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전세계 130여개국의 수도 중에 1천년을 넘는 도시가 몇 개나 있을까?

서양에서는 2천여년 전의 이탈리아 로마와 1700여년된 터키의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이 있고 동양에선 일본의 쿄토(京都)와 우리 서울 정도가 아닐까?

▲ 남영진 논설고문

중동에선 메소포타미아 지역인 이라크의 바그다드가 옆의 바빌로니아 수도였던 바빌론까지 합쳐 3천년 이상된 가장 오랜 도시다.

페르시아의 후예인 이란의 테헤란이나 이집트의 카이로는 수도로서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서울은 온조대왕이 어머니 소서노를 모시고 한강 동남쪽인 지금의 풍납동, 천호동, 석촌동등에 나라를 세워 475년 개로왕이 고구려의 장수왕에게 참수될 때까지 495년간 한성백제의 수도였다.

이후 왕건이 개경(개성)을 수도로 고려를 세웠지만 동경(경주) 서경(평양)과 더불어 남경(한양)으로 존속했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해 1394년 한강 북쪽인 북한산 밑에 경복궁을 짓고 한양으로 천도해 1994년에 600년 정도(定都) 행사를 치루었다.

그런데 백제가 건국된 때부터 웅진으로 천도하기 전, 즉 하남위례성에 수도를 두고 있었던 한성백제(18-475)까지 합하면 올해로 서울은 도시설립이 1천년이 넘은 셈이다.

지중해의 도시국가인 베네치아가 4세기 말부터 나폴레옹에 의해 정복된 19세기 초까지 1500년 정도 존속했고 중유럽에서는 바바리아의 수도였던 뮌헨과 터키의 유럽 침입을 끝까지 막아낸 오스트리아의 빈이나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폴란드의 바르샤바가 800년 정도. 키예프공국의 수도였으며 지금은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예프 정도가 14세기 무렵부터 생겨난 러시아의 모스크바보다 더 오래된 도시다.

서유럽에서 오래된 나라인 영국의 런던도 튜더왕조 이후이니 800년 정도, 프랑스의 파리는 더 후에 생겼다. 독일의 베를린도 프로이센이 독일을 통일한 이후니 기껏 150년 정도다.

스페인의 마드리드는 15세기말 이자벨라 여왕의 통일 후니까 500년이 넘었고 벨기에의 브뤼셀과 네델란드의 암스테르담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이후 400여년 정도 됐다. 북구 덴마크의 코펜하겐, 스웨덴의 스톡홀름 등은 나폴레옹전쟁 이후이니 200년 남짓이다.

근대 이전에는 문명이 더 발달된 동양의 도시가 더 발전했다. 중국의 진·한 시대부터 황하의 상류인 장안(長安) 뤄양(洛陽) 카이펑(開封) 등 촉(蜀)지방이 수도권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시안(西安) 일대가 원나라 이후부터 800여년 수도 역할을 했던 베이징(北京)보다 더 오래된 도시다.

일본의 경우 한반도가 신라에 의해 통일되자 위협을 느껴 800년대 나라(奈良)에서 교토로 옮겨 천황제를 유지하다 1867년 메이지(明治)유신때까지 수도였으니 1천년 가까이 수도역할을 했다. 실권자인 장군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도쿄(東京)에 막부를 세웠지만 어디까지나 동쪽의 서울(京)이었다.

동남아에선 1000년경 중국으로부터 독립한 베트남의 하노이가 가장 오래된 수도다. 필리핀은 포르투갈 태생의 스페인 항해가 페르디난드 마젤란 일행이 남쪽의 세부에 정착한 뒤 19세기 독립이후 마닐라가 수도가 됐다.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도 17세기 초 네델란드 식민자들이 세운 도시다. 인도의 델리도 무굴제국의 이슬람왕들이 자이푸르시에 있다가 18세기 영국 식민지가 되면서 옮겨온 도시다. 태국의 방콕도 수코타이, 아유타야 왕조를 거쳐 19세기 중반 차크리 왕조가 세운 신흥도시다.

