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 칼럼=이혜경 기자] 박근혜 대통령 '비선 실세'인 최순실씨(60·구속기소) 국정 농단(籠斷)과 관련,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책임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 전 실장은 "최씨와 관련해 보고받은 일이 없고 최씨를 알지 못한다"며 관계를 전면 부인하고 있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국민들은 거의 없다.

▲ 23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을 항의방문한 주승용 국민의당 의원과 비대위원들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정무수석의 구속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시스

2013년 8월부터 2015년 2월까지 비서실장을 지낸 그는 문고리 3인방은 물론 최씨의 국기 문란 행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보는 게 국민의 눈높이다.

실제 김 전 실장은 '왕실장', '기춘대원군'으로 불리며 박근혜 정권의 최고 실세로 꼽혔다. 최씨에 대해 "만난 적도, 통화한 적도 없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박근혜 정권에서 그의 위치와 역할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힘들다.

박 대통령 곁에서 당정청을 모두 장악한 실세였던 만큼 최순실씨가 청와대를 오가며 국정을 주무르는 과정에도 개입했을 것이라는 추정은 오히려 합리적이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대통령 연설문 연설 유출과 관련, “정호성(비서관)이 했지. 만일 나에게 그런 보고 하면 내가 허락했겠나. 어찌 보면 내가 무능해 바보 취급 받았는지 몰라도 나는 몰랐다”고 답하는 등 모르쇠로 일관하고 한다.

그러나 정치권 등에선 김 전 실장과 최순실씨가 오래 알고 지낸 관계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정황이나 진술이 나오고 있다.

구속된 김 종 전 문체부 2차관은 "김기춘 전 실장을 통해 최순실씨를 알게 됐다"고 폭로했다. 이 진술이 사실이라면 김 전 차관과 최씨의 연결고리가 바로 김 전 실장이라는 이야기다. 김 전 차관이 어떻게 '체육계 대통령'으로 불리며 문화체육계 전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풀린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도 22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김 전 비서실장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피할 수 없는 부두목으로 밝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야권은 김 전 실장이 최순실씨 사건의 대응 과정에도 관여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김 전 실장은 여야가 합의한 최씨 사건 국정조사의 증인으로 채택된 상태다.

그에게 의혹이 쏠리는 것은 청와대 내부에서의 위상이나 영향력과 무관치 않다.

김 전 실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인연이 이어진 인물이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 아래서 중앙정보부 대공수사부장, 정보국장,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고 유신헌법 제정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최태민-최순실 일가와 박 대통령의 관계가 수십년 동안 지속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 전 실장도 최씨 일가의 존재를 오래전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1980년대 초 김 전 실장이 최태민씨 측을 만나거나 돌봐줬다는 보도도 수차례 나온 상황이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도 친박 원로 모임인 '7인회' 멤버로 박 대통령 당선을 도왔다. 그런 그가 박 대통령의 '40년 지기'라는 최씨를 모른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그러나 지난 20일 기소된 최순실씨 등의 공소장에는 김 전 실장과 관련해선 거의 언급이 없다. 수사 자체가 이뤄지지 못한 탓이다.

결국 김 전 실장 관련 의혹 캐기 작업은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이 크다. 최순실 특검법이 22일 국무회의를 통과했고 23일 공포돼 시행에 들어갔기 때문에 예정된 절차대로라면 검찰 수사는 2주가량 지나면 일단락된다. 검찰이 김 전 실장 의혹의 실체를 규명하는 데는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

실제 검찰은 김 전 실장의 뚜렷한 개입 정황을 아직 찾지 못했고, 그와 최씨의 연결고리를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한다.

특검은 출범 즉시 검찰 수사가 미진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직무유기 의혹과 함께 김 전 실장의 역할을 파헤쳐야 한다. 최씨의 국정농단을 알고도 덮었다는 직무유기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우 전 수석 못지않게 국민들은 김 전 실장의 ‘모르쇠’ 태도에 분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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