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한필이 칼럼니스트]

대학전(傳) 3지어지선(止於至善): "지극한 선에 머문다"에 대하여

詩云緡蠻黃鳥 止于丘隅 子曰於止 知其所止 可以人而不如鳥乎

시운면만황조 지우구우 자왈어지 지기소지 가이인이불여조호

​이를 해석하면 이렇다고 합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예쁜 꾀꼬리, 수풀 우거진 언덕 모퉁이에 머물렀구나."

(이 노래를 듣고) 공자가 이르기를, "머무름에 있어 그 머무를 바를 아나니

가히 사람이면서 새보다 못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셨다.]

​​시경(詩經) 15권 소아(小雅) 도인사(都人士·서울양반)중에 면만(綿蠻·새 울음소리) 이라는 시에서 따온 구절로 다음과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아(雅)는 행사나 연회 때 사용하는 공식 의전곡인데 대(大)와 소(小)로 나뉩니다.

이중 소아(小雅)는 백성들 노래로부터 인용을 많이 해서 훨씬 덜 딱딱하다고 합니다. 원문 구절을 잠깐 보시겠습니다.

綿蠻黃鳥 止于丘隅(면만황조 지우구우)

꾀꼴 꾀꼴 꾀꼬리 언덕의 모퉁이에 앉아 우는데

豈敢憚行 畏不能趨(기감선행 외불능추)

먼 길 떠남을 무서워해서가 아니라 행여 따라가지 못할까 두렵기 때문이네

飮之食之 敎之誨之(음지식지 교지회지)

마시게 하고 먹게 하고 가르치고 깨우치게 해서

命彼後車 謂之載之(명피후거 위지재지)

뒤따를 저 뒷 수레에도 명해 준비갖춰 길 떠나게 할꺼나

은둔 지사를 풍자했다는 설(說)과 먼 길을 떠나는 사신(使臣)의 고초를 그린 노래라는 설(說)이 있습니다만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공자님이 이 노래를 듣고 전혀 엉뚱한 상상을 하셨다는데 있습니다.

요즘으로 치자면 예능을 다큐로 받아드리신 겁니다. 애달픈 트로트 대중가요 듣다가 불현듯 민주주의에 대한 간절함에 대해 논하는 형국이랄까요? 즉, 마땅히 인간이라면 머물러야 할 때와 장소를 알아야 정상인데 새만도 못한 인간들이 많다고 개탄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단순화시켜보면 진퇴의 문제입니다. 언제 나갈 것인지 언제 물러날 것인지를 알아야한다는 말씀이 됩니다. 이것을 좀 더 확장시켜보면 사람이라면 당연히 머물 곳은 ‘진리 자리’인데 동물만도 못한 삶을 살아서야 되겠느냐라고 꾸짖고 계신겁니다.

이를 ‘도는 원리’ O사상으로 보면 “사람이 행할 것은 사랑”이 됩니다. 이것을 <대학>의 구조로 보면 1장 1절이 명명덕(明明徳)이었습니다. 이것은 ‘가없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2장까지 반복 또 반복하며 왔고, 지금 3장에서는 ‘거기에 도달했으면 그 상태 그대로 거기 머물라’는 뜻이 됩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듯이 그 '진리 자리'를 보았다는 것과 거기에 항상적으로 머물 수 있다는 것은 힘의 응축 정도가 많은 차이가 난다고 말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무너지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사랑할 수 있는 마음자리를 회복하는 노력이랄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지어지선(止於至善), 즉 지극한 선함에 머문다는 의미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실천하는 삶이 일상 생활화된 것을 말합니다.

자신이 머물 곳이 아니라면 떠날 줄 아는 지혜가 절실한 요즘입니다. 그 떠남이 곧 도리에 맞게 머무는 자리 아닐런지요. 비가 옵니다. 그대를 사랑하기에 떠나노라는 유행가도 생각납니다.

오늘 우리들의 대한민국은 어디에 머물러 있을까요? 부디 지어지선(止於至善)에 있기를 빌어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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