▲ 1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위례성대로에서 제15회 한성백제문화제 행사의 일환으로 역사문화거리 행렬이 진행되고 있다./송파구청 제공

지난 주말인 10월 8일 밤 서울의 동서쪽에서 화려한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서쪽 여의도와 한강 둔치에서는 엄청난 ‘불꽃축제’가 벌어져 인근 마포 영등포 노량진 일대 교통이 마비될 정도였다.

동쪽에서는 올림픽공원을 중심으로 송파구가 주최한 한성백제문화제, 강동구에서는 암사 명일 고덕동 일대에서 선사문화축제가 성황이었다. 광화문 일대에서는 고(故) 백남기 농민 추모집회가 열려 경찰차가 차도와 인도에 박혔다.

10월 서울 강동구와 충남의 공주, 부여에서는 두 개의 백제문화제가 열린다. 한성백제문화제는 2천년전 고구려에서 남하한 온조 일행의 수도였던 현재의 풍납토성인 하남위례성과 몽촌토성 일대에서 10월 첫째주 목·금·토·일요일 4일간 열렸다. 올해가 16번째다.

같은 기간 이웃의 암사동 선사유적지에서에서는 신석기시대 선조들의 생활을 보여 주는 선사문화축제가 열렸다.

예전 한강의 주류였던 암사지구는 모래톱이 발달해 물고기와 조개 등을 잡기가 쉬웠을 것이다. 이 물줄기가 잠실 쪽으로 트는 바로 남쪽에 판축기법으로 풍납토성을 쌓아 한성백제 시대를 연 것이다.

한성백제시대인 백제의 전기, 중기의 근초고왕 때는 고구려, 신라보다 국력이 강력했다.

371년 근초고왕이 고구려의 남쪽 평양성을 공격해 거기서 고국원왕을 죽였고 침류왕 때인 384년에는 중국의 남조인 동진(東晋)으로부터 승려 마라난타를 받아들여 이후 사찰건립, 불탑건축 등 불교를 진흥시켰다.

가야를 거쳐 남하해 아신왕 때인 397년 왜(倭)와 정식 수교한 뒤 아직기와 왕인을 왜에 보내 천자문과 논어를 전해주었다.

▲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 동쪽 성벽 발굴 현장/뉴시스 자료사진

지난 주말 평화의문 앞 광장에서 열린 백제문화행사엔 백제왕행렬, 백제의복전시와 입어보기행사가 있었다. 중고생들이 백제복장을 걸치고 쌍륙(雙六)이라는 주사위와 윷놀이를 합친 전통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 복장이 일본인들이 보통입는 기모노, 유카타와는 다른 신사(神社)의 사람들이 입는 의상 그대로였다.

현재 천왕이 백제계로 인정했듯이 4세기부터 활발해진 해로를 통해 현재 일본국보인 칠지도(七枝刀)를 비롯한 백제문물이 넘어갔다. 근초고왕이 하사한 것으로 알려진 칠지도는 그래서 박물관이 아닌 나라현 텐리시 신사에 있는가 보다.

백제무기 전시장에는 칼 창 활 석궁 등과 칠지도를 닮은 칼도 있었다. 이는 무기가 아니라 불교가 전해지기 전 무당들이 굿을 할 때 쓰던 악기, 방울, 거울 등 무구(巫具)의 일종으로 추정한다.

철저한 고증 없이 비슷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 눈에 거슬렸다. 장수왕의 침략으로 개로왕이 죽어 한성백제는 없어졌지만 개로왕이 일본에 보낸 동생이 곧바로 배를 타고와 이후 63년간 웅진(공주)에 도읍할 수 있었다.

함께 갔던 개로왕의 동생 곤지의 두 이들이 웅진시대 동성왕, 무령왕이다. 무령왕의 아들 성왕이 신라의 융성에 위협을 느껴 538년 금강하류인 사비(부여)로 옮겨 나당연합군에 멸망됐다. 서울의 역사를 더듬는 건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다.

※ 남영진 상임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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