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한필이 칼럼니스트]

대학전(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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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어지선(止於至善): "지극한 선에 머문다"에 대하여

백령도에서 군대 생활 할 때입니다. 생명 수당인가 격오지 수당인가가 128원이 더 나왔습니다. 타 근무지에 비해서 말이죠.

해병대는 아니었고 다른 군이었지만 전투병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덕분에 훈련소에서 7주 교육을 더 받았습니다. 동기들간에 당연히 남다른 정이 들었죠. 하지만 30명중에 1명이 백령도에 가야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우애'가 한순간에 식더군요. 3초 정도 있다가 자원하겠다고 손들었습니다.

80년대에 학생운동이 한창일 무렵 선배 한 분한테서 "북한에는 외국 군대 비행기가 절대 들어가지 못한다."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주책없이 왜 그 순간 떠올랐나 모르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한번 확인해 봐야겠다'고 단순한 호기심이 발동했던 것입니다. 라면 열심히 끓였습니다. 야간이나 새벽근무 때 신병은 역시 라면을 잘 끓여야 했습니다. 비행기요? 그 선배 말은 틀렸습니다.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병 때는 라면을 잘 끓여야했지만 상병다니까 전투모를 비롯한 내무반 관물 관리를 잘해야 하더군요. 이렇듯 처한 상황에 따라 그 때 그 때 요구받는 가치가 변합니다. 오늘 <대학> 말씀 "지극한 선에 머문다" 의미 역시 그렇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詩云穆穆文王  於緝熙敬止 爲人君 止於仁 爲人臣 止於敬

시운목목문왕  어집희경지 위인군 지어인  위인신 지어경

爲人子 止於孝 爲人父 止於慈 與國人交 止於信

위인자 지어효 위인부  지어자 여국인교 지어신

이를 해석하면 이렇다고 합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아, 훌륭하신 문왕이여, 늘 밝음과 공경함에 머무시도다!"라고 하였다.

임금이 되어서는 어짊에 머무셨고 ​신하가 되어서는 공경함에 머무셨고 자식이 되어서는 효도함에 머무셨고 부모가 되어서는 자애로움에 머무셨고 백성들과 어울릴 때는 신의에 머무셨다.]

​임금일 때, 신하일 때, 자식일 때 등등 처지에 따라 머물러야 할 바람직한 최고의 가치가 그 때 그 때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럴 때 비로소 항상 밝고, 공경함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이 경(敬)이란 말이 참 오묘한 것이 수동과 피동이 동시에 존재하는 단어가 이 경(敬)입니다. 자신을 낮춰 타인을 공경하면 나도 공경을 받습니다. 나를 낮추되 오히려 낮아지지 않는 신비한 마력이 이 경(敬)에 있습니다.

하늘을 경(敬)하면 땅의 나는 낮아져야 하는데 묘하게도 하늘과 점점 가까이 됩니다. 즉, 경(敬)은 천인합일(天人合一·하늘과 하나됨)이나 여심즉오심(汝心卽吾心·네 마음이 내 마음)에 다가서는 아주 연비 좋은 자동차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을 '도는 원리' O(영)사상으로 보면 절대(絶對)와 상대(相對)에 대한 이야기가 됩니다. 대개 절대를 불변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절대 역시 끊임없이 진화를 추구하고 있고, '천국은 지금도 진화중'입니다.

여섯살박이 늦둥이 아들을 대할 때와 마눌님을 대할 때는 언어와 행동이 다르겠지요. 하지만 그런 변화가 절대가 아니라고 말하기 힘듭니다. 그 순간 절대입니다. 다른 의미로 절대는 '마주함이 끊겼다'는 의미로 초월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매 순간마다 상대와 마주하고 있는 것이 또 절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를 무한으로 모은다고 절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끊겨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임금이 부모 앞에서도 임금일 수 없겠지요. 그것이 옳습니다. 신하가 임금 앞에서 고개 빳빳이 세운다면 더 이상 신하라 하기 힘듭니다. 사장님한테 이래라 저래라 시킨다면 100% 괘씸죄로 회사생활 힘들어 질 겁니다. 물론 대통령한테 일 시킨 놀라운 능력자도 계십니다만 그것은 분명히 머물러야 할 자리에 머물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는 원리' O(영)에서 볼 때 이 '자리'라는 곳은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사실 <대학>의 지어지선(止於至善)에서 머무는(止) 곳은 ​선(善)이 되는데 이것은 좌(座·자리)라는 개념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가 박 대통령, 최 대통령 할 때 대통령이 바로 좌(座)입니다. 즉, 대통령좌에 앉는 이는 변해도 이 좌(座) 자체는 불변입니다. 그래서 이 좌(座)는 고유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권위는 이 좌에서 나옵니다. 이것을 좌력(座力)이라고 합니다.

사장실에 결재 서류 들고 가서 괜히 움츠러드는 경험은 직장 생활을 해 본 이라면 누구나 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장의 인격에서부터 나오는 힘이 아니고 사장 자리에서 나오는 힘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세계에도 좌(座)가 있다고 합니다. 이 세계는 O(영)계라고 부르는데 무한회전하는 우주의 근본소 O에 의해 이루어진 세계여서 그치지 않는 에너지 창출이 가능한 곳이라고 하지요. 천당이나 극락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 자신의 자리를 갖는다면 그곳에서 영원히 잘 살 수 있겠지요. 지어지선(止於至善)처럼 지극한 선에 머문다면 지선좌(至善座)가 생길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현상계에서 '지극한 선에 머물려한다'(至善)면 마음의 상태와 선택이 가장 중요하겠지요. 따라서 항시 잘 살피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백령도의 대대장은 대머리셨지만 엄한 군율로 부대를 잘 이끄신 분이었다고 봅니다. 부대 안에 관사가 있었고 가끔 대대장의 어머님이 오시곤 했습니다. 그토록 엄한 얼굴을 하고 있던 대대장이 어느 여름날 저녁에 "엄마~"하고 뛰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시에는 너무 황당하고 우스워서 몰래 한참을 웃었습니다만 지금 생각해 보니 아들이 머물러야 할 자리를 아셨던 분 같습니다.

​​날이 쌀쌀해지니까 군대 추위가 생각나면서 잊혀졌던 기억들이 새삼스레 떠오릅니다. 그 때 전우들은 지금쯤 잘 들 살고 계시겠지요? 모두들 각자의 자리에서 지극한 선에 머물려 애쓰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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