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 시사서평

[이코노뉴스=김선태 편집위원]

▲ 김선태 편집위원

‘붉은 닭의 해’ 정유년 새해를 맞으며 국민들의 관심은 빠른 속도로 차기 대선에 모아지는 분위기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 시점, 탄핵 인용 여부, 가결 시 또는 부결 시 정국 추이 같은 주제들이 예외 없이 대선과 결부되어 논의된다. 2월에 탄핵이 인용되고 4월 대선이 치러질 것이라는 낙관론이 있는가 하면 헌재가 촛불 민심에 등을 돌릴 것이라는 비관론도 제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르건 느리건 그야말로 파국적 상황이 오지 않는 한 2017년 대선은 치러지게 되어 있다.

조기 대선 전제한 다각도 분석

이에 서로 다른 진영에 속하는 세 명의 여론 분석 전문가들이 19대 대선을 놓고 한 판 기싸움을 펼친 결과를 책으로 펴냈다. 한 사람은 진보 진영의 입장에서, 다른 한 사람은 보수 진영의 입장에서, 그리고 한 사람은 두 입장을 중재하는 위치에서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었다.

4월 대선론을 공공연히 주장하는 정봉주 전 의원이 추천사를 쓴 것처럼 조기 대선을 전제한다는 한계가 엿보이기는 하지만 다가올 대선에 대한 양대 진영의 전망을 논쟁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이 돋보인다.

진보와 보수의 입장 차를 확인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탄핵과 대선의 지평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전대미문의 국정농단을 저지른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데 대해 절대 다수의 국민들이 생각을 같이 하고 그 결과 거대한 촛불의 행렬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것은 진보의 정권 창출에 어떠한 보증도 되지 못하며, 보수의 패배를 조금도 확정 짓지 않는다. 저자들은 지난 역사의 다양한 경험 자료들로 그 이유를 설명한다. 우리 국민들은 대선이 자신의 삶에 어떤 식으로건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이에 따라 좌우 스펙트럼의 어느 지점에 스스로를 위치시키고 이를 기준으로 지지 후보를 결정한다.

▲ 『19대 대통령』 = 박시영, 이상일, 김지연. TALK SHOW. 564쪽. 2016. 12. 26.

여기에다 오늘날 진보와 보수에 덧씌워진 부정적 이미지가 판단의 잣대로, 비난의 근거로 작용한다. ‘진보는 설익고 보수는 퇴행적’이며, ‘진보는 운동권이고 보수는 기득권자’이며, ‘진보는 선민의식에 빠져 있고 보수는 탐욕에 물들어 있다’는 주장들이 그렇다. 따지고 보면 이러한 이미지는 진위 여부와 무관하다. 예를 들어 진보는 무능하다는 비난은 진보가 정권을 잡으면 경제가 망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지지만, 역대 정권의 집권기 평균 경제성장률은 김대중 시기 5.1%, 노무현시기 4.3%, 이명박 시기 3.2%, 박근혜 시기(초기 3년치만) 2.9%로 이를 간단하게 부정한다.

같은 기간 연간 수출증가율의 경우 다소 극단적이어서 김대중 5.3% 노무현 17.7%에서 이명박 6.7% 박근혜 -1.4%로 나타난다(지난해 수출증가율은 -5.9%까지 떨어진 상태). 실제 성취를 무력화시키는 부정적 이미지의 파괴력은 지난 대선에서 드러났다. 이명박 시기를 경험하고서도 18대 대선에서 호남권 유권자들은 박근혜 후보에게 10.5%의 표를 주었는데, 이는 김대중 당시 3.3%, 노무현 당시 4.9%, 이명박 당시 9.0%에 비하면 파격적인 비율이었다.

토론자들은 오늘의 경제 위기나 국정 농단이 유권자들을 분노하게 만들고 있지만 그렇다고 진보 진영이 강화되는 것이 아님을 다양한 사례로 보여준다. 가령 소득 수준만 해도 그렇다. 2012년 대선에서 월 소득별 대선후보 지지율을 추산하면 박근혜 후보는 단지 200만원 이하 소득 구간에서만 문재인 후보를 앞섰다. 그래서 ‘빈곤층=새누리당 지지’라는 주장은 하나의 프레임으로까지 잡힌 상태다.

연령층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 선거 연령을 낮춘 결과 자민당이 더 많은 표를 얻었다는 사실은 눈여겨 볼 만하다. 이와 같이 다양한 사례를 통해, 저자들은 진영의 문제를 유동적이고 독립적인 변수로 취급해야지 경제나 정세에 종속된 변수로 보면 필패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들은 자신을 좌우 스펙트럼의 어디쯤에 위치시키고 있을까.

