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 이회영, 전재산 수백억 몽땅 팔고 일가족 모두 만주로…가난과 굶주림 견디며 독립운동

김문철 기자l승인2019.09.14l수정2019.09.14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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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뉴스=김문철 기자] 우당 이회영( 李會榮)이 화제다.

우당 이회영은 한말에 활동한 독립운동가다. 여섯형제와 일가족 전체가 전재산을 팔아 만주로 망명하여 항일 독립운동을 펼쳤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이 끝난 뒤 나라되찾기관을 방문,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의 의복을 살펴보고 있다./뉴시스

당시 이회영이 처분한 재산은 40만원으로 지금의 6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우당 이회영은 당시 청나라 실권자 원세개를 직접 만나 대한제국의 항일운동에 대한 적극협조를 받아내고 광화에 대한독립군 군관학교인 신흥무관학교가 건립되는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우당 이회영은 '서전서숙' '신민회' '헤이그 특사' '신흥무관학교' '고종의 국외망명' '의열단' 등 국외 항일운동의 전반에 관여하였다. 임시정부 수립을 반대하였으며 신채호, 이을규 등과 무정부주의(아나키스트)운동을 전개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헤이그 특사 실패 후 국외에 독립기지마련을 위해 1910년 12월 여섯형제와 가족, 노비 40여명의 일가족 전체가 만주로 망명하였으며 이 때 여섯형제가 전재산(약 600억 원으로 추산)을 팔아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으로 운용했다. 1931년 '남화한인연맹'을 결성하고 <남화통신>을 발간하는 한편, 비밀행동조직 '흑색공포단'을 조직하였다. 1932년 만주에 연락근거지를 확보하고 지하공작망을 조직할 목적으로 상하이에서 다롄[大連]으로 배를 타고 가던 도중 상하이 밀정의 밀고로 일본경찰에 붙들려 다롄경찰서에서 심한 고문 끝에 옥사하였다.

그의 가족들은 가난과 굶주림을 견디며 독립운동을 이어갔고 6형제 중 이시영만 살아남아 독립을 볼 수 있었다.
김문철 기자  ace8819@econo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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