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홍국 편집위원/경기대 겸임교수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은 갈등과 대립의 나라다.

▲ 김홍국 편집위원

지역갈등, 이념갈등, 계급갈등, 계층갈등, 직역갈등 등 셀 수 없는 갈등과 대결이 펼쳐진다.

대부분 남의 말을 듣지않기에, 협상이나 타협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상대 진영의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않고 삭발과 단식, 장외집회로 끝없는 대결과 갈등 증폭에 나서는 한국 사회의 정치권이 그렇고, 경영-노동계의 대립도 마찬가지다.

이로 인한 우리 사회의 갈등관리 비용에 대해 삼성경제연구소(SERI)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27%를 사회적 갈등관리 비용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연간 최대 246조원이며 모든 국민이 매년 900만원씩을 사회적 갈등 해소에 쓰고 있는 셈”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2020년 우리 국가예산이 513조원으로 잠정 결정됐다는 점에서, 소모적인 사회갈등 비용이 한해 국가예산의 절반 정도에 달하는 셈이다.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최근 여야간의 삭발투쟁, 장외집회, 사실상의 입법 중단과 국회 마비 등을 고려한다면 수백조원대의 사회갈등 비용이 발생하는 것은 한심하고 답답한 일이다.

우리사회에 고질화된 갈등을 해결하는 협상과 대화, 토론문화가 절실하다. 내 말만 하는 일방적인 연설이나 스피치보다는 국민과 청중과 소통하고 교감하며 이루는 대화형 스피치가 각광받는 것도 이같은 세태를 반영해서일 것이다.

“폭력적인 갈등 문화 바꿔야, 갈등감옥 벗어날 것”

이에 따라 국회에서 심사되지 못하고 묵힌 채로 계류 중인 갈등관리기본법이 최근 국민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갈등관리기본법은 정부와 시민, 시민과 시민의 갈등을 협상, 조정, 참여적 의사결정 등 대체적 분쟁해결(ADR) 기법을 통해 예방하고 해결하는 길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민법상 화해에 준하는 효력을 갖는 중재에 치중함에 따라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제약하는 기존의 분쟁조정제도인 ‘행정형 ADR’과 달리, 당사자 합의의 자율성을 우선함으로써 적용 범위와 수용성이 크다는 점에서 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갈등관리 관계 기본법의 부재 속에서 대통령령으로 사회갈등 해결이 추진되고 있고, 갈등관리가 사회적으로 파장이 있는 이슈 별로 부처나 지방자치단체마다 산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체계화와 제도화는 시급한 상황이다.

특히 지자체, 이해관계사 등이 주관하는 공론화 위원회가 우후죽순 격이고, 설치 및 운영 방식이 제각각 다른 탓에 결과물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 방식과 강제력 및 권한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점은 반드시 교통정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18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 주최자로서 참석한 김관영 의원과 공동주최에 나선 김영우, 김종회, 김해영, 박주민, 신창현, 전해철 의원의 움직임은 그래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법안은 갈등공화국 오명을 가진 우리나라에 보다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갈등관리 시스템 도입을 통해 불필요한 사회적 자원 낭비를 줄이고 선순환을 꾀하자는 취지로 추진되고 있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법안 심사가 완료되지 않는 경우, ‘임기 말 폐기’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고, 이에 따라 YMCA 등 35개 시민사회단체들은 갈등관리 관계 법률 제정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 서울 여의도 국회에 차량 통제용 정지 팻말이 서 있다./뉴시스

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날 토론회에서 “공적 영역에서 시작한 협상과 조정의 갈등관리가 사적 영역으로 흘러 넘치면 사인 간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도 덜 폭력적으로 변할 것이다. 사르트르처럼 말하자면 타인을 바라보는 방법과 타인의 시선을 이해하는 방법, 둘 다를 배우면 이 땅의 삶도 지옥 같은 타인과 함께 사는 감옥살이를 벗어날 수 있다”며 “폭력적인 갈등해결 문화를 바꿔야 한다. 갈등관리기본법 제정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귀담아들을 지적이다.

타인에 대한 신뢰도 26.6% 불과, 경쟁력-잠재력 저해

사회적 갈등은 한국 사회의 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을 저해하고, 다양한 비효율과 집단 간 대립, 집회 또는 시위 등의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경제 영역의 경우 정부기관 노조, 비정부기구(NGO), 시민단체 등이 관련되는 다양한 형태의 갈등과 마찰이 발생하고, 이는 손해나 비용. 경제적 손실, 기업 이미지 손상, 글로벌 조직의 사기 및 효율성 저하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한국 사회갈등과 경제적 비용'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사회갈등지수가 0.71로 터키(1.20), 폴란드(0.76), 슬로바키아(0.72)에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네 번째로 높으며, OECD 평균(0.44)에 비해 1.5배정도 높은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시급한 개선과 개혁이 절실한 상황이다.

