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홍국 편집위원/경기대 겸임교수 국제정치학 박사] 일본이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수출 심사 우대국)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정령(시행령) 개정안을 2일 오전 각의(국무회의)에서 처리했다. 드디어 일본이 국제사회의 우려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하는 무리수를 강행한 것이다.

▲ 김홍국 편집위원

백색국가 제외, 사실상 적대국가 규정 후 전면전 선포한 격

일본 정부는 이날 각의에서 전략물자 수출 간소화 혜택을 주는 27개국의 백색국가 목록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개정안을 결정했고, 한국 정부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중단을 검토하는 등 강력하게 대응한다는 방침이어서 한일 관계는 1965년 수교 이후 최악의 국면에 접어들었다.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달 1일 한국에 대한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의 수출규제 강화 조치를 발표하면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법령 개정안을 함께 고시했다. 이날 각의를 통과한 개정안은 담당 장관인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상이 서명하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연서한 뒤 공포 절차를 거쳐 21일 후 시행될 예정이다.

백색국가는 군사목적으로 전용할 수 있는 물품이나 기술을 일본 기업이 수출할 때 일본 정부가 승인 절차 간소화 혜택을 인정하는 나라로, 미국과 영국 등 서방 국가 외에 한국, 아르헨티나, 호주, 뉴질랜드 등 총 27개국이 지정돼 있었다.

2004년 지정된 한국은 이 리스트에서 배제되는 첫 국가로 기록됐으며, 이번 일본정부의 결정은 한국을 우방국에서 제외함으로써 신뢰할 수 없는 사실상의 적대국가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큰 외교적 마찰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국은 백색국가 목록 제외 조치에 따라, 현재는 ‘일반 포괄 허가’를 받으면 3년간 자유롭게 수출할 수 있지만, 시행 이후에는 일본 정부가 ‘리스트 규제 대상’으로 정한 1100여개 전략물자를 한국에 수출하는 일본 기업들은 경제산업성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 리스트 규제 대상 외의 품목에는 ‘캐치올(Catch all)’ 제도도 적용받아야 한다. 군사전용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품목의 경우 개별적으로 수출 허가 신청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식품과 목제를 제외한 거의 모든 품목에서 개별허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과거사 반성 없는 일본, 섬뜩한 총칼 무장 일본군 연상케 해

이번 결정은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배제하는 결정을 하루 앞두고 한-일 외교 수장이 1일 태국 방콕에서 만났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돌아선 데서 예견됐다.

일본을 방문 중인 국회 의원단이 집권 자민당 실력자인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을 면담하려 했으나 끝내 무례하게 거절당한 것도 사실상 이같은 상황을 예상케했다.

일본의 백색국가 배제 결정에 따라 우리 정부도 대응 조치를 취하고, 침략 등 과거사에 대한 반성없이 한국에 보복조치를 취한 일본에 대해 한국민들의 강력한 의지와 단합력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를 의결한 2일 오후 '화이트리스트 한국배제 아베정권 규탄 기자회견'이 열린 일본대사관이 입주한 서울 종로구의 빌딩 앞에서 아베규탄 시민행동 회원들이 군사비밀정보 보호에 관한 협정 폐기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뉴시스

일본은 반도체 부품 수출규제를 되돌리라는 한국의 요구와 함께 추가 행동을 중지하고 현 상황을 동결한 채 협상에 나서라는 미국 쪽 중재안도 끝내 거부했다. 일본이 스스로 도발한 무역 갈등을 해결하기는커녕 일본과 함께 국제사회에서 아시아를 대변해온 한국과 미국의 제언까지도 무시하는 일본의 행태는 과거 제국주의, 군국주의 시절로 돌아간 총칼을 찬 일본군의 섬뜩한 모습을 연상시킨다.

일본의 백색국가 배제 결정은 그 부정적 효과가 경제 분야에만 그치지 않고 정치·사회 등 모든 분야로 확산될 수밖에 없다.

아베 총리가 한-일 관계를 최악의 상황으로 끌고 갈뿐 아니라 동북아와 지구촌의 안정까지 해치면서 벌이는 도발이라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분노는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을 경제적으로 압박해 굴복시키려는 일본의 시도는 양국관계를 사상 최악의 국면으로 끌고갈 것이고, 두 나라의 ‘경제 전면전’과 자칫 외교 및 국지전까지도 초래할 중대한 상황에 접어들었다.

무수한 침략범죄, 패전 후 외교권 회복한 뒤 주변국에 억지 공세

일본은 역사적으로 한국에 대해 무수한 침략과 전쟁, 갈등을 반복하면서 역사적 악연을 맺어 왔다. 고려시대에는 왜구가 해안가를 침탈했고, 조선조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일으키며 무수한 만행과 참상을 저질렀고, 구한말 군사력으로 침략해 35년간 식민지 강점통치를 했던 가해자의 역사를 걸어왔다.

▲ 일본 정부가 아베 신조 총리 주재로 각의(국무회의)를 열어 한국을 수출절차 간소화 혜택을 인정하는 백색국가'(화이트 리스트) 명단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한 가운데 2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자랜드에서 시민들이 일본의 화이트 리스트 제외 관련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뉴시스

한국을 침략하고 온갖 비인도적 만행을 저지르고도 반성은커녕 도리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진 국제법으로 합리화하는 등 두 얼굴을 가진 나라였지만, 한국은 이웃나라라는 점에서 가능한 양국간 상호협력에 기반한 선린우호정책을 펴왔다.