저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2012~2016년간 우리 유권자 성향은 진보 28.6%, 보수 23.9%, 기권층 25.2%, 부동층 22.2%로 나타난다. 거의 50%에 해당하는 유권자가 무당파인데, 이들 가운데 거의 절반이 어떤 실망감으로 좌우에서 이탈한 유권자라는 점이 문제다.

국정농단 사태에서 비켜 서 있었던 반기문이 높은 지지를 받는 근거가 여기 있다. 그 나머지 절반은 좌우 중간에 위치하므로 중도라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들이 중도라 해서 중도 후보를 찍는게 아니라 당선 가능한 후보로 기우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중도로 내세워서는 결코 다수표를 획득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정치 지형의 특징이다. 중도층을 타깃으로 한 손학규나 안철수 등의 선거 캠페인 전략이 먹힐 수 없었던 이유다. 이런 조건에서 진보측 저자는 “진영대결을 강화하라, 담대한 비전이 먹힐 것”이라 말하고, 보수측 저자는 “대선을 전망적 투표로 바꿔야 보수가 산다”고 조언한다.

흥미진진한 유력 후보 분석

책 후반부에는 이번 대선의 주요 후보 10여 명에 대한 인물평이 꽤 자세하게 펼쳐진다. 일부는 이미 가시권에서 멀어졌고 일부는 중도를 표방하다 탈락 위기에 빠져 일부만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중 이재명 성남시장(54)은 탄핵 국면에서 가파른 상승세로 선두권에 올라선 인물이다. 워낙 잘 알려지지 않았던 탓에 다른 이들에 비해 흥미진진하게 읽히는 그의 스토리를 소개해 본다.

이재명은 안동 화전민 출신으로 그 인생사가 ‘자수성가한 흙수저’로 압축된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공장에 취직했는데 산재를 입어 팔이 뒤틀리는 장애인이 되었다. 주경야독하여 중·고교를 검정고시로 마쳤고 대학에 들어가자 운동권이 되었으며 약관 23세에 사시(28기)에 합격했다.

판사 임용이 가능했으나 이를 ‘거부’하고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는 등 일관되게 진보의 가치를 견지한 채 밑바닥 유세를 펼치며 성남 시장에 당선되었다. 발군의 시정능력을 보여 공약이행률 1위를 지속하는 등 전국적 지지를 쌓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대통령 탄핵을 공공연히 주장, ‘이슈 주도자’ 이미지를 굳혔다.

탄핵 정국에서 이재명은 시원한 발언으로 ‘사이다’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동시에 ‘싸움닭’이라는 말도 듣고 있다. 당대의 책사라는 윤여준이 그를 ‘준비된 선동가’라 불렀으며 주변 사람들은 ‘수재형 리더’라고 평한다.

유능한 진보 일꾼, 풍부한 인생 스토리, 그리고 발군의 미디어 소통 능력이 이 신진 후보가 지닌 긍정적 이미지를 압축해 보여준다. 노대통령과의 유사성은 이 시장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소재다. 승부사적 기질, 비주류 출신, 자수성가한 변호사, 단기필마로 급등한 인기, 나름 강력한 지지층 등에서 그렇다.

최근 1대 1 대결에서 반기문을 이기는 결과가 나오기도 한 것처럼 대선 후보로서 경쟁력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이른바 ‘신선한 신상품’에 성남 시정이라는 구체적 밑천이 있고, 명쾌한 논리와 경험에 근거한 발언의 신뢰성이 있으며, 입지전적인 성장 과정이 주는 기대감이 있다. 물론 대선 경선 과정에서 당내 입지를 굳힐 경우 결과와 무관하게 이후의 정치 보폭은 지금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커질 것이다.

하지만 중앙무대 경험이 없는 협소한 경력, 부족한 인적 네트워크와 자문 시스템, 복잡한 가족사와 측근들의 연이은 구속 등 부정적 이미지도 적지 않다. 이 시장의 대선 행보를 여러 각도에서 살필 수 있다. 우선 당내 경선 시 더불어민주당의 2원적 경선룰로는 문재인은 물론 안희정에게도 밀릴 수 있다. 당원과 국민 참여하는 선거인단은 당원에서, 여론조사는 당 지지층에서 각각 열세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결선투표제 도입이 이 판을 바꿀 지 모르지만 성사 여부를 예단하기 어렵다.

이런 이유에서 이 시장은 인맥, 성향, 경험 등 기왕의 부정적 이미지를 적기에 극복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 김선태 편집위원은 서울대 독어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북토피아 이사, 전 내일이비즈 대표를 역임하는 등 오랫동안 출판업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현재 휴먼앤북스 출판사 주간과 (사)지역인문자원연구소 선임연구원을 맡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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