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답답하다. 불안하다. 앞이 안 보인다. 어떻게 이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보는 국민들은 점점 절망감에 빠진다. 매일 언론보도를 통해 최순실 일당의 초법적 국정 농단의 실체들이 고구마줄기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도 검찰수사는 물론 청와대의 반응은 오히려 부화를 돋운다.

▲ 남영진 논설고문

11월 12일 백만 촛불시위 함성을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들었다면 뭔가 획기적인 조치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16일 검찰의 참고인 조사에 성실히 응하겠다던 태도를 바꾸어 법률 대리인인 유영하 변호사를 앞세워 거부하면서 사태가 영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게다가 그간 숨죽이며 수세에 몰렸던 친박계와 청와대가 반격 모드로 돌아서면서 상황이 점점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비박계의 사퇴요구에 12월 21일까지는 버티겠다며 100만 촛불을 ‘소수의 반대’로 비하한다. 최근 비박계 등을 향해 쏟아낸 그의 독설은 언급하기도 민망할 정도다.

검찰 출신의 강경파 김진태 의원의 “100만 촛불이라도 바람이 불면 꺼진다”는 발언은 주말시위에 불을 지르는 형국이다. 민의와는 동떨어진 그의 언행도 ‘참담한 수준’이다.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등 그동안의 언론 보도 내용만 해도 최순실 일당의 국정 농단은 기가 찰 노릇이다. 검찰이 대형 수사팀을 꾸려 최순실, 고영태, 차은택 등 핵심 피의자들을 조사하고 이들과 함께 문화, 체육 관련 비즈니스를 도와준 청와대 안종범 전 경제수석과 문고리3인방으로 불리는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을 조사하면서 국가기밀누설죄, 제3자 뇌물죄, 국가기록물법위반 등 대강의 범법행위들이 드러났다. 이것만 놓고 봐도 박 대통령은 참고인이 아닌 공범피의자로 검찰조사를 받아야한다.

그런데 국민 기대와 달리 박 대통령은 스스로 물러날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다. 국민들의 하야 요구는 계속 이어질 게 틀림없고, 11.19 주말 집회에서 어떤 불상사가 일어날지 모른다. 카톡에는 ‘11.19 국민 학익진 작전지도’라며 청와대를 포위하는 행진도가 흘러 다닌다.

▲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3차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하야’를 외치고 있다./뉴시스

이제 야당이 할 수 있는 카드는 국회를 통한 탄핵절차뿐이다. 야당 유력 대선 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그간의 신중모드에서 ‘대통령 퇴진’을 공개 요구했고 처음부터 ‘하야’를 외쳤던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 심상정 대표의 정의당 등 야3당의 공조가 확실히 이루어지고 있다.

87년 민중항쟁 이후 최대 인원이었다는 지난 11월 12일 광화문시위 이후 촛불시위도 계속된다. 서울의 광화문, 종로, 시청앞, 청계광장, 대학로 일대나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전국적으로 벌어졌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규탄시위의 불길은 더 이상 촛불이 아니라 횃불이다.

웬만한 추운 겨울 강풍에도 계속 거세질 기세다. 1960년 4.19혁명과 87년 민중항쟁의 기시감이 벌써 보인다. 기존의 중고생들에 이어 17일 대학수능 이후 해방된 고3 학생들이 시위에 합류하는 새 현상도 보인다.

대통령의 ‘기행’이 종편의 가십거리를 넘어 점차 시중 술집에서의 안주감으로 희화화되고 있다. 가벼운 점심 모임에서는 주로 새로운 사건의 추이를 이야기하다가 저녁 술자리에선 여기 저기 성토에 핏대를 올린다. 국민 정서로 보면 박 대통령은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다.

▲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유영하 변호사가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세월호 침몰 당일 ‘7시간’의 미스터리도 이젠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 청와대는 2014년 4월 16일 당일 대통령이 청와대 집무실에 있었고 시간대별로 보고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이 국회에서 대통령에게 대면보고를 못했다고 말한바 있다. 그 중대한 사건에도 대통령 신상에 어떤 말 못할 사정이 있지 않았나 하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고(故) 최태민 20주기라 청와대에서 최순실과 굿판을 벌였다는 소문은 엽기적이다. 가히 소설에나 나올법한 억측으로 치부했지만, 그간의 정국 운영을 보면 낭설이 아닐 수도 있다.

대통령의 공식 연설문에 ‘우주의 기운’이니 ‘혼’이니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느니 어색한 표현들이 나왔고 이것이 실제 정책으로 반영됐다. 해외 언론에서는 아예 박 대통령이 무당의 도움을 받아 샤머니즘에 빠졌다고 보도하고 있다.

마사지설도 분통 터진다. 박 대통령이 최순실의 단골인 강남의 성형외과에서 마사지를 받은바 있고 최순실의 언니 최순득과 수시로 ‘청’, ‘안가’ 등 서명을 한 뒤 비타민제 등 주사제를 대리처방해 갔다는 보도가 이를 뒷받침한다.

프로포폴 처방이나 향정신성 주사제였을 거라는 소문도 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도 고객이었다는 종편의 보도가 이 의혹을 더해주고 있다. 청와대에 주치의가 있음에도 국가기밀에 속하는 ‘대통령의 건강’이 노출된 건 보통문제가 아니다.

처방전에 대통령의 가명을 배우 하지원이 주연한 ‘시크릿가든’의 여주인공 ‘길라임’이라고 적은 것도 코미디다. 연예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하지원은 “내 캐릭터 쓰지 마세요”라고 공식석상에서 말했다고 한다.

이런 모든 의혹에 청와대는 대통령에게도 존중받아야할 ‘여성으로서의 개인적 기본권’이 있다는 엉뚱한 말로 둘러대고 있다. 이 부분도 청와대가 속 시원히 밝히든지 검찰수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가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역 8번출구 앞에서 "초유의 국정농단, 비호한 검찰도 공범이다"라고 주장하며 검찰 규탄 집회를 갖고 있다./뉴시스

검찰 수사에서 정호성 전 비서관의 휴대폰에 박 대통령이 “최 선생님께 컨펌 받으라”, 최순실이 “국무회의를 하고 해외순방” 등 지시내용의 문자메시지가 발견됐다. 최순실이 대통령의 개인 건강관리와 일상생활, 대국인 연설문과 국정을 이끌어 ‘조선시대의 ’지밀상궁’과 ‘도승지’의 역할을 도맡아 한 것 같다.

최순실 일당이 미르와 K스포츠재단을 설립하고 독일에 13개의 유령회사를 만든 것은 돈을 빼돌려 자금세탁을 하려는 속셈이었다는 의혹도 있다. 이들은 국민들이 잘 모르는 문화체육계의 돈냄새를 맡아 문화부 장관, 청와대 수석, 콘텐츠진흥원장 등 요직을 차지해 평창동계올림픽을 사적 이익을 채우는 곳간으로 이용하려 했다.

이 재단설립을 위해 박 대통령이 직접 재벌 총수를 독대해 700여억원을 거둬들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니 이게 뇌물이 아니고 무엇인가.

서민들은 김영란법 때문에 3만원짜리 식사도 눈치 보며 먹는데 그 괴리감에 화가 치민다. 이제 ‘질서있는 퇴진’은 물건너 갔다. 촛불대신 횃불이 활활 타올라야 하는가.

※ 남영진 상임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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