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5만7천표가 콜롬비아 국민들이 52년 동안 갈망해온 평화정착의 기회를 연기시켰다.

전쟁의 앙금을 풀기란 정말 어렵다. 콜롬비아 내전의 휴전협정(평화협상안) 발효를 묻는 10월 2일의 국민투표가 찬성 49.78% 반대 50.21%로 부결됐다는 외신을 접하고 평화를 얻기가 이렇게 어렵구나 생각했다.

▲ 남영진 논설고문

같은 민족끼리 내전의 아픔을 겪은 우리로서도 북한의 핵실험 이후 미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강행과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로 다시 한반도 평화에 암운이 드리우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더욱 안타깝다.

남미의 콜롬비아는 앞바다 카리브해에 있는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가 1959년 정권을 잡자 이에 고무돼 64년부터 농민군들이 들고 일어나 내전이 시작됐다.

중미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멕시코의 카를로스농민군, 페루의 빛나는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 이후의 브라질 좌파정권 등장, 미국과 쿠바간 재수교 등 중남미의 이념전쟁이 거의 끝나 콜롬비아는 중남미의 마지막 내전지역이었다.

특히 지난 9월말 정부와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이 북부 해안도시 카르타헤나에서 평화협정을 공식 체결, 이 지역에도 평화가 정착될 것으로 보았다.

외신은 당시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과 로드리고 론도뇨 FARC 사령관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 등 2,500명의 참가자들 앞에서 ‘총알탄피를 녹여서 만든 펜’으로 서명했다고 전한다.

펜 손잡이에는 “총알은 우리의 과거를 기록했다. 교육이 우리의 미래다”라고 스페인어로 새겼다. 산토스 대통령은 “여러분들이 민주의 장으로 온 것을 환영한다”고 연설했고 론도뇨 사령관도 “전쟁중 끼친 고통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다.

남미 전문가들은 국민투표에서 협정안이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전망했다. 8월말 투표 문안이 공개된 후 여론조사에서도 거의 70%에 가까운 찬성률을 보였다.

▲ 콜롬비아 정부와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이 체결한 평화협상안에 찬성하는 여성이 2일(현지시간) 보고타에서 이에 대한 국민투표의 부결 소식을 듣고 슬퍼하고 있다.【보고타=AP/뉴시스】

그런데 결과는 안타까웠다. 알바로 우리베 전 대통령을 비롯한 우파 진영은 반군들의 전쟁범죄를 충분히 심판하지 않았다며 ‘정의를 실현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또한 80년대 이후 반군들이 군자금 마련을 위해 마약조직과 결탁, 남부와 동부의 아마존 밀림지역을 지배하면서 교육 의료 사회기반시설 등을 파괴한 것이 일반 국민들의 뇌리에 깊게 각인돼 있었던 것 같다.

국가끼리의 전쟁은 말할 것도 없고 한 나라 안에서 다른 종족끼리의 헤게모니 다툼에 의한 ‘인종청소’는 엽기적이다.

유고에서는 독립 후 내전 중에 슬라브계가 터키계를 집단학살함으로써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아프리카 내륙 콩고와 우간다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후투족과 투치족간의 권력다툼이나 갓 독립한 남수단에서 대통령과 부통령간의 충돌도 출신 종족간 내전의 연장에 다름 아니다.

남미 국가중 태평양과 대서양을 한꺼번에 갖고 있는 나라는 콜롬비아뿐이다. 중미의 파나마를 지나 남미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크리스토퍼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때문에 북미에도 ‘컬럼비아’라는 지명이 많지만 남미에는 스페인, 이탈리아어의 원형을 사용해 ‘콜롬비아’라는 스페인어 원형을 쓴다.

30년 전인 1986년 수도 보고타를 방문했을 때도 시내 택시 중 현대자동차의 ‘포니1’이 많이 굴러다녀 친근감이 들었다.

콜롬비아는 우리나라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는 중남미에서 유일하게 유엔 지상군을 파견한 6.25참전국인 혈맹이다.

전투부대 파견 16개국 중 아시아에서는 필리핀과 태국,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이디오피아와 남아공, 중동에서는 터키 정도다. ‘형제국’이라는 터키군은 전투도 잘하고 엿을 좋아해 터키 부대가 이동할 때마다 엿장수들이 따라다녔다고 한다.

북유럽의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은 병원선을 부산에 보내 부상병을 치료해 주었다. 이 의료진이 휴전 후에도 연장치료를 위해 서울 을지로6가에 병원을 유지하다 넘겨준 곳이 지금의 국립의료원이다.

여기에 구내식당으로 이용됐던 곳에 우리나라 뷔페식당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스칸디나비아클럽이 남아있다. 대학생 때 누군가의 초대를 받아 갔을 때 짠 청어조림과 소간을 으깬 음식맛이 특이했던 기억이 있다.

콜롬비아는 지구를 반바퀴 돌아온 군함 1척과 지상군 1개 대대(5,100명)를 파견해 미군 7사단과 함께 동부전선의 김화400고지전투, 연천180고지전투, 불모고지전투 등을 치렀다. 그중 213명이 전사하고 448명 부상, 실종 69명, 포로 30명등의 피해를 입었다.

▲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시의 공화국은행 내에 있는 박물관. 1968년 개설된 이 박물관은 황금세공 1만8000점을 수장, 전시하고 있다./구글 이미지 캡처

정부는 75년 인천 서구 가정동에 콜롬비아군참전기념비를 세우고 ‘카리브 바다의 정기를 타고난 콜롬비아 용사들! 국제연합의 깃발을 높이 들고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우다가 마침내 611명의 고귀한 생명이 피를 흘렸다. 우리는 그들을 길이 기념하고자 여기에 비를 세운다’라는 글을 새겼다.

또 우리나라와는 지난 7월 자유무역협정(FTA)을 발효시켰다. 2009년 1차 협상을 시작한 지 7년 만이다. 내전이 끝나가면서 치안도 개선됐다.

한국은 콜롬비아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진출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콜롬비아의 수출품인 백색가전 산업에 사용되는 부품과 원자재를 공급해 현지에서 제품을 만들어 주변 국가에 팔 수도 있다. 콜롬비아는 세계3위의 커피생산국이며 맛있는 열대 과일이 많아 생과일주스의 원료를 공급받을 수 있다.

티토 사울 피니야 주한 콜롬비아 대사는 지난 8월 양국 FTA 발표에 즈음해 한국경제신문에 “한국은 콜롬비아의 롤 모델 중 하나다. 양국 FTA를 바탕으로 교육·관광·투자·무역 등 분야에서 서로 이익을 배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30년 전 안데스 북단의 2,650m고지에 자리잡은 인구 800만명의 수도 보고타공항에 내릴 때 볼리바르 광장과 몬세라떼(monseratte) 언덕위의 성당과 야경이 볼만했다.

마약과 내전의 나라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광장, 성당, 시청 등이 전형적인 남미풍이었다. 특히 잉카제국의 유산인 ‘황금박물관’(museo del oro)의 오묘한 조각들만을 보고도 왜 ‘박물관도시’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었다. 에메랄드박물관 의상박물관 군사박물관 등은 아쉽게 보지 못했다. 아름다운 그곳에 평화가 정착되기를 기원해본다.

※ 남영진 상임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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