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국의 정치 시평

[이코노뉴스=김홍국 편집위원] 2016년 병신년(丙申年)의 대한민국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위기와 고난의 시기를 보내야했다. 미증유의 비선실세 및 대통령의 국정농단과 국기문란으로 인해 대한민국 국정은 마비됐고, 국가시스템은 송두리째 파괴됐다.

국가기밀이 숱하게 빠져나가고, 인사와 정책은 불법개입으로 얼룩졌고, 언론 및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불법적 행태가 난무했다. 선열들이 피땀으로 쌓아올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형해만 남은 상황에 놓였다.

▲ 김홍국 편집위원

그런 국정 마비와 국격 추락의 상황에서 세계인들을 놀라게 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힘이 되살아났다. 촛불시민들의 뜨거운 열기와 민주주의에 대한 소망에서 짓밟힌 민주주의의 싹은 다시 희망으로 틔워나고 있다.

2017년 정유년(丁酉年)은 그런 국민들의 민주주의와 정의에 대한 열망으로부터 시작했다. 연인원 1,000만명이 모인 광장의 외침은 거대한 울림이 되고 있다. 이제는 스스로 희망을 찾는 목소리와 자신감이 국민들 사이에서 움트고 있다.

정호승 시인은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시에서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 말고/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겨울밤은 깊어서 눈만 내리어/돌아갈 길 없는 오늘 눈 오는 밤도/하루의 일을 끝낸 작업장 부근/촛불도 꺼져가는 어둔 방에서/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고 노래한다. 그런 희망이 움트는 것은 민주주의와 정의를 살려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촛불집회, 국격 추락의 수렁에서 대한민국을 끌어올리다

희망은 절망으로부터 시작한다. 그 첫 징후인 촛불집회는 국정 마비와 국격 추락이라는 수렁에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희망을 건져올렸다. 세계는 평화롭고 수준높은 촛불집회를 보며 경탄하고 있다. 1~10차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의 수는 주최측 추산으로 연인원 1,000만명을 넘어섰다. 집회당 평균 100만명 꼴로, 대한민국 헌정사상 초유의 기록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보도되고 국민의 분노가 시작되면서 10월 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1차 촛불집회는 당시 주최 측 추산 3만명이 모이는 소규모 집회로 출발했다. 그러나 이제는 외신들이 “촛불집회에 나타난 시민들의 평화적인 광장민주주의에 대한 열정과 수준 높은 질서의식은 세계민주주의 역사의 모범”이라며 표현할 정도로 세계인들의 경탄을 받는 세계사적 사건이 됐다. 연인원 1,000만명이 넘는 집회는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 1일 전남 구례군 지리산 노고단에서 정유년(丁酉年)의 첫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전남 구례군=뉴시스

대기록이다.

독일 유력 주간지 <디 차이트>는 촛불집회에 대해 “박 대통령 탄핵 심판은 국회가 의결했지만, 진정한 주인공은 '용감하고 열정적인 민주적 시민들'”이라며, "어떻게 하면 최고 권력의 부정과 무능을 평화적이고 규율을 지키면서 바로잡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귀중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력 서구 언론들이 유럽과 미국이 대한민국을 배우라고 권할 정도로 세계사에 교과서적 사례가 된 대한민국의 촛불집회는 세계인들의 자랑과 존경의 대상이 됐다.

망가진 정치사회 시스템의 복원, 헌재 조속히 결정해야

두 번째 희망의 징후는 망가진 정치와 사회 시스템이 정상화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대통령과 비선실세에 의한 초유의 국기문란 사태에 대해 입법부인 정치권과 사법부는 냉철하게 대처하면서 사태의 해결을 이끌어가고 있다.

입법부는 12월 9일 국민의 뜻을 모아 대통령 탄핵안을 찬성 234표 대 반대 56표로 가결했다. 당초 친박 진영이 장악한 새누리당이 반대할 경우 탄핵이 가능할지에 대한 우려도 나왔지만, 정치권은 국민들의 분노를 탄핵안 가결로 화답했다.

탄핵안을 송부받은 헌법재판소는 차분하고 신중하게 심리를 하면서도 속도를 내면서 탄핵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헌법재판소는 3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첫 변론기일을 열고 5일 두 번째 변론기일을 여는 등 속도전에 돌입하며, 세 번째 변론기일은 10일로 잡았다.

헌재는 지난달 재판관 3명이 진행하는 '준비절차' 기일을 세 차례 열어 탄핵사유를 5개로 정리했고, 심판정으로 부를 일부 증인도 채택했다. 본 심리를 시작한 지 열흘 만에 국정농단 사태의 주요 인물 대부분이 탄핵 심판정에 모습을 드러내게 됨에 따라 헌재의 빠른 심리 속도가 이대로 진행될 경우 탄핵 심판의 결론 역시 빨리 나올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박한철 헌재 소장도 올해 신년사에서 "오직 헌법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투명한 법 절차에 따라 사안을 철저히 심사해 공정하고 신속하게 결론을 내리겠다"고 말하는 등 탄핵 심판은 국민의 뜻을 받드는 중대한 민주주의의 국면을 예고하고 있다.

