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우의 세상이야기

[이코노뉴스=남경우 대기자]

▲ 남경우 대기자

총리 문제가 거론되었을 때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손학규 전 새정연 대표와 총리내정자 김병준 국민대 교수의 태도를 보면서 문득 논어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子曰 唯仁者 能好人 能惡人(제4편 제3장)

“어진 사람만이 사람을 좋아할 수 있고 사람을 미워할 수 있다”

손학규 대표는 거국내각설이 심심치 않게 거론되자 ‘총리제안을 거절하지 않겠다’고 곧바로 속내를 내비쳤고, 김병준 교수는 국민의 당 안철수 대표와 비상대책위원장 수락을 논의하는 와중에 청와대의 총리 제안을 받아들였다. 필자는 당시 두 사람의 민감한 반응과 수락을 다소 어리둥절하게 받아들였다. “아직 무엇 하나 사태의 진상이 밝혀진 바도 없는 데… 이렇게 빨리 속내를 밝히나?”

그러면서 또 하나 드는 생각이 있었다. 너무 표정들이 밝고 활달했다는 것이었다. 손 대표나 김 교수 모두 다양한 인생역정을 겪어왔다. 그래서 일까. 그들은 내면이 잘 다듬어져 있으며 인간의 희로애락을 잘 통제할 수 있기에 그렇게 활기찬 모습을 내보일 수 있는 건가. 머릿속에 의문이 들었다.

어째든 이러한 두 분의 모습은 보통사람들과는 사뭇 감정의 결이 달랐다. 보통사람들은 분노로 허탈로 불안으로 창피함으로 마음을 추스리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혹시 이 분들이 내면이 잘 다듬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혹시 ‘나만이 이런 국면을 헤쳐나갈 수 있다’고 하는 정치 엘리트들의 과잉자신감은 아닐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분들의 ‘자신만만함’이 못내 불편했다. 이 점은 여전하다. 김병준 교수의 예식장에서의 발언과 태도 또한 못내 불편하다. 그 분에게는 기뻐해야 할 결혼식장이었을 것이다. 이런 자리에서 국정현안을 이야기하는 것도 웬지 어색하다. 지인들이 총리내정을 축하하는 자리로 비춰지기도 한다. 축하받아야 할 상황인가.

누가 총리에 오를지 모르지만 국민과 함께 분노하고 아파하는 마음의 결을 가진 사람이면 좋겠다. 정책이나 묘수가 아니라 마음이 더 우선이다.

▲ 서울대 교수들이 7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에서 '대통령과 집권당은 헌정 파괴의 책임을 져야 한다'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뒤 4.19탑까지 행진하고 있다. 이날 시국선언에 동참한 교수는 전체 교수의 3분의 1수준인 728명이다. /뉴시스

인자만이 불의에 분노할 수 있다. 진정으로 분노해야 사실을 밝힐 수 있으며 수습할 수 있다. 나아가 용서할 수 있다. 이럴 때만이 국민의 마음을 위로하고 그들의 동의를 구해낼 수 있다. 또 난마처럼 얽혀있는 한국사회의 문제를 해결해 가는데 첫걸음이라도 내디딜 수 있지 않을까.

정국은 분노하는 민심으로 시끄럽다. 국민은 ‘진실규명’과 이에 따른 진정한 사죄를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 일차적인 관심은 진실규명이다. 사죄와 사후처리는 그 다음 문제다.

국민의 요구는 아주 단순하다. “그간 청와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제대로 밝혀라.” 이다.

그래야 무엇을 어떻게 누가 수습할 것인가가 결정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청와대 전직원, 주요 각료, 주요 정보기구의 고급관료 , 언론기관 등 누군가가 진실을 외면하지 않았더라면 일어날 수 없는 사안이었다. 따라서 그들도 공범자들이자 부역자다. 경제수석이나 정책수석은 과거라면 왕의 선생인 왕사(王師)로도 불릴 수 있는 자리다. 그런 위치에 있는 자가 아무런 소신도 없이 삶의 철학도 없이 사익을 추구하는 일에 머슴으로 동원되었다.

언론 또한 마찬가지다. 물론 이 사태는 언론의 폭로에 의해서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언론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국언론의 대다수는 정권 초기에는 아부로 일관하며 단물을 빼먹다가 정권의 힘이 떨어지면 등에 칼을 꽂으며 차기 정권에 추파를 던지는 일을 반복해 왔다. 기회주의의 대표적인 군상이었다.

사태는 터졌고 분노는 들끓고 있으며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분노를 수습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이선퇴진일지 하야일지 탄핵일지를 결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이는 국민의 분노와 요구가 무엇이며 어느 수준에서 결정될지 대체적인 총의가 모아질 때라야 본격적인 수습국면으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이때야 말로 비로소 야당과 여당이 무엇을 타협해야 할 지가 분명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곁다리로 불거진 거국내각 총리 문제는 정국의 핵심문제가 아니다.

분노하라. 분노하지 않는 묘책이란 똑똑이들의 자기기만일 뿐이다.

※ 남경우 대기자는 내일신문 경제팀장과 상무, 뉴스1 전무를 지냈으며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연구 모임인 북촌학당에 참여, 우리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의 해법을 찾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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