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응백의 국악 가사 이야기

[이코노뉴스=하응백 서도소리진흥회 이사장]

▲ 하응백 서도소리진흥회 이사장

서도 민요 중에 ‘풍구타령’이란 노래가 있다. 사설이 간단하고 곡조가 비교적 쉬운 토속민요인데, 평안도와 황해도 지방에서 널리 불렸던 것으로 보인다. 대개 우리 국악가사의 사설은 성적인 내용을 담더라도 은근하거나 에둘러 말하거나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이 ‘풍구타령’은 비유적이긴 하지만 대단히 직설적이다. 외설적인 가사이며, 요즘말로 하면 ‘19금(禁)’이다.

가사를 한 번 들여다보자.

신계 곡산에 풍구는 칠팔명이 불어도

우리 둘이 풍구는 단둘이만 분다네

삼수갑산에 풍구가 얼마나 좋은지

꽃같은 날 두구 풍구 불러만 간다네

신계 곡산에 풍구는 무쇳덩이도 녹이는데

우리집 낭군은 풍구 불러만 간다네

벌나비의 풍구는 새근 달달 불어도

대장간에 풍구는 풀떡풀떡 분다네

요지경에 풍구는 새큼 생큼 불어도

이불 속에 풍구는 둥기 당실 분다네

시누 올케 풍구는 왈각 달각 불어두

남의 사랑 풍구는 연사 연실 분다네

늙은 과부 풍구는 수다 떨구 불어두

며느리방에 풍구는 소리두 없이 분다네

갈잎에 부는 풍구는 버석버석 불어두

이불 속에 풍구는 꾹꾹 눌러 분다네

입으로 부는 풍구는 후후 후후 불어두

눈이 맞는 풍구는 찰떡 풍구로 분다네

원래 ‘풍구’란 풀무, 즉 대장간에서 바람을 불어 넣는 기구를 뜻한다. 풀무에는 발풀무, 손풀무 등 여러 종류가 있는데, 여기서는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밀었다 하며 바람을 일으키는 풀무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노동행위를 성행위로 대치하여 상상하고 재미있어 하면서 노래하는 것이다. 즉 풍구질을 남녀의 교합 행위를 비유하는 뜻으로 사용하면서 노래하는 자나 노래를 듣는 자 모두 낄낄거리며 머릿속에서는 외설적인 장면을 상상하게 하는 것이 이 노래의 기능이다.

가사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면, “신계 곡산에 풍구는 칠팔명이 불어도 우리 둘이 풍구는 단둘이만 분다네”는 신계 곡산은 철광석 산지이니까, 대장간도 많았을 것이니 자연 여러 명이 진짜 풍구를 불며 일을 한다. 하지만 우리 둘의 풍구는 성행위니까 둘이 부는 것이 당연하다.

▲ 2016년2월 남산골한옥마을에서 열린 정월대보름 달빛불놀이에서 서도소리 명창들이 풍구타령 등 서도소리들을 관중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다음 가사는 남편이 바람피우는 것을 간접적으로 비난한다. 실소가 나오는 가사는 “늙은 과부 풍구는 수다 떨구 불어두 며느리방에 풍구는 소리두 없이 분다네”이다. 늙은 과부는 요란스럽게 풍구를 불고, 갓 시집온 며느리는 소리없이 풍구를 불 수 밖에 없다. 이 말 자체가 술자리에서나 할 수 있는 외설적인 것인데 나머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더 의미심장한 가사는 “눈이 맞는 풍구는 찰떡 풍구로 분다네”이다. 사랑과 성행위의 일체성을 말하는 것인데, 쉬운 가사로 사랑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민요가 가진 장점 중의 하나인 것이다.

그런데 더 황당하게 웃기는 일은 이 ‘풍구타령’을 어린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심지어 공연에서도 이 노래를 시킨다는 점이다. 가사가 쉽고 곡조가 쉬어 그렇기는 하나 이 노래의 뜻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노래가 동심으로 부르는 어린 아이의 맑고 고운 목소리를 통해, 그리고 귀여운 율동을 통해 표현될 때 어떠한 표정을 지어야할까. 공연에서 이러한 상황에 직면해서 황당해 하는 사람은 나뿐이었으면 다행이겠다.

 

※ 하응백 서도소리 진흥회 이사장은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에 당선돼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옥봉의 몽혼’(2009)등 20여 권의 편저서가 있으며 ‘창악집성’(2011)이라는 국악사설을 총망라한 국악사설 해설집을 펴내기도 했다. 2002년 ‘휴먼앤북스’라는 출판사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는 하 이사장은 경희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문학박사를 취득했으며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국민대학교 문창대학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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