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우의 세상이야기

[이코노뉴스=남경우 대기자]

▲ 남경우 대기자

필자가 반도의 격랑 속으로 휘말려가기 시작한 것은 1974년 고교 1학년 여름이었다. 여름방학을 보내던 한여름 어느 날, 라디오에서는 당시 대통령 박정희의 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 흘러나왔다. 수 많은 국민들의 통곡소리가 연일 흘러나왔지만 나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이상하리만치 무덤덤했다. 아마도 친구들과 간혹 나누었던 시국에 대한 비판적인 대화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듯 하다.

그 후 수년이 지나 대학생이 되었고 어느새 운동권이 되었다. 대학 2학년이었던 1979년 10월 27일 신촌의 옥호 미상의 여관(경찰에서 조사서를 쓸 때 흔히 쓰는 표현이다)에서 대학동기와 새벽을 맞았다. 친구는 목이 타는지 청량음료를 사러 나갔다가 호외를 들고 왔다. 놀랄만한 소식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였다.

1980년 5월 서울역에서 대학생들의 대대적 시위가 있었다. 같은 해 5월 광주항쟁이 일어나 수많은 시민이 죽었다. 세월이 흘러 1987년이 되자 6월 직선제 쟁취 투쟁이 일었고, 같은 해 7월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났다. 그 후 직접선거를 통한 대통령이 연이어 등장했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가 그들이었다. 2013년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다음 해인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이 일어 꽃다운 젊은 영혼들이 수장되었다. 되돌이켜보면 필자는 박정희 체제하에서 태어나 여전히 그의 악령이 배회하는 파렴치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한때 김영삼에게 김대중에게 노무현에게 기대를 걸기도 했다. 그들이 비정상국가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도 하였지만 이제 한국은 ‘헬조선’이 되었다. 유신의 설계자인 김기춘이 버젓이 음지에서 권력을 휘둘렀다. 이들의 아바타인 황교안이 여전히 나라의 주인으로 행세하고 있다.

2016년 현재 우리는 박근혜-최순실-김기춘의 국정농단 사태를 목도하고 있다. 동시에 수백만의 촛불 속에서 또 다시 시대의 의미를 묻게 되었다.

나는 감히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수백만 촛불의 의미를 이승만과 박정희가 구축했던 체제를 해체하는 투쟁의 시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더 나아가 일제하 식민지 체제를 청산하고 19세기 후반 조선을 다시 세우기 위한 조선 민중의 거대한 투쟁의 복원이길 기대한다. 또 150년 한반도사를 극복하고 다시 쓰기 시작할 출발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갈 길이 멀다.

19세기 후반기 조선반도에는 나라를 새롭게 세우기 위한 세 번의 시도가 있었다. 첫째는 안동김씨 권력을 타파하고 등장한 대원군의 개혁, 둘째는 실패한 혁명인 김옥균의 1884년 갑신정변, 셋째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었다. 세 번의 시도가 실패하자 조선반도는 일제의 식민지 체제로 흡수되었다.

1945년 일제가 끝났지만 조선반도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자본주의세계체제와 사회주의세력간의 격전장으로 분단체제가 수립되었다. 그 후 반도의 남쪽에 위치한 한국은 이승만-박정희로 이어지는 독재 독선 독식 수탈 분단 분열 배제 사익 외세의존이 일상화되어 있는 기형화된 비정상국가가 되었다. 모든 공적 기구는 빈번하게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수의 사익 챙기기 도구로 작동되었다. 김기춘과 우병우 같은 법조인들은 국가권력을 비정상화하고 왜곡시키는 실무자들이었다.

▲ 촛불은 이제 독재, 독선, 독점으로부터 공유, 공정, 공감, 공동, 공화로 진화시키는 용광로가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시민들이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촛불과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는 모습./뉴시스 자료사진

야당도 국민의 여망을 실현하기에는 턱없이 취약했다. 야당 국회의원 대다수는 현 체제에 안주했고 그저 자기 자리를 지키고 국민과 동떨어져 움직였고 대다수는 그 과실만을 즐겨왔다.

이제 촛불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 최순실 국정 농단사건과 세월호 사태는 1%를 위한 비정상국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건이었다. 연일 터지는 각종 소식들은 대통령 국회 정부 법원 검찰 언론 재벌 학교 병원이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를 여지 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제 한국인 모두가 스스로 주인이 되어 참여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얻어지는 것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수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기득권 세력은 모든 재원 제도 권한을 언제나 소수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촛불은 이제 독재, 독선, 독식, 독점으로부터 공유, 공정, 공감, 공동, 공화로 진화시키는 용광로가 되었다. 민본, 민권, 민생이 민주로 통합될 것이다. SNS는 촛불과 촛불을 이어주는 전령이자 각성된 인간을 키우는 거대한 학교가 되었다.

※ 남경우 대기자는 내일신문 경제팀장과 상무, 뉴스1 전무를 지냈으며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연구 모임인 북촌학당에 참여, 우리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의 해법을 찾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저작권자 © 이코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