노사 갈등, 윤리적 갈등, 문화적 갈등, 세대 갈등, 남녀 갈등, 계층 갈등, 지역 갈등 같은 그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갈등을 합쳐 수치로 표현한 ‘사회갈등지수’는 국가의 민주주의 성숙도와 정부 정책의 효율성이 낮을수록, 소득 불균형이 높을수록 높아진다.

2009년 삼성 경제연구소에서 발표한 '한국의 사회 갈등과 경제적 비용'이라는 보고서 이후 매년 집계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갈등 지수는 OECD 27개국 가운데 3~4번째로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2015년 기준 한국은 잠재적 갈등요인(35위)과 갈등관리역량(32위) 모두 비교대상국 37개국 중 최하위권으로, 가치관 격차는 최하위(37위)를 기록했다.

OECD 최근 35개 회원국 대상 조사 결과 ‘다른 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한국은 26.6%만이 ‘그렇다’고 응답해 평균(36.0%)에도 훨씬 못 미치는 23위 기록했다. 덴마크(74.9%), 노르웨이(72.9%), 네덜란드(67.4%), 스웨덴(61.8%), 일본(38.8%), 미국(35.1%) 등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불신공화국인 셈이다.

‘무능국회’ 법안처리율 20%대 정치분야 갈등 매우 심각

사회의 자원 배분을 결정하는 정치 분야의 갈등은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여야 대결과 야당의 극단적 장외투쟁이 반복되면서 매 현안마다 대결하고 있으며, 사회갈등 역시 경사노위 등 여러 갈등 조정 또는 협상 기관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앞에서 조국 법무부장관 사퇴와 문재인 정권을 규탄하며 삭발을 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오른쪽부터 장석춘, 송석준, 최교일, 김석기, 이만희 의원이다./뉴시스

제20대 국회 들어 법안처리율이 20%대 후반에 불과할 정도로 계류법안이 산적하고, 국민들이 입법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는 민생법안과 제4차 산업혁명에 대처하기 위한 빅데이터 3법,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처하기 위한 다양한 법안들마저 여야의 정치대결에 가로막혀 사장되고 있다.

참담한 대결문화에 찌든 우리 현실을 살펴볼 때, 우리 사회에 어느 때보다 갈등 관리와 협상문화 정착이 필요함을 절감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하버드대학이 일찌감치 협상학을 비즈니스스쿨과 로스쿨의 필수 과목으로 선정한 뒤 협상연구소(Program on Negotiation)를 설치하고 다양한 협상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성공하는 협상의 패러다임과 전략을 구축한 탓에 사회 전반에 협상문화가 확산됐다. 유럽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도 협상문화 확산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줄여나가고 있다.

협상은 실제 상호간 입장 차이를 좁히고, 파국이나 전쟁보다 합리적인 결실을 맺는 경우가 많다. 이란과 주요 6개국(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 협상단은 2015년 7월 오랜 협상 끝에 ‘이란 핵 협상 타결’을 공식 발표했다.

이에 대해 AP, CNN 등 주요 외신은 13년 만에 일궈낸 역사적인 성과라고 보도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을 직접 비난하고 압박하기 전까지 어느 정도 외교적 성과를 만들어왔다.

2015년 12월에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총회(COP21) 195개 협약 당사국이 프랑스 파리에서 2주간에 걸친 협상 끝에 2020년 이후의 새 기후변화 체제 수립을 위한 합의문 ‘파리협정(Paris Agreement)’을 최종 채택했다.

국제사회의 갈등 가득한 외교무대를 빛내는 것은 역시 협상문화라는 절감케 하는 대목이다.

 

갈등 협상-조정 가능한 갈등관리기본법, 제정하라

이같은 갈등을 해소하고, 협상과 타협을 통해 분쟁이나 대립을 해결하는 갈등관리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집회와 시위, 무력행사를 통해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려 할 경우 필연적으로 대립과 파국이 나타날 수밖에 없으며, 천문학적인 갈등비용과 함께 미래가 아닌 과거 속에서 헤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18일 청와대 본관 인왕실에서 열린 '정당 대표 초청 대화'에서 여야 5당 대표들과 공동발표문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뉴시스

그런 의미에서 갈등관리기본법 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중요한 사회적 화두가 됐다. 법률을 통해 갈등관리 및 조정의 제도화를 이루고, 공론화위원회 등을 통해 국민의 여론을 반영해 최종 결정을 이룬다면 모두가 만족하는 최선 아니면 차선의 해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정부와 시민, 정부와 정당, 지자체와 시민, 시민과 시민 등 다양한 층위에서 발생하는 갈등현상을 협상하고 조정할 수 있는 ‘갈등관리기본법’이 조속히 제정되길 기대한다.

이를 통해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갈등 해소와 관리의 장에 참여하고, 대화와 토론을 통해 의사결정을 해나가는 협상문화가 활짝 피어나길 기대한다.

※ 김홍국 편집위원은 문화일보 경제부 정치부 기자, 교통방송(TBS) 보도국장을 지냈으며, 경기대 겸임교수로 YTN 등에서 전문 패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MBA(기업경영)를 취득했고, 리더십과 협상에 관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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