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한때 국제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이 회자됐다. 삼성의 휴대폰, 현대의 딜럭스카, LG의 백색가전 등이 전 세계를 석권했지만 이것이 한국제품인지 모르는 소비자들도 많았다. 삼성 현대 LG 등의 브랜드 가치가 ‘코리아’의 지명도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통과 등 최순실 게이트가 국제적인 스캔들로 비화하면서 한국브랜드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국제평가기관인 무디스의 경우 최근 한국의 신용도를 낮추겠다고 했다.

▲ 남영진 논설고문

안 그래도 최근 몇 년간 외국에 소개되는 한국 관련 뉴스는 'NORTH KOREA' 김씨왕조의 독재와 남한의 정치부패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아 ‘KOREA'는 세계 12위 경제대국인 남한의 국격마저 깎아먹었다.

더 큰 문제는 황교안 총리의 권한대행 체제로는 정상외교에서 새로운 이니시어티브를 가질 수 없다는 점이다. 연말에 예정됐던 한·중·일 정상회담은 물 건너갔고 내년 1월 28일 출범하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권과의 사전협상도 여의치 않다.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는 동안 난제가 산적해 있는 경제 분야에서 적잖은 위기를 겪겠지만, 그보다 더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외교다.

지난 몇 년간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제재로 한반도의 위기상황은 국제적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남한의 소위 ‘식물대통령’에게 주변 4강은 물론 어느 나라가 존중을 표해 주겠는가. 소추안 통과 후 박 대통령이 “피눈물 이라는 것이 어떤 건지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지만 국민들의 마음속엔 이미 피눈물이 흐르고 있다.

경제는 현상 유지도 힘겹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9일 탄핵안 가결 후 처음 시작한 12일 월요일의 증시가 차분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97년 말 외환보유액 부족으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들어간 우리나라는 이듬해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에서 금모으기까지 벌여 위기를 단시간에 극복한 경험도 있다.

그러나 올해 경제성장률은 고작 2.4%가 예상된다. 이런 경제난 속에 미국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와 중국의 맞대응 한파에 따라 ‘고래싸움에 새우’ 격이 될 게 뻔한 상황이지만 위기를 헤쳐 나갈 국민적 동력은 강하지 않은 것 같다.

외교 분야는 더 힘겹다. 한반도를 둘러싼 6자회담의 주역들은 하나같이 강성이다. 유엔과 미국의 강력제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사일을 쏘아대고 핵개발을 강행하는 김정은이 있다.

▲ 지난 9월 7일 ASEAN+3 정상회담 참석차 라오스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라오스 비엔티안 국립컨벤션센터에서 정상회담을 위해 자리로 향하고 있다. 비엔티안(라오스)=뉴시스 자료사진

집단자위권 행사를 선언한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새 진시황제를 꿈꾸는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주석, 현대판 차르의 위세를 과시하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새로이 ‘세계 대통령’에 오르는 ‘도박성’의 트럼프 등 어느 하나 간단치 않다. 이런 와중에 박 대통령이 ‘식물’상태가 됐으니 정글의 ‘야수’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형국이다.

외신들도 이런 상황을 전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을 때부터 제정러시아 말기의 요승 라스푸틴이라느니 ‘샤먼정치’라느니 한국정치가 희화하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탄핵직후인 9일 사설에서 박 대통령이 장기간의 ‘군부 독재자인 박정희의 딸’이라며 "박 대통령의 탄핵사태는 한국 정치시스템 결함의 징후"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인들이 부패가 경제성장의 필요악이라는 인식을 정치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CNN 방송은 "이 지역의 린치핀(핵심)이자 미국의 강력한 동맹국인 한국에서 진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북한 제재에 집중해온 박근혜 정부와 달리 북한을 외교적으로 좀 더 포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정권교체까지 내다봤다.

영국의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독재자 박정희의 딸인 그녀의 권위주의적 성향은 아버지의 나쁜 점만 물려받고 좋은 점은 물려받지 못해 국가를 ‘강압적으로’ 통치했다”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은둔자적' 성격의 박 대통령이 "헌재가 탄핵안을 심리하는 동안 직무가 정지돼 유년 시절을 보낸 청와대의 담벼락 뒤에서 운명을 기다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중국 외교부 루캉 대변인도 한국 국회의 탄핵 표결에 대해 "중국은 다른 나라의 내정을 간섭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면서도 "이웃으로서 한국 정국이 빨리 안정되고 중한관계가 좋게 발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코너에 몰려 움츠러든 우리와 달리 아베 총리의 행보는 거침없다. 트럼프 당선 직후 미국을 방문한 데 이어 오는 26~27일에는 하와이 진주만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일본의 진주만 공습(1941년 12월 7일) 피해자를 추도한다. 양국 정상은 이곳에서 정상회담도 가진다고 한다.

아베 총리는 한국과의 위안부 협상과 탄핵 정국에서 서둘러 체결한 한일정보협정도 ‘불가역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15일에는 푸틴 대통령을 초청, 정상회담에서 북방영토 문제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황교안 국무총리도 대통령 대행체제에 들어서면서 안보와 외교 부문을 먼저 다잡고 있다. 다행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임기가 연말 남아 있고 ‘장수

▲ 미국 대통령 당선인 도널드 트럼프가 지난달 9일 새벽 당선 확정 후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욕=AP/뉴시스 자료사진

장관’인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외교적 일관성은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계는 분명하다. 윤덕민 국립외교원장도 “한반도 주변국의 움직임과는 달리 우리는 당분간 정상외교에 나설 수 없어 외교의 시스템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 대변인인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국격회복을 위해 나섰다. 조 장관은 11일 탄핵 사태와 관련, 우리 정부가 국정 안정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는 내용의 서한을 발송했다. 국내 상주외신 24개국 111매체 280명과 그동안 해외문화홍보원 초청을 통해 국내에 방한한 바 있는 언론인 399명 등에게 한국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구하는 내용이다.

국가 안보와 함께 국익과 직결되는 외교에서는 여야가 따로 없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 선제공격은 바랄 수도 없고, 황교안 대행체제가 그나마 ‘외교 시스템’은 제대로 가동해 ‘선방’하기를 바랄뿐이다.

※ 남영진 상임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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