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전 헌 국제퇴계학회 회장] 종교는 사람이 지구 위에 살아온 발자취이다. 보각국사 일연스님(1206-1289)도 우리 땅 위에 사람의 첫 발자취는 단군신화에서 비롯한다고 말한다. 히브리 성서도 사람은 하나님 따라 이 땅 위에 발을 딛었다고 말한다.

종교라고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사람은 믿으니까 살고 죽는다. 믿지 않고서는 살기도 지겹고 죽기도 끔찍한 것이다.

▲ 경남 양산 통도사의 '자장암'/뉴시스 자료사진

사람은 믿지 않고서는 공기를 들이마시며 숨쉬기도 꺼려지고 문 밖을 나서기도 두려우며 살면서도 죽고 싶고 죽으면서도 살고 싶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기 마련이다. 사람은 믿으니까 떳떳이 살고 버젓이 죽는 것이다.

수십만 년 지구상의 인간은 믿으니까 그 기나긴 세월의 온갖 변화도 거뜬히 치러내며 사람의 길이 닦여진 것이다. 믿지 않는다 하면 하루도 견디기 힘든 터라 장구한 인류의 발자취는 믿음이 닦아오는 종교라는 것이다.

유학은 종교가 아니라고 흔히 말하지만, 그렇다면 종교가 따로 없다.

우주 안에 사람이 살아온 발자취가 통틀어 믿음이며 종교이지, 따로 있거니 하면 믿음도 종교도 별스럽고 외지게 오므라들고 마는 것이다. 수천 년 동안 인류의 발자취를 보살펴 온‘ 종교의 흐름’은 믿음이 지키고 가꾸는 것이다.

비단 종교가 아니라 해도 믿음이 흔들리거나 오락가락한다면, 그것이 학문이든 과학이든 정치이든 예술이든 경제이든 군사이든 상업이든 언론이든 심지어 스포츠나 오락이든 무엇이라 불러도 제구실은커녕 사람이 좀먹고 피폐케하는 것이다.

종교의 이야기는 뭐라고 해도 믿음의 이야기일 따름이다.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종교는 고맙고 기쁜 인생의 이야기이다.

믿음은 몸으로 태어난다. 몸은 태어나고 죽는다고,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몸은 오로지 있을 따름인 자연이다. 다함없는 천태만상으로 태어나고 죽으며, 그지없이 새롭게 이어지고 펼쳐나가는 것이 몸이라는 자연이다.

사람은 몸이기에 사람이지, 아니라면 돌이나 나무나 짐승이나 다를 게 없어 따로 사람이라 부를 일도 없다. 단군신화는 호랑이나 곰이 말을 해도 사람 몸으로 태어나서야 비로소 사람이라고 밝혀 준다.

사람의 몸이 사람의 말을 하지, 사람의 말을 한다 하더라도 사람의 몸이 아니라면 사람이 아닌 것이다. 몸이 말하면 마음이고, 말이 없어도 몸이 알면 마음도 아는 것이지, 마음이 몸 따로 알 일이 없다. 학문은 마음 다하여(盡心·진심) 몸 돌보는 것(爲己之學·위기지학)이고 몸 닦는 것(修身·수신)이라고 밝혀 준다.

몸이 있는 것이고 그것을 알면 마음이지, 마음이 따로 있나 싶으면 믿음도 따로 있나 싶어 몸이 떳떳하고 버젓한데도 믿음이 없다고 호들갑을 떨기도 하고 생떼를 쓴다.

공자도 세상에서 올바로 사는 것은 죽기를 무릅쓰는 믿음이라고 말한다. 몸은 닦으면 믿음이다. 몸은 믿음으로 기르고 돌보며 마냥 새롭게 배우는 것이다. 믿음으로 몸은 시름에 빠진 마음도 건진다.

몸은 언제나 새롭고 구체적이다. 몸은 두루뭉술하게 말해 버리면 몸이 아니다. 몸마다 같은 것이 없고 몸마다 가만히 있는 것이 없는 데다 몸마다 놓인 처지가 천만 가지라서, 두루뭉술하게 말해 버리면 몸은 말뿐이거나 마음뿐이지 말하나마나가 된다.

그러기에 몸은 낱낱이 마냥 새롭게 느끼며 배우는 것이다. 몸은 어디서나 언제나 새롭게 살피고 돌보지 않으면 몸이 아니다.

발자취는 몸이 내는 것이라서 저마다 다르기 마련이다. 발자취라고 말한 종교가 별의별 천태만상인 까닭이 바로 몸이 별의별 천태만상으로 마냥 새로워지기 때문이다. 모든 학문이나 인류의 지성활동이 신진대사가 일어나듯 데이터가 끊임없이 새롭게 점검되지 못하면 한계에 부닥치고 침체하고마는 만고불변의 진리는 몸의 진실일 따름이다.

종교라면서 마음, 마음하다가 몸은 싸잡아 말하는 버릇이 굳어지면 어쩔 수 없이 종교사고가 나게 마련이고 병폐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살아 숨쉬는 종교라면 몸에서 신진대사가 일어나듯 마냥 새롭게 배우며 몸처럼 마냥 새롭게 사는 것이다.

두루뭉술하게 뭉뚱그려 말하는 능력은 별의별 갖가지 것들을 마치 보자기에 담아 다니듯 인간의 뛰어난 장점인데, 종교는 묶어둔 보자기일 수 없다.

사람의 정은 모든 종교와 학문 활동의 원동력이다. 종교의 흐름은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몸의

진실에 밝고 사람의 정에 어긋남이 없어 유구한 세월 생동하며 그 덕분에 인류가 떳떳이 살고 버젓하게 죽는 것이다.

정치, 경제, 문화, 예술, 군사, 과학, 종교, 교육, 어느 하나 몸의 진실이 가리고 사람의 정이 짓밟히면 제구실을 못한다. 사람더러 나쁘다고 말하면 듣고 좋아할 사람이 없다. 스스로 좋다고 알기 때문이다.

싫다는 말은 좋은 사람더러 나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지 사람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싫다는 말이나 나쁘다는 말이나 말귀를 알아들으면, 사람은 좋으니까 나쁠 수 없다는 말이지 사람이 나빠도 좋다는 말이 아니다. 모든 것이 끝내 좋다고 확인해야 하는 사람의 정이기에 쉬지 않고 끊임없이 배우며 사는 것이다.

사람의 정이 지켜주는 종교는 세상의 온갖 일들이 아무리 끔찍하고 두렵고 괴로워도 마냥 새롭게 배우며 뜨겁게 사랑한다. 종교라면서 원망과 저주에 능사라면 말이 아니다.

부처님의 고행이 극락이며, 소크라테스의 독배가 지혜이며, 예수의 십자가가 구원이라는 말은 하나같이 몸의 진실과 사람의 정으로 낱낱이 배우며 뜨겁게 사랑하는 영원한 몸의 기쁨과 고마움을 말한다.

종교는 말을 바로 하는 것이다. 몸의 진실과 사람의 정이 짓밟히면 말이 빗나간다. 종교라면서 기쁨과 고마움이 넘치지 못하면, 말을 바로 해야 한다.

기쁨과 고마움이 넘치는 종교는 영원무한하다.

 

저작권자 © 이코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