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범의 경제산책

[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 정부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로 기존 전망치보다 0.4% 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전망치를 2%대로 한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이어지던 1999년 이후 17년 만에 처음이다.

▲ 최성범 주필

통상 정부 전망치는 정책 의지와 시장에 전달하는 메시지를 담아 높게 잡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2%대 중반도 어렵다는 분석이다. 전망대로라면 한국경제는 2015년 2.6%, 올해 2.6%에 이어 3년 연속 2% 대 ‘저성장의 고착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내년도에도 경제성장률이 2%중반 대에 머물게 된다는 전망은 사실 암울하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경제활성화를 국정 제1과제로 삼고 막대한 예산과 국가적 에너지를 쏟아 부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금리와 재정은 물론 부동산 대책을 포함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경제활성화를 시도했지만 총알만을 모두 소진한 채 그 결과는 보잘 것 없다.

경제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다. 내수는 꽁꽁 얼어있는 가운데 탄핵정국이라는 냉기류를 다시 만났다. 수출이 부진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내수와 수출이 모두 부진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기업들의 체력은 급속도로 고갈되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의 세 주체 가운데 가계와 기업이 모두 기진맥진한 상황이다. 정부만이 그나마 재정적 여력이 남아 있는 형편이지만 탄핵정국의 와중에서 리더십이 실종된 상태다. 한국경제가 망망대해 속에서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복합 경제위기)’ 속에 들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퍼펙트 스톰 속에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경제정책의 수단은 거의 없다는 게 더욱 절망적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있는 걸까?

우선 대표적인 경기활성화 수단인 금리인하는 불가능하다. 2011년 6월 연 3.25%에 달했던 기준 금리는 이후 지속적으로 떨어져 현재 1.25%수준이어서 인하여력이 없다. 추가 인하는커녕 미국이 금리를 인상했기 때문에 오히려 인상해야 할 형편이다.

하지만 1300조원이나 되는 가계부채를 감안하면 어쩔 방법이 없다. 한마디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처지다. 금리인하가 경기 진작에는 실패하고 전셋값 폭등, 상가 가격 상승 등의 부작용만을 초래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너무 서둘렀다는 아쉬움마저 남는다.

그나마 경기를 지탱했던 부동산 대책도 이제 약발이 떨어진 데다 가계부채 급증을 초래하는 탓에 더 이상 기댈 수가 없다.

결국 남은 것은 재정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가 제시하는 정책 방향을 보면 그다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 2017년 정유년(丁酉年)을 하루 앞둔 31일 새벽 인천 중구 거잠포 선착장에서 희망찬 붉은 해가 힘차게 떠오르고 있다./뉴시스

일단 정부는 퍼펙트 스톰 앞에 놓인 우리 경제를 살리기 위해 21조원 이상의 재정 보강을 편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내년 재정·금융을 총동원, 가용재원 21조3000억 원을 투입하고, 1분기 재정 집행률을 사상 최대치인 31%(86조5000억 원)까지 높이는 등 경기보강 대책을 시행한다.

구체적으로는 올해 예상보다 더 걷힌 세수 가운데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정산분 3조 원을 내년 4월 결산 즉시 지방자치단체에 지급해 연내 집행토록 할 방침이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연초부터 재정과 공공부문이 가용재원을 총동원해 경기를 보완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말해 재정을 조기집행하겠다는 것이다.

과연 이 정도로 될까? 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현 정부 출범이후 계속해서 해왔던 방식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위기감이 없다. 막연히 재정을 푸는 방식으로는 경기활성화의 한계가 있다. 전후방 연관 효과가 명확치 않은 사업은 결국 나눠 먹기 식의 1회 소비성 지출이나 그다지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인프라 투자 등 대형 국책 사업을 초기부터 발굴해서 집중 투자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렇다고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 하에서 대형 국책 과제 발굴을 기대할 수도 없다는 게 답답하기만 하다.

따라서 총수요 진작을 위해선 재정 조기 집행이나 추경편성 등의 막연한 방식으론 한계가 있다. 완전히 가라앉은 내수를 진작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여기엔 획기적인 발상전환이 필요하다.

필자는 부가가치세와 개별소비세(특소세)의 한시적 폐지를 제안한다. 부가세는 그 자체만으로 소비자 가격이 최소한 10% 인하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 내수 진작에 특효약이 될 수 있다.

물론 부가세의 세수비중 등을 감안하면 장기적으론 불가능하겠지만 2~3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시행하면 내수에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지 않을까? 아마도 지난해의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나 올해의 코리아 세일 페스타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내수 폭발을 기대할 수도 있다.

▲ '2016 남대문 시장 FESTA' 행사가 열린 지난 10월 20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 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제품을 둘러보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촛불 혁명에서 생겨난 국민들의 자신감이 가세할 경우 더욱 그러하다. 세수부족에 대한 우려는 접어두자. 추경 편성을 고민하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추경 규모를 줄이더라도 부가세 한시 폐지가 경기활성화에는 훨씬 더 효과적이다.

내수와 수출 동시부진에다 구조조정의 부담마저 안고 있는 기업들에게 크게 기대할 수는 없는 형편이지만 기업들의 설비투자를 촉진할 수 있는 노력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현재로선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규제를 해결하는 정도 수준이지만 기업들에게만 막연히 기대해선 곤란하다. 지난해 폐지된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세액공제 10%)와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 부활을 포함해 획기적인 방안을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세수부족을 걱정하는 발상으론 경제활성화를 기대할 수 없다. 세수결손의 우려도 사라진 지 오래다.

게다가 정부가 주도하는 대형 국책 과제도 건수만 요란하지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 선택과 집중을 하지 못한 채 건수와 숫자에만 집착하는 모습이다. 한마디로 산업정책의 부재다. 정부가 발 벗고 나서지 않은 채 교통 정리만 하는 소극적 역할에 머물러선 그다지 기대할 것도 없을 거라는 건 자명한 일이다. 어느 순간 정부의 역할이 보이지 않고 심판만 하려고 해선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아직 한국은 정부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빠져 있어도 될 만큼 민간 부문이 성숙하지 못했다. 3~4세 체제에 접어든 재벌들의 행태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근본적으로는 새로운 리더십이 등장해 새로운 노사정 합의를 이끌어내길 기대해 본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은 그 진의를 의심 받았기 때문에 성공을 거둘 수 없었지만 새로운 리더십이라면 그 결과가 다를 수 있다.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무너지는 한국경제를 살린다는 진정성을 갖고 노사정이 한 자리에 앉아 한국형 노사정 합의를 이뤄낸다면 한국의 제조업도 더 이상의 추락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모든 문제에 발상전환이 없으면 해결 자체를 기대할 수 없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경제활성화, 저출산, 일자리 창출 등 한국경제의 근본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긴 어렵다.

그러나 기존 제도의 틀을 깨고 발상전환을 하면 얼마든지 빠져나갈 구멍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감질 나는 정책으론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다.

새해는 정유(丁酉)년이다. 유(酉)는 술잔을 나타낸다. 새 술은 새 술잔에 담아야 한다.

※ 최성범 주필은 서울경제 금융부장과 법률방송 부사장, 신한금융지주 홍보팀장,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를 지내는 등 언론계 및 학계, 산업 현장에서 실무 능력과 이론을 쌓은 경제전문가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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