세계제패의 야욕을 꿈꾸던 일본은 태평양전쟁 이후 패전국이 되면서 패망했고, 이후 주권 상실에 따라 외교 자주권을 갖지 못했다. 그러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에서 미·일 강화조약과 안보조약을 체결한 일본은 외교권을 회복하고, 각국과의 배상·보상조약을 거쳐 외교관계를 새롭게 정비했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일본이 경제회복과 함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것은 잘 알려진 일이지만, 일본은 도리어 한국과의 무역역조로 이득을 보는 등 한국을 통해 거대한 경제적 이익을 누려왔다.

일본외교: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협상 문화

일본의 외교정책은 미국과의 동맹을 기축으로 하여 서방 각 국가들과 긴밀히 제휴하는 반공주의, 경제중심주의 외교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기시 노부스케 내각은 1957년 유엔 중심주의, 자유주의 국가들과의 협조, 아시아의 일원으로서의 입장 견지라는 외교 3원칙을 발표했고, 이후 주변국과 갈등을 빚으며 일본 외교정책의 기본원칙으로 수립됐다.

▲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를 의결한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이 인근의 소녀상 옆에 아베정부를 규탄하는 피켓이 놓여 있다./뉴시스

일본의 외교문법은 늘 ‘외압과 대응’이라는 틀로 진행돼 왔다. 미국의 통상압력에 대해 ‘반발→양보→타협’이라는 일련의 반복과정을 통해 대응했고, 이 같은 대미외교의 방식에서 수립된 협상 태도를 다른 나라들에게는 도리어 압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유형화해 사용하고 있다.

협상학자인 다니구치 마사키 일본 도쿄대 교수는 미국과 일본 사이의 전후 무역협상 사례를 연구한 뒤 ‘미국의 압력 →일본의 전면 거부 →미국의 외압 강화 →일본의 양보 →절충적 타협’이라는 양상으로 일관되게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강자인 미국에는 한없이 약하며 양보를 거듭하는 반면, 주변국에 대해서는 강력한 압박과 갈등 국면을 통해 일본의 국력과 외교력을 과시함으로써 국익을 끌어올리는 패턴을 보여왔다. 일본은 상대를 압박해 자신들의 이익을 전면적으로 관철하는 강력한 협상 문화 탓에 매우 힘든 협상 상대로 분류된다.

이처럼 일본은 과거사 왜곡에서 보듯 유리한 입장에 서거나 이를 고수하는 데 익숙하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와 대안 제시 및 국제규범 부합성, 논리적 당위성, 도덕적 정당성을 두루 갖춰야 한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군림하는 외교유형을 보이는 일본과 맞서기 위해서는 우리의 외교실력과 치밀한 사전 준비 및 정교한 전술전략을 통해 일본을 압도해야 할 것이다.

한국에 대한 강력한 압박, 온 국민 초당적 단합해 극복해야

일본의 외교정책은 주변국을 압박하는 거칠고 자기중심적인 양상으로 나타난다.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대만, 러시아 등 주변국과 영토 문제 및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로 마찰을 빚고 있다.

한국과는 우리의 고유영토인 독도에 대해 일본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역사 교과서에서 위안부 문제 등을 왜곡하며 사안마다 갈등을 빚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주요20개국(G20)정상회담장에 도착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오사카=AP/뉴시스】

과거 1995년 일제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을 반성한 ‘무라야마 담화’와 일제 종군위안부의 존재 및 강제 동원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던 1993년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을 밝혔던 아베는 두 번째 총리가 된 이후 역사를 왜곡하고 과거사를 부정하며 ‘한국 때리기’를 통해 반한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이같은 외교적 갈등사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도발과 분쟁을 일으킨 당사자인 일본이 스스로 과거사 왜곡과 함께 최근의 터무니없는 경제보복 공세에 대한 반성에 나서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일본이 스스로 보여준 국제사회에 대한 침략과 도발을 스스로 참회하고, 다른 국가와 지구촌의 외교문법을 존중하지 않는 한 일본으로 인한 국제사회의 갈등과 대립 상황은 재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외교측면에서는 미국·중국 등 주변국과 함께 일본이 국제사회의 보편적 규범에 맞게 공조와 협력의 정치를 펼치도록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등 강력한 외교전을 펼쳐야 할 것이다.

국내적으로는 국제규범에 부합하는 우리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 일본을 설득하는 행정부의 노력과 함께 국회의 초당적이고 협력적인 외교가 필수적이다.

우리 사회가 정치적 이념이나 이익에 따라 분열하는 것은 자중지란을 일으키고, 외교전에 패배하는 최악의 패착이 될 것이다.

▲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일 오전 태국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 양자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방콕(태국)=뉴시스】

더불어 일본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갈등을 부추기는 행위는 최대한 자제하는 한편 양심적인 시민사회와 학계 등 일본 시민들과의 교류협력도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갈수록 도발적이며 극우화하는 일본과 맞서기 위해서는 정부와 정치권, 국민이 한 마음으로 단합해 단호하지만 신중하고 지혜로운 초당적 협력과 실력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 김홍국 편집위원은 문화일보 경제부 정치부 기자, 교통방송(TBS) 보도국장을 지냈으며, 경기대 겸임교수로 YTN 등에서 전문 패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MBA(기업경영)를 취득했고, 리더십과 협상에 관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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