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빵집 중 가장 오래된 곳은 어딘가? 정확치 않지만 올 가을 대전 성심당 60주년과 파리바게뜨 30주년 기사를 봤다. 서울 태극당은 그보다 오래돼 올해 70주년이다.

전북 군산의 이성당이 일제 초부터 90년 가까이 됐다고 한다. 라틴어 빠니스(PANIS)의 포루투갈 버전인 빵(PAN)이 가톨릭 신부들에 의해 일본의 규슈(九州) 지방에 입성한 뒤 우리나라에는 구한말 개화기에 전해졌으니 3세대가 지난 셈이다. 이제 우리의 주식은 밥과 빵이다. 여기에 국수와 고기가 더해진다.

▲ 남영진 논설고문

고려당은 없어졌지만 해방 직후인 46년 장충단 공원 앞에 개점한 태극당은 달콤한 모나카와 사라다빵으로 5060세대 추억의 입맛을 그대로 지닌 채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크라운제과도 삼립식품이 공장 크림빵을 대량생산하기 전까지는 크림빵과 고로케의 대표주자였다. 일제 때부터 읍·면단위까지 수제 찐빵과 만두가게들이 생겨났다. 강원도 안흥면의 ‘안흥찐빵’이 알려졌지만 이 정도 찐빵은 기차역 앞에는 한 두 군데 꼭 있었다.

인터넷에 ‘전국 5대빵집’이 나돈다. 네티즌들이 만든 거지만 각 지방의 대표 가게라 재미있다. 일제 때부터 90년된 군산 일본인거리의 이성당, 56년 대전역 앞 찐빵집에서 시작해 올해 60년된 으능정이(은행동) 골목의 성심당, 올해로 40년을 맞은 광주 충장로의 궁전제과, 40년 동안 2대에 걸쳐 안동찜닭거리 뒤편에서 공룡알빵을 만들어온 맘모스제과, 그리고 부산 해운대의 ‘학원전 케익’으로 유명한 30년된 ‘옵스’(OPS)다.

또 다른 버전으로는 30년된 해운대 옵스를 빼고 해방 후 49년부터 전남 목포역에서 노적봉으로 나가는 오거리대로변을 지켜온 ‘코롬방제과점’을 꼽는다. 프랑스어로 비둘기를 뜻하는 꼴롱브(colombe)에서 온 말로 프랑스빵인 바케트에 바다 새우를 넣은 ‘새우바케트’가 유명하다.

서울 사람들은 전국 ‘5대빵집’에 의문을 제기한다. 빵이라면 당연히 60~70년대 유명했던 종각의 고려당, 장충동의 태극당, ‘산도’의 크라운제과가 직영한 베이커리 등을 먼저 떠올리기 때문이다.

대전 성심당은 2대에 걸쳐 한 장소를 지켜왔다. 한국전쟁 때 함경도에서 내려와 대전에 정착한 한 부부가 대흥동 성당에서 미국에서 원조받은 밀가루로 역앞에서 찐빵을 만들어 팔다가 으능정이에 자리를 잡았다.

사훈이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십시요”일 정도로 천주교의 성심(聖心·Sacred Heart)에 맞게 하루 300개의 빵중 100개는 이웃에게 나눠주었다. 대기업의 프랜차이즈 브랜드들이 골목 상권을 공략했지만 대전에서는 성심당의 정신을 넘을 수 없었다.

대전역에서 대전천을 넘어 지금은 없어진 구 충남도청과 경찰청을 잇는 주도로가 중심가였다. 경부선과 호남선이 교차하는 ‘대전발 영시 오십분’ 열차를 타기위해 인파가 많았다.

