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범의 경제산책

[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 겸 대기자] 촛불이 모여 어둠을 걷어냈다. 작은 시냇물이 만나서 큰 강이 되고 바다에 이르듯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피우고 지켜낸 촛불이 모여 큰 빛이 되었다.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은 국민들의 열망을 담아 들불처럼 번지면서도 정제됨을 잃지 않았던 촛불이 마침내 대한민국을 밝게 비추는 거대한 빛이 됐음을 말해준다.

▲ 최성범 주필

그 빛은 스러져가던 민주주의를 살려냈을 뿐만 아니라 권위주의, 독선, 불신, 부패, 특혜와 편법, 분열, 무책임으로 점철된 어둠의 질곡으로부터 대한민국이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희망의 빛이 되었다. 광화문 촛불 집회를 이제 촛불혁명이라고 불러야 하는 이유다.

촛불 혁명의 의미는 무변광대(無邊廣大)하다. 촛불혁명으로 거듭 태어난 대한민국은 예전과는 다른 대한민국이 될 것이다.

우선 촛불의 힘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살아났을 뿐만 아니라 성숙함마저 갖추게 되었다.

시민들은 산책하듯 광장으로 나와 자유롭게 발언하고 평화롭게 노래하면서 농락당한 민주주의를 스스로 회복시켰다. 마치 산불로 재만 남은 생태계를 자연이 위대한 힘으로 스스로 복원해내듯이. 앞으로 어느 정치세력이 정권을 잡든, 누가 대통령이 되든 함부로 국민의 주권을 훼손할 수 없다고 국민들이 선언한 셈이다.

역사적으로 평가하자면 한국은 이제 한국형 시민혁명을 이뤄냈다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와는 달리 시민혁명을 거치지 않았던 탓에 한국의 민주주의는 그 뿌리가 약했지만, 온 국민이 무폭력, 평화, 질서, 청결로 이뤄진 촛불 혁명을 통해 명예혁명을 넘어서는 새로운 방식이자 한국판 시민혁명의 원형을 만들어냈다. 새로운 국가 브랜드가 아닐 수 없다.

시민들 스스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했다는 자신감은 앞으로 정치판을 근본적으로 바꿀 거대한 동력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촛불이 결코 위기가 아닌 기회가 될 수 있는 이유다.

특히 촛불혁명은 분열돼 가던 대한민국이 하나로 통합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념, 세대, 빈부, 지역으로 나뉘어 갈가리 찢어져 가고 있던 대한민국 사회는 촛불 혁명을 통해 서로 간의 차이가 생각했던 만큼 크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온 국민이 한 마음으로 나온 촛불 혁명의 현장에서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단 하나의 말만이 필요했다. 정치인들이 정권 교체기마다 외치던 국민대통합을 국민 스스로가 촛불혁명을 통해 이뤄낸 것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처음이다. 이는 분열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자생력이 될 것이다.

촛불 혁명으로 대한민국이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의 본질은 단순히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과 박근혜 대통령의 실정에 대한 단죄에 그치지 않는다. 권위주의적 통치, 정경유착, 반칙과 편법, 공직자의 무조건 충성, 정치권의 무책임, 작동하지 않는 대의정치 등 대한민국이 갖고 있는 고질적 모순에 대한 청산의 의미를 갖는다.

▲ 1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제7차 범국민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뉴시스

구체제를 끝내라는 국민의 명령이다. 따라서 촛불혁명으로 이뤄낸 박 대통령 탄핵소추는 대한민국의 발목을 잡고 있던 과거의 족쇄를 풀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국가적 노력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국가 대개조론이 나오고 있는 것도 비슷한 얘기다.

허나 촛불의 정신은 영원할지라도 촛불 혁명은 아직 미완의 혁명이다. 최장 180일 걸릴 수 있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이 과거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아직 완전히 털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촛불의 정신을 영원히 이어나가고 승화시킬 수 있는 노력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를 소홀히 해선 촛불 혁명이 자칫 미완의 혁명으로 남을 수도 있다.

우선 민주주의의 기반을 더욱 단단하게 다져야 한다. 여기엔 대통령의 잘못으로 인해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제도적 틀을 다시 고치는 일이 가장 먼저다. 한마디로 CEO 리스크를 줄여나가는 게 과제다.

대통령 한 사람이 나라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시스템 하에선 그 리스크를 줄이기 어려운 만큼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보다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필요하면 개헌을 포함해 어떤 형태든 무소불위의 대통령 권력을 가능케 하는 수단을 억제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또한 권력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만이 미덕인 것처럼 행동해온 공직자에게 경종을 울렸다. 변형된 형태의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관행이 생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치 않으며 제도적인 틀을 마련해야만 한다.

특히 대통령의 무소불위의 권력의 원천인 검찰과 국세청 등의 권력기관에 대한 견제와 책임 구현 장치를 마련해야만 한다. 그러면 정치검찰도 정경유착도 자연스레 사라지고 말 것이다. 또한 과도한 인사권에 대한 견제도 필요하다.

▲ 1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제7차 범국민 촛불집회에 서 한 아이가 아빠의 무등을 탄 채 행진을 하고 있다./뉴시스

촛불 혁명은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를 국민들이 직접 민주정치로 극복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정치권에게만 제 역할을 주문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인해 사실상의 직접민주정치를 구현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된 만큼 위기에 빠진 대의 민주주의를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아울러 경제적으로는 촛불 혁명이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차원을 넘어서 새로운 경제시스템을 새로 구축하는 논의의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 촛불 민심이 들불처럼 번진 것은 흙수저 논쟁과 청년 실업난 속에서도 응어리졌던 민심이 폭발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재벌 중심의 구체제로는 성장동력 창출과 일자리 창출도 소득 불균형 해소도 어렵다는 점은 이미 확인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재벌 체제 해체 등의 과격한 수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촛불 혁명이 비폭력, 평화적 시위가 더욱 큰 힘을 얻었듯이 구체제와의 완전한 결별이 아니어도 좋다. 정부가 공정 경쟁의 질서를 제대로 세우고 시장 질서 교란행위와 갑질을 막을 수 있는 새로운 경제 질서를 창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새 싹이 틀 수 있는 새로운 토양을 조성하면 새로운 경제 생태계는 생겨나기 마련이다.

이제 촛불 혁명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낡은 것과의 이별을 고하고 모든 것을 새 출발해야 하는 일은 국민 모두의 몫으로 남아 있다.

※ 최성범 주필은 서울경제 금융부장과 법률방송 부사장, 신한금융지주 홍보팀장,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를 지내는 등 언론계 및 학계, 산업 현장에서 실무 능력과 이론을 쌓은 경제전문가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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