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병일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세월은 참 빠르게 지나간다. 막상 하루하루 지내기는 일각여삼추(一刻如三秋)처럼 무료하기 그지없지만, 노년으로 갈수록 세월이 무상해진다.

왜 이럴까? 나이가 들면 누구나 닥치는 노년의 4고(老人四苦)와 깊은 연관이 있다.

수입감소에 따른 ‘빈고(貧苦)’, 육체적 늙음에서 오는 ‘병고(病苦)’, 할 일이 없어진 데에서 오는 ‘무위고(無爲苦)’ 그리고 이러한 것이 겹쳐서 나타나는 ‘고독고(孤獨苦)’가 그것이다.

▲ 서울 '서초구립 중앙노인종합복지관'에서 할머니들이 당구 게임을 즐기고 있다./뉴시스

우리의 평균 수명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1970년 60세에 불과했지만 요즘은 82세로 늘어났다. 이런 추세라면 머지않아 100세 장수 시대가 다가올 것이다. 그런데 직장의 정년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100세 장수 시대 문제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은퇴’ 관념은 원래 평균 수명 65세 시대의 산물이다. 과거 우리의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는 평균 수명도 낮았을 뿐 아니라 은퇴의 개념도 없이 살았다. 집 근처에서 농사짓고 글 읽다가 나이 들면 손자 재롱 보면서 공경을 받으며 생을 마감했다. 당연히 은퇴란 용어도 없었다.

은퇴라는 용어는 불과 60여 년 전 미국에서 생겨났다. 1950년대 미국인의 평균 수명은 65세인데 그 나이에도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절반이나 되었다. 이러다간 일만 하다가 세상을 떠날 수도 있겠구나 걱정되어 노동조합이 앞장서서 55세 내지 60세 정년을 도입했다.

‘은퇴’란 관념은 이처럼 길게 잡아도 10년 남짓의 여생을 예상하며 탄생한 것이다. 이제는 은퇴후에도 30~40년을 살아야 한다. 설령 경제적으로 풍요롭다 해도 그 긴 세월을 여행이나 하면서 살 수 있을까? 준비를 해야 한다. 절실한 과제이다.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앞의 4고 가운데 빈고와 병고는 준비하더라도 다소 완화시킬 수는 있을지언정 결국은 닥치는 일이다. 그러나 무위고는 전혀 다르다. 하기에 따라서는 젊은 시절보다 더욱 의미 있고 즐거운 유위락(有爲樂)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돈 걱정도 덜어지고 병치레도 멀어지게 되고 고독을 생각할 겨를도 없어진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유위락의 삶을 살 수 있느냐? 두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자기도 좋고 즐겁고 남도 좋다고 칭송하는 것이어야 한다.

최근 의미 있는 응답통계 결과도 있다.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 있는 이른바 신노년(60~75세)에게 앞으로 하고 싶어 하는 일에 대해 조사했더니 첫째는 자기 취향에 맞는 일을 꼽았다.

둘째는 사회에 도움되는 봉사, 셋째는 적더라도 수입이 있는 일을 꼽았다. 그리고 넷째는 공기 맑고 여유로운 전원생활, 다섯째는 평생 공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하고 싶은 일로 제시되었다.

몇 가지 사례를 찾아보자. 한국국학진흥원의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사업이다. 할머니들은 유치원에 가면 어린 꼬맹이들로부터 인기스타 못지않은 환영을 받는다.

그들이 들려주는 옛이야기를 아이들은 귀를 쫑긋하며 듣는다. 여기에서 할머니들은 황홀한 행복감을 느낀다. 꿈 많던 소녀시절과 어머니로서 자식 키우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사회적 성취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즐거워한다.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에서 활동하는 지도위원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도 좋은 예다. 이들은 모두 이곳에 오기 전까지 초중고교의 교장선생님이나 교육장을 끝으로 40년 가까이 교육현장을 지키던 분들이다.

현직 때와는 사뭇 다르게 어린 수련생에게는 수업을 지도하고 성인 수련생의 경우는 현장설명이나 수련진행을 담당한다. 이들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가 누구든 공손하게 대한다. 그래야만 수련생이 좋아하고 잘 따르니까 말이다. 바로 이것이 퇴계 선생께서 몸소 실천하셨던 낮춤과 섬김의 바로 그 삶을 차츰 닮아가는 길이 아니겠는가.

수련생들의 반응과 교육효과만 좋아지는 게 아니라 지도위원 자신들의 삶이 전보다 섬김의 코드로 변하고 있다. 이런 변화를 어느 누가 싫다하겠는가.

필자도 바른 사회와 수련생의 인성교육을 위해서 뿐 아니라 더 많은 행복한 할아버지를 만들기 위해서도 선비수련을 더욱 활성화시켜야 하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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