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 칼럼=이종수 기자] 삼성이 또다시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찬성한 국민연금공단의 의사결정 과정을 둘러싼 의혹이 확대되고 있다. 검찰도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23일 전북 전주 국민연금공단 본부와 서울 논현동 기금운용본부 등 3곳을 압수수색했다고 밝혔다. 삼성의 심장부인 서울 서초동 그룹 미래전략실도 압수수색했다.

▲ 검찰 특별수사본부 관계자들이 23일 전북혁신도시 내 국민연금공단에서 압수한 물품을 차로 옮기고 있다./전주=뉴시스

검찰의 압수수색은 삼성그룹이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씨와 딸 정유라씨 측에 거액의 금품을 제공한 것이 뇌물에 해당하는지를 가리기 위한 수사의 일환이다.

검찰은 국민연금이 청와대의 압력으로 삼성의 경영권 승계를 돕는데 동원됐는지, 또 삼성이 이에 대한 대가로 최순실씨 측에 돈을 건넸는지 등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검찰 수사에서 청와대가 국민연금의 의사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박 대통령과 삼성에 제3자 뇌물수수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삼성그룹 초미의 현안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중대한 ‘통과의례’였다.

그런 만큼 만에 하나 삼성이 최순실씨를 통해 청와대를 움직여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을 끌어낸 것이라면 이를 전후해 최씨 측에게 제공한 금품은 뇌물이라는 논리가 성립할 수 있다.

당시는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주도한 반대세력이 만만찮아 합병은 성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삼성물산 최대주주(지분 11.21%)였던 국민연금의 선택에 따라 성패가 갈릴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정황이 계속 불거지고 있다.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 의결을 근거로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 안에 찬성 의결권을 행사했다.

소액주주와 외국인 투자자들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 합병비율(1대 0.35)이 삼성물산에 현저하게 불리하게 책정됐다고 합병 철회를 요구했지만, 국민연금은 이를 묵살했다.

최근 공개된 국민연금 투자위원회 회의록에도 국민연금이 제일모직과 구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을 1대 0.46으로 산출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적정 합병 비율을 1대 0.46으로 추산했으나, 이를 무시하고 1대 0.35 합병 비율에 찬성했다는 것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은 이재용 부회장 등 총수 일가에게만 유리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등 안팎의 반대에도 불구, 국민연금은 의결권전문위원회 등 통상 거치는 절차까지 생략한 채 합병안 찬성을 밀어붙였다.

국민연금은 이와 관련, 23일 보도설명 자료를 통해 "회사(삼성)가 제시한 합병비율 1대 0.35은 삼성물산 주주에게 다소 불리한 측면이 있었으나,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적법한 비율”이라고 밝혔다. 이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유사한 규모로 보유하고 있는 사정과 관련 주식이 국내주식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중 등을 감안할 때, 합병시 기대되는 시너지 효과 등이 합병비율의 불리함을 상쇄할 것으로 판단해 최종 '찬성' 결정에 이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사건의 진상은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삼성과 국민의 노후를 책임진 연금운용기관인 국민연금이 의혹에 휩싸인 것 자체가 불미스런 일이다.

더욱이 삼성은 최씨 모녀 회사인 코레스포츠(현 비덱스포츠)에 280만 유로(약 35억원)를 지원했고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실소유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불법자금을 지원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국민연금이 단순한 투자자로서가 아니라 공적 연금으로서 국익을 감안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 결정을 내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결정이 최순실씨가 청와대를 동원해 강요한 결과라면 이는 뇌물죄에 해당하며, 어떠한 명분도 설득력을 잃게 된다.

삼성은 이미 갤럭시노트 7 단종(斷種) 사태로 적지 않은 시련을 겪고 있다. 국민 상당수는 국내 최고 기업인 삼성의 위기에 불안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사실을 명백히 규명해야 한다. 잘못이 있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나라가 굳건히 서야 기업도 건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팔을 비틀어 바칠 수밖에 없었다”는 피해자 코스프레로 넘어가기에는 국민의 분노와 좌절이 너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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