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 시사서평

[이코노뉴스=김선태 편집위원]

▲ 김선태 편집위원

우리들의 싸움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 있다

민주주의의 싸움이니까 싸우는 방법은 민주주의식으로 싸워야 한다

하늘에 그림자가 없듯이 민주주의의 싸움에도 그림자가 없다

하 …… 그림자가 없다

- 김수영, ‘하 ...... 그림자가 없다’ 중에서

“나는 무척 반항적이고 자의식이 강한 소년이었다. 무엇을 해도 지기 싫어하는 성격을 타고났다. 그런데 가난 때문에 겪는 일들은 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상처받은 자존심을 반항으로 표출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부산 가야 공원 산 중턱 해고 노동자들이 모여 살던 자취방을 변호사 노무현이 방문했다. 노동자들은 평소 구경하기도 힘든 안줏거리와 함께 자리를 차지해 앉더니 몇 시간을 떠들다 돌아갔다. 버스에서 내려 걸으면 숨이 턱까지 차는 비탈길인데 싫다는 아내를 끌다시피 붙잡고 오른다. 후일 알게 된 바로는 자신이 앞으로 그런 삶을 살 거라는 무언의 시위 삼아 그런 식으로 연출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노무현은 당시 해고 노동자들의 소송을 맡으면서 가지고 다니던 자가용도 팔아 치웠고 나름 호사에 속했던 요트 타기도 끊었다. 자기 주머니를 털어 소송을 진행했음은 물론이고 노동자들을 대신해 회사 대표와 협상에 나서기도 했다.

 

처음 노무현은 봉하 마을에 길이 남을 고시 합격생으로 그저 그런 일상을 영위하던 평범한 변호사였다. 그런 그가 노동자들의 억울하고 비참한 생활과 부림 사건 피해자들의 충격적인 장면에 눈 뜨는 과정을 보면서 독자들은 그의 내면에 깊이 뿌리내린 인간애에 직면한다. 그것은 시뻘건 황톳길을 내달리며 가난을 원망하던 순진한 소년 시절부터 봉하 마을 부엉이 바위에 오르던 마지막 순간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변치 않았던 성정이었다.

“왜 정의가 패배해야 하는가?”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인권 변호사로 불의와 타협하는 법이 없었던 노무현은 정치에 뛰어들어 진보의 꿈을 펼치려 했으나 숱한 좌절을 맞보았다. 2000년 4월 당선이 확실시되던 종로를 버리고 고향 부산에 내려가 세 번째 낙방하던 날 저녁, 그는 참으로 큰 회의에 빠졌고, 이제는 접으리라 다만 마지막으로 정치를 해야 할 이유를 찾아 보마 했다.

마침 집어 든 월간조선에 링컨의 연설문이 실렸는데, 노무현은 거기서 이유를 찾아냈다.

“나는 백범 김구 선생을 존경했다. 김구 선생은 민족의 해방과 통합을 위해 목숨을 빼앗기는 순간까지 뜻을 꺾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현실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했다. …… 우리 현대사에 존경 받는 위인은 왜 패배자뿐인가? 우리 역사는 정의가 패배해 온 역사라는 말인가? …… 나는 남북전쟁 종식을 눈앞에 두고 했던 링컨 대통령의 두 번째 취임 연설문을 읽으면서 ‘정의를 내세워 승리한 사람’을 발견했다.”

▲ ‘운명이다 : 노무현 자서전’ = 노무현재단(엮음), 유시민(정리). 돌베개. 392쪽.

링컨은 선거에서 숱하게 떨어졌고 대통령 재임 중에는 누구보다 격렬한 비난을 받았으며 당시는 인기도 없었다. 그렇지만 링컨은 전쟁을 치른 남부를 적으로 몰아세우지 않았으며 승리니 패배니 하는 말도 쓰지 않았다. 대신 링컨은 모든 연설에서 정의와 평화, 통합을 외쳤다. 그러고도 링컨은 노예제 폐지와 연방의 통합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모두 이루었다.

링컨에게서 위안을 얻은 노무현은 다시 일어섰다. 사람들이 그에게 ‘바보 노무현’이라는 애칭을 붙여주었고 이어 ‘노사모’가 만들어졌다. 이제 그는 목표를 대통령으로 바꾸었고 2년 뒤 이 무모한 도전에서 승리했다. 정의를 향한 그의 여정에서 절반의 승리가 이루어졌다. 나머지 절반은 그가 즐겨 부르던 노래 가사 한 구절처럼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바쳐질 터였다. 그의 대통령 선거 1호 공약도 ‘상식이 통하는 나라’였다.

이를 위한 개혁이 시작되었다. 스스로 지적했듯이 그 핵심에 검찰, 국세청, 언론 등으로 대표되는 정치 개혁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익히 아는 대로 노 대통령은 개혁을 마치 김수영의 시구절처럼 ‘민주주의적’으로 추진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지 않았다. 퇴임 뒤 기다렸다는 듯 측근 비리 수사가 시작되었고 일부 언론은 노무현의 인생을 낱낱이 들추며 저주를 퍼부었다. 그는 고향 집에 갇혔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며 모든 꿈을 접어야 했다.

