 경선을 치르면서 깨끗한 보수의 면모를 부각시키며 중도+보수 대 진보 프레임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엔사무총장의 권위와 기존 정치권에 대한 반감을 고려하면 반기문 후보의 상품성은 여전히 크다. 그렇지만 귀국 후 짧은 기간에 그가 보여준 수준 낮은 행태는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10%포인트까지 밀리는 것으로 입증된다. 때문에 당내 경선에서 반기문 총장의 승리를 낙관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이미 바른정당 내부에서 감지되고 있다. 그럼에도 반기문은 모처럼 맞이한 대권 접수의 기회를 쉽게 놓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강헌의 『명리-운명을 조율하다』는 반기문의 사주를 이렇게 풀이한다.

“甲申 戊辰 戊辰 戊午. 무진 일주, 월주 병존을 특징으로 하는 명식. 금수가 용희신인데 성장기에 그 덕을 보아 어려운 환경에서 외교관으로서 성공 가도를 달렸다. 다만 토 전왕(사주에 토 기운이 다섯 개)에 가까운 명식으로 자기중심적이고 보수적이며 우둔할 정도의 고집이 있고 강력한 권력욕을 지녔다.”

▲ ‘명리 : 운명을 조율하다’ = 강헌. 돌베개. 502쪽.

반기문의 지지도에 가려져 있지만 바른정당 내 타 후보의 경쟁력도 만만치 않다. 남경필 후보는 우세한 당내 기반이 있고, 5선 의원과 도지사 경력에 따른 경기도 유권자 기반이 있다. 더하여 국정농단 사태 발생 당시 새누리당을 조기 탈당하여 깨끗한 보수의 이미지를 굳혔다. 유승민 후보는 영남대표 주자, 반박-반문 결집의 적임자라는 이미지를 십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제 전문가라는 강점을 내세워 설득력 있는 경제난 극복 방안을 제시한다면 지지율 반전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되건 바른정당 후보는 유능한 보수의 대표로서 야권을 무능한 진보로 몰아가는 전략을 추구하여 상당한 성과를 올릴 것이다.

4당 대선 후보와 예상되는 선거 전략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장기간에 걸친 조사 과정에서 20%대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확보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당내 경선 승리는 물론 대권 쟁취에 가장 근접한 후보로 평가된다. 최근 상대역으로 점쳐 졌던 반기문 전 총장의 ‘닭플레이’로 인해 지지율이 고공행진하고 있는 데다 검증된 후보, 정치 개혁의 적임자라는 평가가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광을 입은 기성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발목을 잡을 수 있고, 저성장 극복이 국가적 과제로 부상되는 중에 유권자를 사로잡을 경제성장 플랜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문재인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의 고민거리일 것이다.

『명리-운명을 조율하다』는 문재인의 사주를 이렇게 풀이한다.

“壬辰 癸酉 乙亥 丙戌. 축월 술시의 을목 일간으로 겨울나무다. 거기에 일지의 해수가 가세하여 초년에 피난민 가문의 아들로 극한의 궁핍에 내몰렸고 대학에 진학해서도 강제 징집이 되었고 연수원을 차석으로 나오고도 판사 임용을 거부당했다. 그렇지만 시간 병화가 원국(사주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고 선명한 용희신과 대운이 어우러져 인생의 후반부로 갈수록 활동성이 증가한다. 을해 일주 특유의 부드러움에 강고한 원칙주의를 읽을 수 있다.”

당내 경선의 강력한 도전자들인 안희정과 이재명은 50대 중반의 개혁가들로 정치권의 세대교체에 부합하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두 후보를 비교하면 안희정은 친노 계보의 리더로서 이재명에 비해 강력한 당내 기반이 있고, 이재명은 탄핵정국의 스타로서 청문회 스타였던 노무현을 연상케 하는 리더십을 갖추었다,

『명리-운명을 조율하다』는 이재명의 사주를 이렇게 풀이한다.

“癸卯 甲子 乙酉 乙酉. 공장노동자에서 천신만고 끝에 변호사가 되어 인권을 대변했고, 민선 지방자치단체장에서 대권주자로 부상한 이재명의 명식은 을유 일주, 시주 병존의 힘을 느끼게 하는 삶의 이력을 보여준다. 뿌리내릴 땅도 화기도 한 점 없이 얼어붙어 있는 신강한 명식이다. 게다가 을을 병존의 특징은 삶의 고단함과 인덕의 박함이다. 다만 지지에 강한 도화 기운이 있어 소규모 지자체장임에도 전국민적 시선을 모으는 힘이 되었다. 부드럽고 유연한 인상이지만 목적한 바는 이뤄내고야 마는 과단성 있는 추진력도 읽힌다.”

국민의 당은 반기문이 멀어지고 손학규가 갈지자 횡보를 보이는 통에 다시 안철수 당으로 회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실 누가 들어가건 국민의 당 경선에서 안철수를 위협하기란 쉽지 않다. 안철수에게는 보수를 끌어안을 진보라는 이미지가 있고 다수 여론조사가 이 점을 뒷받침한다. 여기에 그가 내세우는 자강론을 경제로 확대하여 ‘4차산업혁명 기반 성장 전략’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면 그 파괴력이 작지 않을 것이다.

『명리-운명을 조율하다』는 안철수의 사주를 이렇게 풀이한다.

“외견상 유약하게 보이는 안철수의 명식은 壬寅 壬寅 乙未 庚辰. 실은 어느 일주 하나 약한 구석이 없어 보기보다 신강하다. 거기다 토화 용희신이 활동기 70년 동안 아름답게 흐르는 운도 따랐다. 전형적인 바른 생활 사나이 같은 생활 태도를 지녔으며, 일주에 심약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에 대한 야망 또한 매우 높다. 그에게 재물과 명성을 가져다 준 식상생재의 기운이 재생관으로 흐른 결과다.”

재야 인사 중 유의미한 예상 후보로 손학규를 들 수 있다.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야당 대권 주자로 나섰다 고배를 마신 끝에 토굴 속에서 와신상담하더니 급거 상경하여 탄핵 정국에서 목소리를 냈지만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았다.

이렇게 된 개인적 배경을 『명리-운명을 조율하다』의 풀이에서 찾을 수 있다.

“손학규의 명식은 丁亥 辛亥 乙巳 丁亥로 4개 지지에 무토가 암장되어 진보와 보수를 오가는 고단한 삶을 살았다. 본격적인 용신 대운이 드는 해에 영국으로 유학하여 정치학 교수가 되었고 이후 화려한 경력을 쌓았으나 2007년 을사 대운을 맞아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민주신당의 국민경선에서 고배를 들었다. 이 해에 천간과 지지에 무려 10개의 충이 폭발하는 극변의 기운 탓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4당 4색 후보를 살피면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예측 가능하며 미리 정해진 승자 따위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매 순간 준비하지 않고 권력 쟁취의 가능성을 엿보는 자만큼 어리석은 이도 없다. 자신의 필승 프레임을 만들지 못하는 당과 후보에게는 60일도 심히 가혹한 일정일 것이다. 마크 폴락의 시처럼 “구름 뒤에는 태양이 빛나고 있지” 하고 생각하는 후보에게 유권자들은 “그러니까 당신은 낙오자야” 하고 답하리라.

 

※ 김선태 편집위원은 서울대 독어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북토피아 이사, 전 내일이비즈 대표를 역임하는 등 오랫동안 출판업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현재 휴먼앤북스 출판사 주간과 (사)지역인문자원연구소 선임연구원을 맡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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