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응백의 국악가사 이야기

[이코노뉴스] 서울에는 없는 것이 없다고 해도 좋을 만큼 전국의 물산이 집결한다.

▲ 하응백 서도소리진흥회 이사장

전국 8도의 사람들이 다 모여 사는 만큼 팔도의 사투리가 공존하고 맛있는 음식도 다 모여 있다. 전라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홍어 잘하는 집도 서울에든 수두룩하며, 경상도식 국밥을 파는 집들도 부지기수다. 우리 국악도 그렇다. 서울을 대표하는 경기소리는 전국의 소리들이 모여 발전한 것이다. 조선시대에 잔치나 연회의 전말을 기록한 ‘진연의궤’라는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이번 진연 시에 여령(女伶)이 각 차비로서 해야 할 일이 매우 많은데 경기(京妓)의 수효가 적어 배치할 수가 없다. 이에 훈령을 보내니 본부의 기녀 중에 옥선(玉仙), 금희(錦喜), 금화(錦花), 보배(寶貝), 춘홍(春紅), 명옥(明玉), 연향(蓮香), 복실(福實), 금선(錦仙), 벽도(碧桃), 금향(錦香), 기화(琪花), 임소담(林小淡), 월선(月仙), 담연(淡姸), 조보희(趙寶喜)를 순교(巡校)를 정하여 윤선(輪船) 편으로 신속하게 올려 보내어 제때에 연습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 평안남도 관찰사 -

이제 훈칙을 받들어, 허덕선(許德善), 사종기(史宗記)를 영솔인(領率人)으로 정하여 본부 기녀 16명을 이번 배편으로 함께 올려 보냈습니다. 이에 보고드리니 살피기를 삼가 바랍니다.- 평안남도 관찰사 -

1902년 궁중의 잔치를 맞이하여, 평안남도 관찰사에게 내린 훈령과 중앙 정부에 보고한 내용이다. 즉 궁중잔치에 서울의 기녀가 수효가 적어서, 옥선 등 평양의 기녀 16명을 허덕선과 사종기가 인솔하여 서울에 와서 요즘말로 하면 궁중 공연을 하고 다시 평양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때의 공으로 허덕선과 사종기는 양사 1필, 백목 1필, 목 1필, 포 1필을 하사받는다.

이렇게 서울로 소리꾼들이 모여들었으니 경기소리가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경기 12잡가 중 하나인 ‘제비가’는 사설 속에 이러한 현실이 잘 반영되어 있다.

▲ 경기소리는 용광로처럼 전국 각 지방의 소리를 가져다가 융합하여 재탄생시키는 과정을 거쳐 형성됐다. 사진은 경기민요 이수주 강효주씨가 경기잡가를 구성지게 선보이고 있는 모습, /뉴시스 자료사진

‘제비가’ 시작은 “만첩산중(萬疊山中) 늙은 범 살진 암캐를 물어다 놓고 에- 어르고 노닌다”인데 판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어디선가 들어본 가사일 것이다. 바로 ‘춘향가’ 속의 한 대목이다. “만첩청산 늙은 범이 살진 암캐를 물어다 놓고, 이는 다 덥쑥 빠져 먹든 못허고, 으르르르르르르렁 어헝 넘노난듯”을 축약한 것이다.

‘제비가’ 중간에 “제비를 후리러 나간다 제비를 후리러 나간다 복희씨(伏羲氏) 맺은 그물을 두루쳐 메고서 나간다”는 ‘흥보가’에서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울림비조(鬱林飛鳥) 뭇새들은 농춘화답(弄春和答)에 짝을 지어 쌍거쌍래(雙去雙來) 날아든다” 대목은 ‘새타령’의 한 대목이다. ‘새타령’ 역시 판소리에서 차용했을 것이니, ‘제비가’의 가사는 거의 대부분 판소리의 여기저기 가사를 따와서 짜깁기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설의 축약, 종합, 비약이 경기소리의 재미를 더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즉 여러 지방의 고유한 음악 혹은 소리들이 한양(서울)에 모이면서 생략과 종합 과정을 거쳐 새롭게 편집되어 서울식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거쳐 경기소리로 발전한 것이다. 이는 서울(한양)이 가지는 국가의 중심으로서의 정치, 사회, 경제적 특성으로 인해 비롯한 것으로 한 국가의 인적, 물적 자원이 서울이라는 공간에 집약되기 때문에 일어난 자연스런 현상이다.

즉 경기소리는 용광로처럼 전국 각 지방의 소리를 가져다가 융합하여 재탄생시키는 과정을 거쳐 형성된 것이기에 각 지방의 특성이 여러 형태로 남아 있는 소리로 재탄생한 것이다. 팔도의 음식을 다 맛 볼 수 있는 곳이 서울이기도 하고 팔도의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는 곳이 서울이기도 하다.

 

※ 하응백 서도소리 진흥회 이사장은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에 당선돼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옥봉의 몽혼’(2009)등 20여 권의 편저서가 있으며 ‘창악집성’(2011)이라는 국악사설을 총망라한 국악사설 해설집을 펴내기도 했다. 2002년 ‘휴먼앤북스’라는 출판사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는 하 이사장은 경희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문학박사를 취득했으며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국민대학교 문창대학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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