“20년 정치인생을 돌아보았다. 마치 물을 가르고 달려온 것 같았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었다고 믿었는데, 돌아보니 원래 있던 그대로 돌아가 있었다. 정말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길이 다른 데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대통령은 진보를 이루는 데 적절한 자리가 아니었던 것이 아닐까?”

노무현의 인생 여정은 그의 말대로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운명이었던가. 철저히 고립되고 짓눌려 더 이상 육체적 생존조차 부지할 수 없는 상황을 달리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지경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뚜렷한 정치적이며 시대적인 배경이 있었음을 이제는 누구나 안다. 운명은 그와 삶의 궤적을 같이 걸었고 그가 말하는 정의의 승리에 공감했으며 그리하여 그의 길을 이어 걷고자 하는 후임자들에게 어울리는 표현일 것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진보의 희망과 미완의 개혁, 이 모두를 유산으로 이어받은 후임자가 문재인 전 비서실장이라는데 많은 이들이 동의한다. 두 사람은 1982년 처음 만나자마자 의기투합한 이래 평생의 동반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폭염 속 황토, 한파 속 송백

“나는 당시 세속적 기준으로 잘 나가는 변호사였다. 사건도 많았고 승소율도 높았으며 돈도 꽤 잘 벌었다. 법조계의 나쁜 관행과도 적당하게 타협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재인 변호사와 동업을 시작하면서 그런 것들을 다 정리하기로 약속했다. 그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 손녀 노서은과 잔디밭에 앉아 장난하며 과자를 먹는 노무현 대통령,(출처=사람사는세상 노무현 재단. 2007.09.13.)

1982년 부림 사건 변호를 맡으면서 “아무것도 모르던 변호사” 노무현은 변화의 격랑 속으로 휩쓸려갔다. 낮에는 시위하러 나가 길바닥에 드러눕기가 능사였고 저녁에 돌아와서야 주특기인 조세 사건 변론을 맡았다. 하지만 그가 민주화 운동에 점점 깊숙이 뛰어들면서 어느 순간부터 사무실 일은 전폐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살림은 문재인 변호사가 맡고 인권운동은 노무현 변호사가 맡는, 다소 황당한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문재인은 대부분의 경우 이유를 따지지 않고 노무현 곁을 지켰다. 대통령 후보 시절 대중 앞에서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고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말하게 된 배경이다.

두 사람을 비교해 보면 놀랍게도 다른 점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3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했을까 신기할 정도다. 초기에 문재인이 노무현을 떠나 따로 살림을 차린 때가 있다. 당시는 고용 변호사 제도라는 개념이 없을 때여서 수익 분배가 간단치 않았는데 문재인 변호사가 늘 당하기만 하다 폭발했다는 말이 전설처럼 전해진다. 한 명의 인간으로 볼 때 노무현은 그저 보통 사람에 불과했다. 경험하면서 배우는 일이 체질화된 사람이었고 스스로 드러내고 고치기를 마다한 적 없는 투지의 사내였다. 심지어 스스로도 자신이 속물임을 고백할 정도였다.

“선배 판사들을 따라다니면서 변호사들한테 밥 대접 술 대접을 받았다. 선배들이 접대를 잘 하지 않는 변호사를 짠돌이라고 욕하는 것을 듣고 그런 변호사들을 골탕 먹일 못된 궁리를 하기도 했다.”

문재인은 같은 경우를 겪으며 다른 결론에 이른다. 그 역시 초기 변호사 시절 수임을 위해 술 접대를 해야 했지만 그럴 때마다 울화가 치밀어 이를 악물었다. 우선 비싼 양주 살 돈이 없고, 접대 자리가 마음 편할 리 없고, 결정적으로 상대방이 접대 받기를 당연시했다. 그는 그런 접대를 끊었고 내친김에 스스로 양주를 끊었다.

한쪽이 이글거리는 폭염 아래 선 황토 같은 사내라면 한쪽은 매서운 한파 속에 선 송백 같은 사내였다. 한쪽이 천 길 물속을 이것저것 따지지도 않고 뛰어드는 사내라면 한쪽은 부드러운 침묵과 극한의 인내를 지닌 사내다. 그런 두 사람을 관통하는 것이 우직하며 한결같은 정의감이었고, 그것으로 다른 모든 차이가 상쇄되었다.

이 시점에서 노 대통령이 남긴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진보 진영은 정의를 내세워 승리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해도 ‘사람 사는 세상’에 어울릴만한 개혁이 가능할까? 시대가 묶어준 인연이라는 것이 있다면 시대가 남겨준 운명이라는 것도 있을 것이다. ‘바보’ 노무현의 비극을 바보처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이 문제에 답해야 한다. 누군가는 “운명이다” 하며 받아들여야 한다.

※ 김선태 편집위원은 서울대 독어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북토피아 이사, 전 내일이비즈 대표를 역임하는 등 오랫동안 출판업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현재 휴먼앤북스 출판사 주간과 (사)지역인문자원연구소 선임연구원을 맡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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