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 칼럼=이종수 기자] 국정 역사교과서가 모습을 드러냈지만 존폐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교육부는 28일 국정 역사교과서 3종(중학교 역사 1·2, 고등학교 한국사)의 현장검토본을 전자책(e-Book) 형태로 공개했다. 교육부는 내용오류 등에 대한 다양한 의견수렴을 거쳐 내년 1월말께 최종본을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밀실집필 논란과 대통령 탄핵정국 등 악재와 함께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아 내년 3월 신학기부터 보급한다는 원래의 계획은 물건너 간 것처럼 보인다.

▲ 28일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한국사국정화저지네트워크 주최로 열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중단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국정화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뉴시스

교육계와 역사학계의 강한 반대는 둘째치고, 국정교과서의 적용 방법과 보급 시기를 놓고 청와대와 교육부간 잡음 논란까지 불거진 상황이다.

국정 역사교과서는 현 정권 초기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로 추진해온 주요 국정과제이다.

그러나 국정농단 의혹을 불러온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가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이기에는 한계가 있다.

청와대는 국정화 철회나 국·검정체제 혼용 방안을 검토할 가능성에 대해 "전혀 검토된 바 없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이를 무게감 있게 받아들이는 국민은 거의 없다.

반면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 회장인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이 이날 협의회장 명의의 의견문을 통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즉각 중단하고 폐기하라"고 촉구하는 등 반대 목소리는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이 회장은 "비상한 국가 위기 사태의 본질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중학교 역사, 고등학교 한국사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 공개를 강행한 정부의 행태를 개탄한다"면서 "이는 부도덕한 정부의 안이한 인식과 무능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이미 국민의 마음 속에서 모든 권력과 권위가 거부된 대통령이 추진한 핵심 정책"이라며 "대통령이 중대 범죄자로 입건된 초유의 사태를 지켜보면서도, 끝내 이를 중단하지 못하는 청와대와 정부의 후안무치와 우유부단은 그 자체로 국민의 실망과 분노를 부추길 뿐"이라고 했다.

이처럼 국정교과서의 앞날은 순탄하지 않다.

교육부는 다음달 23일까지 공개 국정교과서에 대한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교육 현장에 어떻게 적용할지 청와대와 계속 협의해 나간다고 했다. 그러나 ‘계속 협의’ 한다는 자체가 한 걸음 후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국정교과서 지지율은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만큼이나 떨어져 있다. 지금이라도 ‘질서 있는 철회’ 수순을 밟는 게 옳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올바른 역사 교육’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처음부터 시대 흐름을 역행하는 무리수라는 지적이 제기됐었다.

역사적 사실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른 해석이 가능한데 이를 한 방향으로 몰아가겠다는 것은 역사를 독점하겠다는 발상이나 다름없다. 학생들은 다양한 역사해석을 통해 사고의 탄력성과 창의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

교육 현장의 혼란을 무시한 채 강행한다 해도 국정교과서는 박근혜 대통령 정권이 끝나면 함께 퇴출될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정부가 언제 막을 내릴지 모를 상황에서 국정교과서를 선택할 학교가 얼마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이날 "현재까지는 계획대로 추진한다는 입장"이라면서도 "현장에서 노력에서 만든 교과서가 현장에서 잘 적용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애매한 말로 시행 시기 등에 관한 질문을 피해갔다.

명분도 실리도 없는 국정교과서는 철회돼야 한다. 보수와 진보의 해묵은 논란도 이 시점에선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인다.

교육부는 국정교과서 필요성과 관련, 청소년들에게 대한민국의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국정교과서 도입 강행보다 최순실 게이트로 무너진 이 나라의 근간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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