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지난주 금요일인 10월 13일 저녁 음악극 ‘햄릿’ 공연을 봤다.

영화는 1년에 3~4번, 주로 코믹 애정물 위주로 본다. 연극은 별로 좋아 하지 않아 1년에 한두 번 보는데 그것도 우중충한 느낌의 ‘햄릿’이라 처음에는 별로 달갑지 않았다.

▲ 남영진 논설고문

그런데 집사람과 함께 만나는 몇 안되는 부부모임이라 큰맘 먹고 서울 역삼동의 LG아트센터에 들렀다. 오페라나 연극도 아니고, 그렇다고 유행하는 뮤지컬도 아닌 ‘음악극’이라 해서 어떤 장르일까 궁금해졌다.

부부모임엔 유명한 제주도립무용단장의 남편이자 춤평론가인 장광렬 교수가 있는데, 나의 제자이기도한 이 친구가 햄릿을 추천했다. 부인은 11월 정기발표회를 준비하느라 참석 못하고 장 교수 혼자 나왔다.

7쌍의 부부가 아트센터 내 중국집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고 3층 아트센터로 올라가니 로비가 젊은이들로 꽉 차 있다. 영화관 앞엔 젊은 연인들끼리, 또는 가족단위로 많이 오는 걸 봤지만 연극도 이렇게 인기인가 놀랬다. 금 토 일 한 번씩 공연이라 그런가?

관람 후 한국일보를 읽어 보니 셰익스피어 400주기를 맞아 올해 우리나라에서만 10여 편의 햄릿이 공연됐는데 그중 최고란다.

팸플릿에는 3년 전 같은 장소에서 ‘늙은 뱃사람의 노래’를 공연했던 타이거 릴리스와 덴마크 리퍼블리크 씨어터의 합동극이란다.

타이거 릴리스는 초고음의 카스트라토 창법을 사용해 한번 들으면 잊혀 지지 않는 중독성 강한 음색이 특징이다. 셰익스피어가 1601년 만든 작품인데 영국을 통치하던 노르만의 나라 덴마크 왕궁이 무대다.

왜 덴마크를 무대로 삼았는가 하면 영국사의 치욕인 1066년 노르만 정복왕 윌리엄 1세가 영국의 3분의 1을 점령하고 봉건제를 실시해 1세기 이상 덴마크왕의 지배를 받을 때 이야기다.

햄릿 왕자 이야기는 12세기 덴마크의 역사가 삭소 그라마티쿠스의 ‘덴마크사’(1514)에 보이고, 이미 1589년에는 런던에서 토머스 키드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햄릿극이 상연된 바 있다. 이를 ‘원(原)햄릿’이라 불렀으나 남아 있지 않다.

셰익스피어는 이것을 새 희곡으로 쓴 것이다. 햄릿, 오셀로, 맥베스, 리어왕이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라고는 알지만 내용은 아슴하다.

고등학교 때 다이제스트본으로 읽은 것 같은데 스토리도 잘 기억이 안 났다. 다만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햄릿의 독백은 농담처럼 자주 써먹는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 안내방송에서도 “연극을 잘 보려면 핸드폰의 전원을 끄느냐 안끄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라고 말해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 음악극 ‘햄릿’/LG아트센터 제공

연극이 시작되자마자 어디서 많이 본 분위기다. 뮤지컬이나 오페라와는 달리 아코디언을 들고 나온 타이거 릴리스의 고음노래가 처량하다. 삐에로 같은 분장을 한 그는 우리 영화 초기 변사같기도 하고 ‘품파’를 읊어대는 각설이같은 느낌이다.

무대 뒤의 배경도 나무판 하나에 등장 인물들의 머리만 드러나 간단하다. 이 무대에 빛을 비추어 바다 풍경도 만들고 이를 움직여 자유자재로 왕국 궁정의 분위기를 뿜어낸다.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영국의 컬트밴드를 그대로 가져와 등장 악기도 아코디언, 기타, 피아노, 수자폰이 전부다. 머리색깔과 의상만 서양식이지 어릴 때 시골장터에서 본 신파극의 ‘여성국극’ 같은 분위기다.

모두 8명의 배우가 희곡의 21가지 장면을 릴리스의 해설성 음악으로 깔고 중간 중간 7명의 배우가 수수한 옷차림과 절제된 움직임으로 내용을 표현한다.

간단한 햄릿의 줄거리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유학 길에서 덴마크로 돌아온 왕자 햄릿은 삼촌인 클로디어스가 왕위에 오르고, 아직도 슬픔이 채 가시지 않은 어머니 거트루트를 왕비로 삼자 비통과 의혹, 실망 속에서 괴로워한다.

그때 아버지의 유령이 나타나 아우인 삼촌이 자기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했다며 복수를 부탁한다. 햄릿은 복수를 하기 위해 확실한 증거를 잡으려한다. 그는 왕이 동생에 의해 살해되는 연극을 왕 앞에서 상연하면서 삼촌의 반응을 보고 확신한다. 그는 미친척하며 여전히 복수를 지연한다. 이때 “죽느냐, 사느냐.”의 독백이 나온다.

그는 성가신 늙은 고문관이며 애인 오펠리아의 아버지인 폴로니우스를 실수로 죽여 영국으로 추방되자 뱃길에서 우유부단했던 자신을 후회하고 돌아온다. 햄릿이 돌아오자 고문관의 아들 레어티스는 독검으로 그를 죽이려 결투를 신청하고 왕은 햄릿이 이기면 승리를 축하하는 독잔을 내려 죽이려고 계획한다. 이 잔을 햄릿의 어머니인 왕비가 마시고 햄릿이 이기고 왕까지 찔러 죽인 뒤 칼에 스친 독이 퍼져 결국 8명의 등장인물 모두 죽는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구글 이미지 캡처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햄릿’은 맥베스나 리어왕과는 비극의 내용이 다르다.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와의 투쟁이 아니라 햄릿 자신의 고민을 더 드러낸다.

지나치게 내성적이고 행동을 못하는 햄릿에게 계속 위기가 몰려온다. 이러한 성격이 바로 운명을 결정한다는 교훈이다. 그래서 인간 유형을 사색적인 햄릿형과 행동적인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형’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괴테는 “햄릿은 화분에 떡갈나무를 심은 것과 같다”고 말했다. 섬세한 감수성의 젊은이에게는 아담한 소나무 분재가 맞는데 커다란 떡갈나무를 심었으니 뿌리가 자라나 화분마저도 깨버린다는 뜻이다.

햄릿이 복수결심을 하고는 해적선에 뛰어오르는 행동을 볼 때 수동적인 인간형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는 것 같다. 햄릿의 ‘사색적 성격’은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높이 평가돼 이 비극이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이 됐다 한다.

셰익스피어의 또 다른 비극인 ‘로미오와 줄리엣’이 4대 비극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도 궁금했다. 그 비극적 성질이 다르기 때문이란다.

햄릿의 우유부단, 오셀로의 질투, 맥베스의 탐욕, 리어왕의 변덕스럽고 아부에 약한 성격 등 주인공 모두가 자신의 불완전함으로 인해 비극을 불러왔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원수의 집안에서 태어나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적’ 비극이어서 다른 작품들과 성격이 달라 제외됐다고 한다. 비극도 격이 다르다니 세상만사 간단한 게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 남영진 상임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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