▲ 고객들이 대전 롯데백화점 지하1층 식품관의 대표적인 베이커리 업체인 성심당에서 빵을 고르고 있다./대전롯데백화점 제공

충북 황간이 고향인 나는 누나, 형이 대전에서 고교와 중학교를 다닐 때 자취집에 놀러 가서 이 거리에서 오뎅을 처음 맛보았다. 그리고 목척교를 넘어 대전극장골목 성심당의 달콤한 단팥빵과 곰보빵맛은 황홀했다.

2대 사장인 아들이 개발한 게 이 곰보빵을 튀긴 ‘튀김 소보루’인데 입소문이 나 이를 먹으러 맛기행을 온다. 튀김소보루만 지금까지 3,860만개를 팔았다고 한다. 대전역앞서 지하철로 한 정거장인 중앙로에서 내려 본점을 들러 이웃의 우동야, 피자집, 롯데백화점의 성심당까지 구도심 문화의 거리를 걸어다니다 대전역까지 돌아오는 ‘성심당 맛투어’가 개발됐다.

정부 제3청사가 유등천을 넘어 둔산에 자리 잡고 대전엑스포 이후 유성쪽이 커지고 최근에는 세종시에 정부부처가 옮겨와 인구가 북쪽으로 몰려가 구도심은 쇠락했지만 아직도 옥천 영동과 금산, 무주쪽 농민들이 농산물을 판매하러오는 중앙시장과 함께 삼성당이 구도심을 가까스로 지켜내고 있다.

이성당도 군산의 중앙로에 있다.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에 나오듯 일제가 ‘징게맹갱’(김제만경평야)의 쌀을 실어내기 위해 금상 하구인 강경포구에서 바다로 나간 군산을 큰 항구로 개발했다. ‘째보선창’ 주위에 척산은행, 세무서 등 관청과 길건너 중앙로에 일본인 동네를 조성했다, 이 가운데 1920년대 이즈모야라는 화(和)과자점이 생겼고 해방후 이 자리에 이성당이 물려받았다.

지난 초여름 갔을 때도 야채빵과 단팥빵(앙금빵)이 불티가 났다. 10개 이상 사려면 예약하든지 30분 정도는 기다려야 했다. 일행이 여럿이라 기다리는 게 싫어 의자에 앉아 팥빙수와 평범한 빵을 먹었다. 인기를 얻어 서울 잠실 롯데호텔과 새 롯데 잠실쇼핑몰에 분점을 열었다. 주위에 근대 초기의 일본식 건물과 추억의 맛기행도 유행이다.

▲ 태극당의 소보로빵

한석규와 심은하가 주연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 나오는 추억의 ‘초원사진관 앞에서 연인들이 기념사진을 찍는다. 건너편에 맑은 국물의 ‘’소고기뭇국’으로 유명한 한일옥이 있다.

작은 기사식당에서 아침부터 북적이는 맛집으로 변신했다. 몇 년전 이사한 건물은 일제때 외과 병원이란다. 시청에서 새로 조성한 일본 정원과 2층집이 가지런한 거리, 뒷산인 월명산 공원의 채만식 기념비를 엮어 여행객이 줄을 잇는다. 근처 서원반점의 잡채밥, 지린성 고추짜장, 복성루와 쌍용반점의 짬뽕 등 중국음식점 4인방도 최근 유명해졌다.

한국 사람들이 이민 갔을 때 끝까지 바뀌지 않는 건 역시 김치, 된장 고추장 등에 길들여진 입맛이란다.

나도 생선회나 비빔밥 먹을 때 고추장을 가끔 먹는데, 비행기 기내식사 땐 바로 튜브고추장을 찾는다. 왠지 매운 것을 미리 먹어둬야 된다는 강박감이 있는 것 같다. 그만치 입맛은 변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이젠 하루 3끼 중 밥은 한번 정도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빵과 피자 샌드위치도 익숙해졌고 어릴 때부터 즐기던 면종류도 잘 먹는다. 단맛과 면발이 입맛을 바꾼 것이다. 올해도 쌀이 30만톤이나 남아돈다는데 걱정이다.

※ 남영진 상임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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