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우의 세상이야기

[이코노뉴스=남경우 대기자]

▲ 남경우 대기자

전쟁이 날까 점점 두려워하는 50대 박 아무개 여성분께 주역 23번째 산지박 괘 상구의 메시지를 말씀드립니다.

지난 달은 유독 한반도에서 또 다시 전쟁이 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떨었던 날들이었습니다. 한미간 대규모 군사훈련에 뒤이어 북한의 연속적인 핵폭발 시험과 미사일 시험이 있었습니다. 연일 뉴스의 첫머리를 장식했습니다.

곧 전쟁이라도 일어날 듯 한 분위기였습니다.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늘 전쟁의 가능성이 있고 대량살상무기가 세계에서 가장 촘촘하게 배치된 한반도에서 살고 있지만 특별히 자기문제로 생각하지 않고 일상을 살아갑니다. 차라리 다행한 일입니다.

죽음은 공포의 근원

하지만 어느 때인가부터 남북문제 특히 군사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자 한반도의 비극적인 분단이 눈에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거기에 연일 서울과 워싱턴과 평양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이해되기 시작하자 무서워지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모른 채 일상을 즐기는 것이 더 좋았을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차라리 모르는 게 좋았을런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으로 내면적 평화 혹은 내면적 자유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남북문제의 근원을 이해하기 시작하고 군사문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어느 순간 두려움도 깊어지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남북문제의 파탄이 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이어진다는 예감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은 바로 이웃의 죽음이며 가족의 죽음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동 전쟁으로 인해 벌어지는 수 많은 죽음이 우리를 우울하게 합니다. 하물며 죽음의 대상이 우리의 이웃과 가족이라면 그 비극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개인들은 그러한 비극의 근원에 관심이 깊어지는 것이 스스로 두렵기도 합니다. 한국전쟁과 분단이 한반도의 각 구성원에게 가한 정신적 속박이자 불안입니다. 스스로를 검열하게 합니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은 우리들이 처한 분단의 비극 과 군사적 긴장이 가져오는 공포로부터 눈을 돌리고 싶어합니다. 만일 회피가 가능하다면 회피하십시오. 하지만 현재적 비극과 공포의 원인과 배경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면 더욱 밀고 나가보십시오. 분단구조와 북미간 남북간 군사적 대치의 실상과 역사적 연원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면 공포와 무지와 위협과 기만이 빚어내는 불안감의 실체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 때 불안감은 사라지고 나와 우리와 한반도의 실체를 뚜렷이 인식하게 됩니다.

전쟁의 비극이 가슴 깊이 다가올수록 평화에 대한 갈망도 더욱 강렬해질 것입니다. 늘 전쟁이 스쳐가면 사회 내부의 갈등도 격화되어 수많은 비극적 사건을 일으킵니다. 한국전쟁 당시 벌어졌던 수 많은 학살이 그것입니다. 이런 우리의 과거는 우리에게 내재해 있는 공포이자 트라우마입니다. 특히 피해자의 입장이라면 더욱 심각합니다. 설령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었어도 그 공포는 많은 사람들 가슴 속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또 다시 비극적인 역사를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전쟁은 막아야 하며 한반도 평화를 영구적으로 정착시켜야 합니다. 이것은 특별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만의 책무가 아닙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의무이자 권리이기도 합니다. 설령 지극히 평범한 나머지 약간의 영향력도 미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그렇습니다.

공포의 실체를 이해하면 마음의 평화가 온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두려움과 공포를 경험합니다. 이별 가난 굶주림 질병 소외 실업 사고 실연 파산 죽음 등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두려움이 가까이 있습니다. 이별 가난 굶주림 등으로부터 오는 두려움은 궁극으로는 죽음의 두려움로 이어집니다. 두려움의 실체가 우리 눈에 드러나면 공포심은 사라집니다. 이 때 새로운 평정과 평화가 내면에서 밀려옵니다. 세상사와 개인사를 더욱 편안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 고 신영복 선생은 수형생활중 주역을 읽을며 희망을 가꾸어 갔다고 한다. 주역 산지박괘 석과불식을 묘사한 그림.(그림 출처=신영복의 서화 에세이)

주역은 죽음과 삶을 끝없이 경험하고 연습하게 합니다. 죽음과 삶을 연습하게 함으로서 죽음과 이어져 있는 수 많은 두려움을 직면하게 합니다. 두려움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하면서 두려움의 근원으로 이끕니다. 두려움의 근원을 이해하면 끝내는 두려움을 넘어서게 됩니다.

주역은 ‘언제나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합니다. 단지 모든 것은 늘 변하는 것만이 영원하다고 말합니다. 그러기에 슬픔은 언제나 지속될 수 없는 것이기에 희망을 가지라 말합니다. 그리고 영화(榮華) 또한 언제나 지속되는 것이 아니기에 기울어 질 것을 염려하라고 말합니다.

주역의 23번째 괘 산지박(산지박) 상효의 메시지는 극적입니다.

上九 碩果不食 君子得輿 상구 석과불식 군자득여

     큰 과일이 먹히지 않음이니 군자는 수레를 얻는다.

산이 무너져 땅에 엎드릴 만큼 모든 것이 무너지지만 다시 씨 과일(碩果)이 남아 새로운 부흥을 준비합니다. 그래서 24번째 지뢰복 초효로 넘어갑니다.

지뢰복괘는 동지가 지나고 빛이 길어지는 정월을 말합니다. 두려움에서 벗어나 평정의 세계로 나아가기 바랍니다.

※ 남경우 대기자는 내일신문 경제팀장과 상무, 뉴스1 전무를 지냈으며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연구 모임인 북촌학당에 참여, 우리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의 해법을 찾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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