권력은 비판 언론에 족쇄를 채우는 등 언론의 자유를 유린하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는 등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국민의 생명권을 도외시했지만, 국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이룩해온 대한민국의 국가 시스템은 차분하게 정상 작동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좌절했던 청년세대의 부활, 민주주의 주역으로 떠오르다

세 번째 희망의 징후는 고통을 겪으며 좌절했던 청년 세대가 희망을 외치고 있다는 점이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세계가 경탄할 정도로 세계사의 모범이 되는 시민혁명의 진면목을 선보였다. 사상 최악의 실업난 속에 정규직에서 배제당하고, 알바 인생으로 흙수저와 무수저 세대가 되면서 헬조선의 고통에 시달리던 청년들이 대한민국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 31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송박영신' 10차 촛불집회에서 한 시민이 촛불을 든채 현장의 열기를 휴대폰 카메라에 담고 있다./뉴시스

10월부터 타오르기 시작한 촛불은 국민을 속인 무능·부패한 권력을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법 에 따라 처벌하기 위한 절차적 민주주의의 과정을 지나고 있다. 헌법 1조의 정신 ‘민주공화국과 주권재민’의 의미와 가치를 확인하면서 민주주의 국가의 모델이 어떤 것인지를 세계 만방에 과시하고 있다.

이 과정에 청년세대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중고교생들까지 광장의 외침에 함께 하면서 민주주의의 의미와 가치가 어떤 것인지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 실업난과 엉망진창이 된 교육 시스템에 좌절하면서도 미래를 만드는 주인공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과 친일파 정부에 의해 유린된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에 동참하며,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지키는 젊은 청년들의 열정과 기개도 그 증표이다. 고령화 사회에서 무거운 부담을 짊어져야 할 청년 세대들은 민주주의의 주역으로서 앞으로도 한국사회를 지켜나갈 역량과 경험을 축적하고 있는 것이며, 이는 우리의 미래를 밝게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미완성의 촛불혁명, 절차와 제도화를 통해 완성해야

그러나 촛불혁명은 미완성이다. 수구반동 친일 세력은 촛불의 열기가 사그라지기만을 기다리면서 역전의 계기를 노리고 있다. 안보 논리를 내걸고 거대 야권의 분열을 획책하는 한편 보수진영의 단결을 꾀하고 있고, 부패의 먹이사슬 구조가 된 경제와 자신들이 파탄낸 민생을 걱정하는 척하면서 적폐와 타락한 기득권 시스템의 청산을 방해하고 있다.

촛불혁명은 국기문란 세력을 단죄하고, 수십년간 쌓여온 부패한 기득권 체제와 구조를 개혁함으로써 기틀을 닦을 수 있을 것이다. 촛불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기득권 체제를 청산하고, 민주주의와 정의의 가치를 제도화하는 민주주의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이념과 지역주의에 의해 절단이 난 대한민국의 현실을 혁파하고, 시민 개개인의 의사가 적극 반영될 수 있는 선거·정치제도를 만들어내야 한다. 특히 불평등과 양극화의 시대를 맞아 빈부 격차의 해소와 함께 민생을 살리는 경제민주화와 복지제도 정비라는 중차대한 시대적 과제도 이뤄내야 할 것이다. 시민혁명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촛불의 정신과 가치가 더욱더 고양돼야 한다. 우리 사회는 국민들의 참여를 통한 직접민주주의의 의미를 실제 우리 정치제도 속에 실천하려는 제도화의 길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되살려낸 희망, ‘정유년 새해’ 두레박에서 길어올리자

정호승 시인은 ‘희망을 만드는 사람’에서 이어 “눈 맞으며 기다리던 기다림 만나/눈 맞으며 그립던 그리움 만나/얼씨구나 부둥켜안고 웃어보아라/절씨구나 뺨 부비며 울어보아라//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봄눈 내리는 보리밭길 걷는 자들은/누구든지 달려와서 가슴 가득히/꿈을 받아라”라고 희망의 가치를 설파한다.

▲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의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시민들이 폭죽을 터뜨리고 있다./뉴시스

그는 ‘희망은 아름답다’라는 시에서도 “창은 별이 빛날 때만 창이다/희망은 희망을 가질 때만 희망이다/창은 길이 보이고 바람이 불 때만 아름답다/희망은 결코 희망을 잃지 않을 때만 아름답다”고 희망의 길을 갈 것을 주문한다.

희망은 2017년 정유년을 살아가는 핵심 가치가 될 것이다. 철학자 조지 버나드 쇼는 “희망을 품지 않는 자는 절망도 할 수 없다”고 말했고, 나폴레옹은 “내 비장의 무기는 아직 손 안에 있다. 그것은 희망이다”라고 희망의 의미를 지적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희망은 잠자고 있지 않는 인간의 꿈이다. 인간의 꿈이 있는 한 이 세상은 도전해 볼만하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꿈을 잃지 말자. 꿈을 꾸자. 꿈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에게 선물로 주어진다”고 말했다.

대통령과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및 국기문란으로 인한 절망으로부터 희망의 두레박을 길어올리기 위해 온 국민이 손을 잡고 촛불을 켜고, 단합하고 연대할 때다. 시인 릴케는 “희망은 일상적인 시간이 영원과 속삭이는 대화이다. 희망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내 곁에 있다”고 노래했다. 2017년 정유년의 희망은 바로 우리 곁에,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곁에, 우리 삶에 그대로 녹아 있다.

※ 김홍국 편집위원은 문화일보 사회부·경제부 기자, 교통방송(TBS) 보도국장을 지냈으며, 경기대 겸임교수(정치학)로 YTN 등 보도 및 종편 TV에서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전문 패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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